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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침례교 조직신학자들의 중생교리 - (1 )

근광현 교수
침신대 신학과
(조직신학)

피셔 험프리스(Fisher Humphreys)에 의하면, 오늘날 교회에서 중생은 주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로 자주 이해된다. 대그(John L. Dagg), 보이스(James P. Boyce), 그리고 멀린스(E. Y. Mullins)는 칭의나 양자의 관점에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언급하지만, 그들은 중생을 말할 때 새로운 관계뿐 아니라 새로운 도덕적 실재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중생은 새로운 성품을 지닌 새로운 사람이 존재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했고, 성령은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 새로운 도덕적 자아를 성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험프리스의 말은 우리로 하여금 중생에 대해서 좀 더 세밀한 접근과 분석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연구자는 이같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중생의 의미와 조건을 살피고, 중생과 다른 구원의 용어인 칭의와 성화와 양자의 관계를 분석하며, 조직신학자들이 어떤 중생관 전개 구조와 방식을 가지고 중생을 설명했는지 연구할 것이다. 그런 후에 연구자는 중생 교리에 대한 실제적인 적용을 살피며 중생 교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추구할 것이다.


그리고 연구자는 중생 교리를 포괄적으로 살피기 위해 험프리스의 분류에 따라 남침례교 조직신학자 가운데 칼빈주의 성향인 대그와 보이스, 중도적 성향인 멀린스와 카너(W. T. Conner), 그리고 아르미니우스주의 성향인 무디(Dale Moody)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이처럼 남침례교 조직신학자들의 중생 교리에 담긴 폭 넓은 견해를 토대로 일치와 차이를 분석한 후에 이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때, 우리가 균형 잡힌 중생관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중생의 의미와 조건
 1. 중생의 의미

대그는 중생의 용어가 그리스도인들의 성품에 대한 전체의 구성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이는 마음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최초의 사랑이 일어나는 신적인 사랑으로 표현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영적 생명의 첫 진동의 시작이라 칭했다. 대그는 이를 토대로 중생의 의미를 “성령께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서 거룩함으로 기울게 하는 위대한 도덕적 변화”로 이해했다(요 3:5~6; 겔 11:19; 36:26~28; 37:14; 딛 3:5; 약 1:18; 요일 4:8).


그가 말한 도덕적 변화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본래적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갱신이었다(고후 5:17; 딛 3:5; 골 3:10; 롬 7:2). 대그에게 있어서 중생의 의미는 성령에 의해서 마음 안에 제공된 사랑이고, 새로 남(the new birth)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었다(요일 4:7). 이처럼 대그는 중생의 의미를 성령에 의한 인간의 마음의 변화인 갱신으로 파악했다. 


보이스는 중생의 용어가 ‘낳는 것’을 의미하는 겐나오(요 1:13; 3:3-8; 고전 4:15; 빌몬 10; 요일 2:29; 3:9; 4:7; 5:1, 4, 18; 복합형으로는 벧전 1:23; 딛 3:5)와 ‘창조와 창조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크티시스와 크티조(고후 5:17; 갈 6:15; 엡 2:10, 15; 4:24),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소생되는 것’을 의미하는 조오포이에신(엡 2:5; 골 2:13)으로 구성되며, 이 같은 어휘들은 중생과 회심의 전체 사역이 중생의 용어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어휘라고 말했다.


그리고 보이스는 하나님께서 복음(고전 4:15; 빌몬 1:10)과 말씀(약 1:18; 벧전 1:23)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로 이를 효력 있게 작용함으로써 중생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성령께서 구원받은 자 안에서 최초로 행하시는 중생 사역의 의미란,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 사랑에 기울게 하며 거룩함을 실천하게 하심으로써,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같이 보이스도 대그처럼 중생의 의미를 하나님에 의한 다시 태어남 곧 인간의 마음을 소생시키는 마음의 변화로 파악했다.


멀린스는 대그와 보이스처럼 중생의 위치를 중심에 놓았다. 중생의 교리만큼 우리를 그리스도교의 핵심으로 인도해 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중생이 복음의 중요한 사상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중생의 정의를 통해 중생의 의미를 규정했다. 멀린스에 의하면, 중생은 성령의 역사로서 하나의 수단인 진리 사용을 통해 영혼의 영적이고 도덕적 기질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롭게 된 변화이다(마 10:39; 15:19; 요 3:3~8; 고후 5:17; 엡 1:19; 골 2:3~3:3; 약 1:18). 그런데 멀린스는 중생이 하나님에 대한 사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이해했다. 인간의 영혼은 중생을 받을 때, 도덕적이고 영적 실재에서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이다.


그 변화는 하나님 안에 있는 성질을 우리 안에 재생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인지 배우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의 참여자가 되어 하나님과 적극적으로 친교를 나누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 생명을 맛보는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실적 존재가 되신다. 이와같이 멀린스는 중생의 의미를 영혼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기질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실적 존재가 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커너는 중생의 용어가 ‘다시 태어나는 새로 남’이며, 종교적으로는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뜻을 갖는다고 말했다(요 3:3~8; 벧전 1:3, 23).
다른 곳에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 난 존재의 체험을 묘사하는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과 “죽음과 부활”(롬 6:1~14)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는 뜻을 포함했다. 그러기에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 얻은 새 생명은 인간 본성의 변화를 가리키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성품의 갱신이었다.
다시 말해 이는 인간이 성령에 의해 자기중심적 애착을 벗어나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사는 것이었다(롬 6:1~18). 그러기에 중생의 변화는 신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것이다.


이처럼 카너는 중생의 의미를 인간 본성의 체험적 변화인 영적이고 도덕적인 성품의 갱신으로 파악했다. 무디는 중생의 용어를 “새 생명”으로 이해하고(마 19:28; 딛 3:5), 중생의 의미를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서(고전 1:30), 성령으로 거듭난 신생아로부터 성숙하게 자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처럼 무디는 중생의 의미를 하나님으로부터 난 새 생명과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라는 성장으로 파악했다.


2. 중생의 조건
중생의 조건은 조직신학자들이 제시한 구원의 순서에 잘 나타나 있다. 험프리스에 의하면, 루터주의는 “회개-믿음-선한 행위”를 구원의 순서로 제시했다.
그리고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유효한 은혜-중생-믿음-회개-칭의-성화-영화”를 제시했으며, 남침례교 신학자들은 이를 물려받아 그들의 저술에서 골격을 이뤘다. 과연 남침례교 조직신학자들은 그의 말처럼 개혁주의의 구원의 순서를 물려받았는지 살펴보겠다.


대그는 “은혜의 축복” 안에 “회개와 믿음-죄 용서-칭의-양자-중생-성화-최종적 견인-완전”을 포함했다. 이렇게 그는 칼빈주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회개와 믿음을 중생보다 앞세워 그들과 구원의 순서를 달리했다. 물론 대그는 회개와 믿음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칼빈주의가 즐겨 사용했던 언약 개념을 활용했다. 그 언약은 성부께서 특별히 선택해 예정한 자들을 성자께서 구속한다는 성부의 은혜언약(covenant of grace)과 성자의 구속언약(covenant of redemption)이었다.


이는 성부께서 선택하신 자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시고, 그들을 성령께서 효과적으로 부르시는 소명 사역을 통해, 회개와 믿음에 이르게 하여 중생케 한다는 언약이다.
대그는 성령에 의해 동일한 마음에서 생겨나는 회개와 믿음을 ‘은혜의 두 측면’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대그는 공로로서의 믿음을 배제했다. 오직 구원을 가져다주는 공로는 그리스도의 공로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대그는 중생의 조건을 성령에 의한 “회개와 믿음”인 은혜의 두 측면으로 규정했다.


보이스는 구원의 순서를 “중생-회심(회개)-믿음-그리스도와의 연합-칭의-양자-성화”의 순으로 제시했다. 대그와 달리 보이스는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로 발생한 중생이 회심을 가능케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심을 회개로 이해했고, 또 회심을 중생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이는 그가 중생이 회심보다 앞선다며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강조하는 칼빈주의적 성향을 보여준 대목이다. 이와 같이 대그와 보이스는 칼빈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순서에서는 서로 간에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멀린스는 대그와 같이 은혜의 축복 관점에서 중생의 조건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체험의 순서를 따라 “회개와 믿음-중생과 기타 관련 주제”로 나열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 체험으로서 중생의 조건은 회개와 믿음이었다. 그리고 이 회개와 믿음은 동시적인 것이라서 시간적인 간격은 없었다. 만일에 회개와 믿음이 동시에 발생하지 않는다면 회개하지 아니한 신자가 있을 수 있고, 또 회개한 불신자가 있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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