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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과 신조(신경) - 2

김승진 명예교수
침신대 교회사

신조(신경)들 가운데 우리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정확하게 어떤 경로를 통해서 어떤 공의회(종교회의)에서 결정됐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위에 언급된 신조들의 영향을 받아 4~5세기경에 형성되기 시작했고 약 8세기 중반 경에 그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열두제자들이 한 문장씩 진술했던 것들을 모아서 사도신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신경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주장은 문헌적 역사적 증거가 전혀 없는 전설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유럽의 북방지역으로부터 남하한 야만인들(Barbarians)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 사도신경은 그들에게 기독교신앙을 요약해서 가르치는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중세시대에 로마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성경이었던 “라틴 벌게이트”(Latin Vulgate)를 직접 읽을 수 없었던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기독교복음의 내용을 잘 요약해 주고 있기 때문에 당시 성도들의 신앙과 신앙생활에 좋은 안내자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의 역사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 내용에 로마가톨릭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거룩한 공회”(최근에 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교회”라고 되어 있음-필자 주)란 말이 8세기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를 가리킨다고 비판하면서,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이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은 반개혁적이며 따라서 적절치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사도신경의 오류”라는 제목을 치면 사도신경을 비판하는 여러 네티즌들의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가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사도신경을 매우 중요한 문헌으로 여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개혁교회(Reformed Church)의 창도자라고 일컬어지는 요한 칼빈(Jean Calvin, 1509~1564)입니다. 그는 그의 탁월한 저술인 ‘기독교강요’ 초판(1536)을 쓰면서 그 전반부에 “십계명”과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해설하면서 자신의 개혁사상을 피력했고, 그것을 여러 차례 수정 증보하여 개혁신학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 분이 성경주석서들을 포함해서 많은 저술들을 남겼지만, 최종 수정본(1560, 4권 80장) ‘기독교강요’ 한 권의 가치가 교회역사상 너무나 지대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책을 여러 번 수정·증보해서 완성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책 한 권의 사람”(Man of One Book)이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성경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은 성령님에 의해 영감 받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기독교복음의 내용에 관해서 잘 요약해서 진술한 글귀이긴 하지만, 사도신경 그 자체는 성경도 아니고 성경과 대등한 권위를 가지는 글귀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발명품일 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적인 전통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에 비해 “주기도문”(Lord’s Prayer)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글귀입니다(마 6:9~13, 눅 11:1~4).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께서 일종의 기도의 모본으로 제시해 주신 글귀입니다.


주기도문은 신적인 영감(divine inspiration)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속에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도신경 그 자체는 성경 속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은 수요저녁예배 시에 “사도신경 강해” 시리즈 설교를 하기도 한다는데, 물론 사도신경의 내용을 살펴보고 성도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가르치기 위한 선한 목적에서 하는 설교겠지만,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내용을 강해해야지 왜 인간들이 만들어낸 글귀를 강해하며 설교해야 합니까? 사도신경 자체에 오류가 있다거나 신학적인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인간들이 작성한 글귀에 항구성 있는 성경적인 권위를 덧입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8세기경에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이 지중해 연안에서 만들어서 사용했었다고 간주되는 사도신경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성경적인 권위를 가지는 것처럼 약 1300여년 후인 21세기 오늘날 대한민국 대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을 구속한다는 것은, 구·신약 성경만을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권위로 믿는 신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인 성경 그 자체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2, 36). 인간들이 간단하게 요약해 놓은 글귀를 반복적으로 암송한다는 것은 무궁무진한 영적인 보화들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제약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