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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비전 묵상-4

한재욱 목사
강남비전교회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본디 이 노랫말은 ‘얼씨구 절씨구 지하자졸씨구’입니다. 한문으로는 이렇습니다.‘얼씨구 만씨구 지하자졸씨구(蘖氏求 卍氏求 至下者卒氏求)’ 여기서 ‘얼씨(蘖氏)’란 세상에서 멸시 당하는 서자(庶子)의 씨를, ‘절씨(卍氏)’란 스님의 씨를 말합니다. ‘지하자졸씨(至下者卒氏)’는 세상의 가장 밑바닥 인생에서 살다가 전쟁터에 나가 가장 궂은일을 해야 했던 졸때기의 씨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구나!”는 ‘서자의 씨라도 중의 씨라도 졸때기의 씨라도 받아야겠네’ 하는 노래였습니다. 사실 슬픈 노래이고, 절박한 상황의 노래이고, 그 슬픔을 극복한, 아니 극복하려고 하는 달관의 노래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인생을 망치는 가장 큰 슬픔이 바로 자신이 얼씨라는 것, 절씨라는 것, 그리고 지하자졸씨 출신이라는 사실에 좌절하며 무기력할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큰 아픔을 안고 태어났거나, 큰 아픔 속에서 자라났다 하더라도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다섯 명의 여인들이 나옵니다.  다말, 룻, 라합, 우리야의 아내, 마리아가 그들입니다.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와 부적절한 관계를 한 여인입니다. 룻은 하나님이 진멸하라고 하였던 이방인 모압 여인입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의 창기(娼妓)였습니다. 우리야의 아내는 다윗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부정한 여인입니다. 다섯 명의 여인 중 마리아 한 명 빼고는 성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들 얼씨구, 절씨구, 지하자졸씨였던 겁니다.


그런데 이 상처 많고 죄 많고 여린 사람들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우상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우상 공장에서 용이 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낮고 헐한 사람들을 택하셨을까요. 얼씨라도 절씨라도 지하졸씨라도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