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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 사람의 구령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역사상 가장 큰 재난 중 하나가 1271년에 일어났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몽고의 황제 쿠빌라이 칸을 방문했다. 당시 중국과 인도와 아시아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쿠빌라이 칸은 마르코 폴로가 전해준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몹시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마르코 폴로에게 교황에게 가거든 기독교에 조예가 깊은 사람 100명을 자기에게 보내주면 자기 자신과 모든 신하들과 장군들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일이 신속히 이루어지 않았다. 30년 이상이나 선교사 보내는 일이 지연됐고 그나마 겨우 두세 명의 선교사가 늦게 도착했다. 중요하고 큰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쿠빌라이 칸 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더라도 그 당시의 영토에 미친 영향이 어떠했겠으며, 오늘날 아시아와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겠는가? 한 사람의 구령이 얼마나 큰가?


헬라의 스파르타 표어에 ‘너 하나하나가 산 벽돌이 되라’는 말이 있다. 모든 수는 ‘하나’에서 시작하여 10, 100, 1000, 10000, 억, 조, 그리고 경으로 늘어난다. 1초가 60개 모여 1분이 되고, 한 시간은 60분,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 또 100년으로부터 천만년에 이른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며, 하나로서 만 가지를 안다(以一知萬). 그래서 세상은 작은 하나에서 시작된다. 하나는 근본이요, 하나는 시작이며, 하나는 많은 것의 근원이다.


영국 속담에 ‘말 신의 못 한 개 때문에 전쟁에 졌다’는 속담이 있다. 말발굽에 못이 빠지니 말 신이 벗어졌고, 말 신이 벗어지니 말은 빨리 달릴 수 없었고, 말이 빨리 못 달리니 군인은 잘 싸울 수 없었기에 결국은 전쟁에 패배했다는 말이다. ‘속담에 티끌모아 태산’이요, 적은 것을 쌓아 큰 것을 이루며(積小成大), 개울물이 쉬지 않고 흘러 마침내 강과 바다를 이룸같이, 작은 하나가 얼마나 귀중함을 보게 된다. 우리가 잊고 있는 하나에 대해 깊이 깨우쳐 준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물 한 그릇(마10:42), 율법의 일점일획(마5:18,19), 한 달란트(마25:14,40,45), 이 꽃 하나만(마6:29), 그 중 한 사람에게(마20:13), 겨자씨 한 알(마13:31,32),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마5:1), 한 므나(눅19:16), 감사한 한 문둥이(눅17:15),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마22:11,12) 등등, 하나 곧 작은 하나에 대해 깊은 뜻과 의미를 부여하고 말씀하셨다. 타락한 니골라 한 사람(계2:6), 가룟 유다 실패자 한 사람(요13:21), 수가성 우물가의 죄 많은 여인(요4장), 예수를 찾아온 니고데모 한 사람(요3:1~8),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 한 사람, 거라사 귀신들린 자 등 예수께서 관심 가지신 색다른 한 사람도 생각해봐야 한다.


숫자에 미급한 어린이 같이 멸시와 천대받는 사람들, 어떤 의미에서 세상의 작은 나, 작은 일, 쩨쩨하게 무시될 일, 잃어버린 잔돈, 찌꺼기 음식, 몇 초의 여분, 몇 방울의 물, 한 표, 손바닥만 한 구름(왕상18:44), 도무지 무시된 하나와 작은 것 및 무관심으로 소외되거나 작은 하나에 대하여도 우리는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인간평가를 숙고해 본다.


지극히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고 미천한 자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광대무변한 우주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체의 작은 세포와 적혈구나 백혈구 및 물체의 작은 원자와 전자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천국에서 누가 크며 제자 중 누가 서로 크냐는 다툼을 들으신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18:10)고 말씀하셨다. 소자 곧 작은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관심은 물론 큰 비중을 두신 놀라운 사랑을 본다. 


오래 전의 일로 일본의 식물학자가 이집트에서 발견된 3,000여 년 전의 몇 알의 밀을 비싸게 사서 그 가운데 한 알을 잘 심었더니 싹이 나고 잎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는 내용이었다. 3,000년 동안 심지 않은 밀알은 과연 한 알 그대로 있었으나 땅에 심었더니 3,000년간 간직한 생명이 발아하여 새로운 많은 생명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하신 말씀의 뜻을 깨닫게 한다. 한 알의 밀로 자신을 비유하시고 십자가의 토양에 심긴 예수를 생각하자!


예수님을 따라간 적은 무리 곧 열 두 사람, 나사렛 목수 예수와 그를 따른 미미한 이스라엘 북부 땅의 불학무식한 어부와 세리로 구성된 제자들, 그러나 그들의 작은 호흡과 작은 걸음, 작은 손짓의 하나하나가 엄청난 역사의 변혁을 가져올 것을 예견했었기에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고 예견하셨다.


결국 한 사람 아브라함, 한 사람 모세, 한 사람 사무엘, 한 사람 다윗, 한 사람 엘리야는 누구인가? 한 사람 베드로, 한 사람 바울, 한 사람 사도 요한과 침례 요한은 오늘날 누가 돼야 할까? 한 사람 웨슬레, 찰스 피니, 존 낙스, 조나단 에드워드를 우리의 세대는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름 없는 평범한 한 사람을 부르신다.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져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한 세기에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내가 그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먼저는 한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과 뜨거운 열망이 있어야 우리 목장과 교단과 한국교계와 세계교회가 세기말적인 세대에서 세계복음화의 지상명령을 감당하리라 믿는다.


예수님께서 하신 구령의 비유에서 양 100마리 중에 한 마리 양을 찾으셨고, 여인이 열 드라크마 중에 잃은 한 드라크마를 찾았으며, 두 아들 가운데 회개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 탕자는 영접하셨다(눅15:1~24)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눅13:23)의 질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24)고 대답하셨다. 우리는 한 영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내 가족에나 이웃 중에나, 나의 직장동료나 가까운 친지들 가운데 잃어버린 영혼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우리는 비록 작은 하나의 암균에서 위암, 폐암, 간암 등으로 건장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작은 세균의 위력을 보고 있는데, 사도 바울을 향해 “천하의 염병”(행24:5)이라 하였거늘 생명과 구령운동의 작은 겨자씨의 위력을 모래 속에 사장하고 있지는 않는가?


구령에 대한 약간의 좋은 생각과 긍정적 사고가 엄청난 위력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일에 대해 조금 비뚤어진 생각, 말, 행동의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악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잃어버린 한 사람! 그것도 미미한 존재로 멸시받는 사람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가? 카네기는 ‘일찍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전 인류를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겠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진정 그는 잃어버린 죄인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마22:35~40)하신 뜻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령하는 것이 가장 근본이요, 우선순위이며, 최고의 사랑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약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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