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구집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그 역사를 같이 한다. 성구집의 낭독은 초대교회 시대부터 전통적인 기독교 예배의 한 부분이었는데 4세기 경 교회는 교회력을 따르면서 성경 본문을 준비하여 예배시에 봉독했던 것이 관찰된다. 그러나 종교개혁 때 일부 교회들이 교회력과 전통적인 성구집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산물이라 간주하여 이의 사용을 배제했다. 금세기에 와서야 교회는 성구집이 기독교 유산의 소중한 것임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성구집의 역사는, 유대 회당에서 사용된 것부터 고대, 중세 교회를 거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퍼져있다. 현대 성구집은 3년 주기 성구집으로서 “개정 표준성구집”이다. 현대 교회는 종교 개혁 정신이 약화되고, 청중의 다양한 문화적 필요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통적인 교회력과 성구집의 지침을 따르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처하거나 청중의 필요를 주제를 고려하여 설교하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현대교회가 성구집에 입각하여 설교계획을 세우는 것은 교회의 전통을 되새기고 부활시킴과 동시에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회복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2. 성구집의 역사
1) 유대교 회당 시대: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전, 유대교 회당 예배에서는 율법이 낭독 되었는데, 회당에서의 율법 낭독의 순서는 성전 희생 제사를 대신하는 형태로 발전 되었다. 이와 같은 성경 봉독은 이미 모세의 메시지와(신 31:10~12)과 에스라(느 8장)의 율법 책 낭독에서 그 형태를 관찰할 수 있다. 언제부터 유대교 회당 예배에서 성구집의 말씀이 읽혀졌는지 그 정확한 시점을 확정짓기는 어렵지만, 안식일이나, 축제일, 그리고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토라를 계속해서 읽는 것은 그리스도 오시기 전 세기까지는 적어도 확정된 듯이 보인다. 그리고 예언서 낭독의 경우는, 누가복은 4:16에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한 부분을 읽고 설교하신 것을 통하여 예수님 당시 이미 예언서를 안식일 예배에서 정기적으로 읽는 전통이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책의 순서를 따라 읽은 것이라기보다는 산발적으로나 선택적으로 읽는 것이 규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림절에 에스더서를 읽는 것처럼 축제일에 성문서를 읽는 것을 제외하고는 성문서는 대중에게 낭독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3년 주기 팔레스틴 성구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은 오경을 153내지 167 부분으로 나누어 읽게 된 것으로 봄철인 니산월 에서부처 시작하여 연속적으로 읽는 것이다. 물론 일년 주기 바벨론 성구집도 있다. 이것은 가을철에 있는 장막절 다음에 시작하여 54부분으로 되어있다. 전자를 일반적으로 더 오래된 것으로 간주하며 주후 6-7세기 이후 후자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
2) 초대교회와 중세 교회: 초대교회 예배에서 성경을 봉독했던 관습은 유대교 회당 예배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대교회의 성구집 형성의 역사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에 대한 다양한 자료에 의하면 회당예배의 영향을 받은 초대교회도 일정 형태의 성구집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며, 4세기에 이르러서는 그 형태가 비록 오늘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정된 규례와 절기에 따라 예배에서 성구집이 봉독됐다. 이에 대한 자료에는 교부 문서에 가끔 나타나는 언급들과, 교부들의 설교 본문에 있는 표시들, 성구집의 목록들, 그리고 결국에는 성구집 책들이 포함된다. 중세교회 예배의 경우, 봉독할 성구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준 여러 요소 중에 하나는 성자들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이는 삼위일체 셋째주일에서 다섯째 주일 절기에 베드로전서와 로마서에서 선택한 구절을 사용함으로서 6월 29일 성베드로와 바울의 축제가 가까이 왔음을 나타냈다. 또 다른 요소로는 농사절기와 연관되었다. 이는 포도원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비유(마 20:1~16)와 씨뿌리는 자의 비유(눅 8:4~15)가 수난절기 전 주일들에 사용된 것은 한 해 중 이 시기(2월)가 이탈리아에서 포도원과 밭일을 준비하는 때임을 나타냈다.
3) 종교개혁과 개혁교회 예배: 로마 가톨릭 교회를 중심한 중세교회의 교회력과 성구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력과 성구집의 본래적 모습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속사를 중심으로 한 교회력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고 성자들을 위한 교회력과 성서일과로 변질되어 갔다. 특별히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성자숭배 사상은 교회력과 성구집을 철저하게 비본래적인 것으로 타락시키고 말았다. 이는 종교개혁자들로 하여금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교회력과 성서일과를 배격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전통적인 서방교회 성구집을 로마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그리고 성공회에서 약간씩 다른 세 형태로 재구성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대체적으로 “급진적인 종교개혁측”과 “자유교회”는 성구집 사용을 거부했다. 쯔빙글리는 성구집들이 성서 전체를 읽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성경을 연이어 읽는 제도를 선호했다. 칼빈은 예배에서 한 봉독문만 읽기를 좋아했다. 루터는 봉독뿐만 아니라 설교를 위해서도 서방교회의 역사적 성구집을 이어 받았다.
3. 개정 표준성구집
지난 수십 년간 1500년 성구집 전통 중 가장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 시발점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이뤄졌다. 이 놀라운 시도는 개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관대한 입장에서 성경을 개방하려는 의도와 함께 제2바티칸 공의회에서 나왔다.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근거하여 새 성구집을 제안할 연구위원회가 구성됐는데, 수년 동안의 작업 끝에 그 결실이 1969년 봉독문의 새 순서로 출판되었다.
한편 개신교회 쪽에서는 장로교의 본산인 스코틀랜드 교회가 예배회복운동(The Liturgical Movement)을 일으키게 되면서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 왔던 교회력과 성구집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됐다. 그리하여 1940년,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처음으로 교회의 예식서에 초대교회의 교회력에 합당한 성구집을 채택하게 됐다. 이것은 1969년에 제정된 로마 가톨릭의 성구집(Lectionary for Mass, 1969)보다도 무려 30여년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의 세계 “개정 표준성구집”(Revised Common Lectionary)의 시효가 됐다.
1969년에 발행된 로마 가톨릭의 성구집은 약간의 수정이 가해진 뒤 1970년 미국에 있는 성공회와 장로교회가 받아들였고, 1973년 이후 다른 개신 교단들이 받아들였다. 이때 각 교단들은 부분적인 수정을 가했는데, 장로교회와 루터교회는 로마 가톨릭이 “외경”을 사용한 부분을 구약 정경으로 대체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이 교단들은 독립적인 수정 작업을 거쳐 자신들의 신앙 체제에 적합한 성구집을 개발하여 사용했다. 결국 이후 개신교 내에는 많은 성구집이 등장하게 됐고, 마침내 여러 개로 갈라진 성구집을 통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게 됐다. 1972년 개신교회는 “교회일치를 위한 협의회”(COCU-Consultation on Church Union)를 조직했고, 그 산하에 “공동본문 위원회”(CCT-Consultation on Common Texts)를 두어 모든 교단들이 수용할 수 있는 교회력과 성구집을 만들 것을 결의했다. 그 결과 동위원회는 1978년부터 4년간에 걸친 연구 끝에 1982년 “공동성구집”(Common Lectionary)을 만들게 됐다. 그리고 그 후, 9년의 실험 기간을 거친 후 지난 1992년 드디어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개정 표준성구집”(The Revised Common Lectionary)을 내놓았다.
3년주기로 운영되는 “개정 표준성구집”의 기본 형태는 A씨리즈-마태복음, B씨리즈-마가복음, 그리고 C씨리즈-누가복음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예배시에 낭독되는 성구들은 복음서에서 선택된 성구, 서신문을 중심해서 선택된 성구, 그리고 구약에서 선택된 성구 순으로 낭독됐다. 대체로 서신문에서 선택하는 두 번째 봉독문은 대부분이 한 책을 연속으로 읽는데 한 서신문을 선택하여 3주일에서 6주일 동안 봉독한다. 예를 들어 주현절 봉독문의 A씨리즈는 고전 1-4장, B씨리즈는 고전 6-10장, C씨리즈는 고후 1-3장에서 선택했다. 보통 구약성경 봉독문은 복음서 봉독문을 보강하고 배경을 설명하거나 대조되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 선택은 기본적으로 이사야서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예레미야, 신명기, 창세기, 출애굽기, 열왕기, 에스겔, 민수기, 다니엘, 그리고 잠언 순으로 선택됐다.
IV. 교회력과 성구집의 활용
1. 교회력과 성구집 활용의 의미
앞서 밝힌 것처럼 현대 교회력과 성구집의 모체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전을 위한 ‘미사 성구집’이다. 그렇다면 과거 로마 가톨릭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교회력과 성구집을 기독교회가 다시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앞서 밝힌 것과 같이 교회력이란 교회가 로마 가톨릭의 틀로 고착되기 이전, 초대교회 에서부터 이미 시행되어 왔던 것으로서, 오늘날 이것은 예배의 회복과 더불어 새로운 적용이 요청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교회가 초대교회의 소중한 유산을 회복 발전시켜나가야 할 과제를 가진다면, 교회력과 성구집의 새로운 부활은 단순한 예배 갱신 차원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교회 회복을 위한 새 지평을 열어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과거 초대교회의 소중한 유산을 21세기 교회가 받들어 나갈 때 이 시대의 교회는 과거 그리스도의 구속을 따라 펼쳐지는 교회력의 재현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현재의 시간 속에서 다시 체험하게 된다. 주승중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은 연속적인 개념이라 이해하고 오늘 현재는 계속해서 움직이는 끝으로서 과거와 미래는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사건을 오늘 자신의 사건으로, 그리고 미래의 사건을 현재의 사건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교회력은 예배 현장에서 과거에 일어난 하나님의 구속사와 미래 구원의 완성을 오늘 현재의 사건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과거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중심으로 이뤄진 교회력을 따라 예배를 드리면서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재현하였듯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또한 교회력을 따라 예배를 드리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를 매년 자신들의 삶속에서 체험하게 된다. 나아가 교회력을 따라 드리는 예배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삶, 가르침, 사역,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의 약속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은혜로부터 오는 영원한 새 생명을 확신한다. 데이비드 바틀렛트(David Bartlett)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차이를 통하여 이 점을 부연설명 하였는데, 인간의 일상적인 시간이 크로노스라고 한다면 카이로스는 관입적(intrusive)인 시간으로서 보다 신적인 개입과 함께 확장된 시간 이해라고 하였다. 오늘 맞이하는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12월은 성탄 선물을 준비하며 집안에 화려한 장식을 하는 시간이지만,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12월 초순은 대강절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시기이다. 이것은 크로노스의 현재적 시간에 영원한 카이로스의 시간이 깃드는 것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회력을 따라 구성된 성구집을 가지고 설교한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교회력에 맞추어 선택되어진 성구집을 따라 설교하면서 설교자는 인류의 타락 이후 인간 구원을 위해 펼쳐진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선포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승천하심과 영광 받으심,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그가 오실 때까지 교회는 계속해서 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 속에서 성도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직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