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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과 신조(신경) - 3

김승진 명예교수
침신대 교회사

“예배 시에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으면 이단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도 않고 기독교적이지도 않습니다. 제가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처음 입학했었던 1980년대초에만 해도, 침례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을 공예배에서 암송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의 기독교계에서 (비록 일부 기독교지도자들에 의해서겠지만) 이단시 되기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글귀인 사도신경 그 자체가 이단분별의 잣대가 될 수 있습니까? 왜 꼭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고만 고백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사건을 얼마든지 다양하게 자유롭게 고백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바로 저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저를 살리시기 위해, 저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그리고 저를 대신해서, 십자가 형틀에서 고통을 받으셨고 피를 흘리셨고 죽으셨습니다”라고도 고백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형화된 문귀대로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다고 그를 이단시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의 고백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자유가 있지 않습니까?


침례교인들은 신조(신경)뿐 아니라 위대한 개혁가나 신학자나 교회지도자 등 어떤 걸출한 인물이 만들어낸 신학체계나 교리적 진술에도 최종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침례교회에는 신학이 없다”는 말도 듣는 것 같습니다. 물론 침례교회를 폄훼하는 표현이지만 저는 “신학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침례교인들은 오직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인 구·신약 성경 66권만이 신자들의 신앙과 삶의 규범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편향된 인간의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릴 위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학체계나 교리체계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것을 독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유와 안정을 누리게 되겠지만, 그 체계 밖에도 존재하는 성경적 진리들에 대해서는 외면을 하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학체계나 교리체계가 일종의 필터역할을 해 그 체계를 통해서만 성경을 바라보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침례교인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그러한 체계에 의해 인간의 영혼이 속박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성서해석의 자유” 역시 16세기 종교개혁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어떤 교단에서는 17세기에 유럽의 어느 국가에서 만들어진 특정한 “신앙고백”이 21세기 한국의 같은 교단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돼야 하고 그것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신앙고백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그것이 마치 “신조(신경)”처럼 사용되고 있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속에 등장했던 신앙고백들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을 위해서 좋은 참고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앙고백들의 역사와 그 배경과 내용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학술적인 작업입니다. “그 나라 사람들은 그 당시에 그렇게 믿고 신앙생활을 했었구나” 하면서 역사적인 교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약 400여년 전 그 당시 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강조해서 믿는다고 진술했던 신앙고백을, 오늘날 우리 한국인 그리스도인들도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닙니까? 그 때와 지금 그리고 그 나라와 우리나라 사이에 많은 시대적인 그리고 환경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400여년 전에 영국인들이나 벨기에인들이나 프랑스인들이 믿었던 그대로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믿어야 합니까? 21세기 한국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영혼의 잣대는 수백년 전에 유럽에서 발표되었던 특정 신앙고백이나 신조가 아니라 영원한 권위를 갖는 구·신약 성경 66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셜미디어(Social Media)상에서 최근에 적지 않은 논란과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 TV에서의 설교들이나 저술들을 통해서 한국기독교계에 의미있는 목소리를 내시는 분당의 W교회 L목사님께서 주일예배 시에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순서를 빼신 모양인데, 그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크게 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 분이 장로교 신학의 배경을 가지신 목사이기 때문에 더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 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예배순서 중에 신앙고백 사도신경이 없네요?”라는 어느 성도의 물음에 대해서 L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다셨습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예배를 시작하던 전통이 너무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예배에는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절대적인 순서’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예배와 관련하여 ‘어떤 순서’를 요구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마음을 담고 성령님을 의지해 드려야 한다는 말씀만 있었습니다. 저희도 고심하다가 예배를 지금과 같이 드리게 되었습니다. 좋은 문의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