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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名言)과 생명 말씀

하늘붓 가는대로 -102

권혁봉 목사
수류 (水流)

세상 사람들의 명언은 대단한 위력을 지닌다. 인문학 사람들은 인간의 삶에 대한 명언 교훈을 던지고, 사회과학 사람들은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명언 교훈을 주고, 자연과학 사람들은 인간의 삶과 자연환경에 대한 그것을 주고, 그리고 의학과학 사람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상태를 설명하는 이론을 낸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세상소리다. 그럼 세상소리 명언의 특징은 무엇인가? 세상 사람의 소리다. 땅에서 나서 땅에서 살다가 땅으로 돌아갈 운명의 사람들의 소리다. 거기엔 영(靈)의 소리는 없다. 오직 육(肉)의 소리만 있다. 세상소리의 한계는 영계(靈界)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순함에 관한 교훈을 두고 땅 사람의 명언과 하늘 사람의 명언을 한 번 대조해 보자. 이하는 계인철의 ‘그리스도인의 심장이 뛰는 사람’(P.146~147)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두 저자가 놓친 것이 있다. 어쩌면 이것은 두 저자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영적인 단순함은 두 저자의 관심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베르너터키 퀴스텐마허-로타르 J. 자이베르트의 ‘단순하게 살아라’는 표피적 또는 얕은 물가의 단순함, 즉 육체적 단순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단순함도 이루지 못하고 사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이자 불행이지만, 리차드 포스터의 「심플라이프(Freedom of Simplicity)」는 이런 얕은 단계를 넘어 깊은 단계인 영적 단순함에 대하여 심도 있게 우리의 현실을 어루만지며 기독교 단순함의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세상소리는 격언(格言)이라고도 하는 바 격식을 갖춘 말이라는 것이요 금언(金言)이라고도 하는 바 값나가는 말이란 뜻이다. 구약의 잠언도 격언이나 금언이란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다(홍반서 저. 구약개론. 잠언서 P.299). 잠언서의 저작과 연대에 대해 신학자 간에 논란이 있지만 당시의 세상에 유행되는 몇몇 좋은 말도 저자가 인용했을지도 모른다.


솔로몬이 잠언 삼천 가지를 가졌다(왕상4:32)는 말 속에는 주변의 격언도 섞여들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격언이나 명언도 사람에게서 나왔다면 거기엔 뭔가 빠진 것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엔 생명이 없다는 것. 그 명언으로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 그 명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 명언은 땅에서는 교훈이 될지 모르나 하늘 영계(靈界)는 관여하지 못한다. 구약 전체가 신약을 바라보는 은혜복음의 그림자인 율법일진대 그 유명한 생활지침 같은 잠언서도 율법이다. 잠언서의 지침을 그대로 100% 지킬 자가 누구냐? 어느 정도만 지키면 된다고?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


세상의 명언에는 피가 없고 생명이 없다. 그런데 세상 사람은 세상 명언소리를 듣기를 즐기나 그리스도인은 생명 말씀 듣기를 즐긴다. 이게 양자의 체질상의 기본적인 차이점이요 그래서 구별점이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느니라”(요3:31,34)


오늘날 설교 강단이 생명 말씀 대신에 세상의 명언으로 흘러내리고 있으니 이를 어이할꼬? 성경은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이론과 생각 그리고 명언을 그리스도 밑으로 가져오라고.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 하반절 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