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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명문가유감

이정일 목사
청하교회

나는 가끔 명품과 명문가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때로는 교회 지체들이나 또 아내까지도 우리 목사님은 명품 좋아하고 명문가 좋아해라고 말할 때면 어의가 없어진다.


아무리 살펴봐도 내 소지품들은 그냥 평범하고 명품이라고 굳이 내세울 만한 것은 명함케이스 하나다. 평생에 명품이란걸 가져본 적이 없어서 나는 분명히 명품 애호가는 아니다. 물론 명품을 구입할 경제적 여력이 있지도 않고 명품을 구입하는데 돈을 쓰고 싶지않다. 그리고 나는 명문가 자식도 아니고 명문가가 되보려 한 적도 없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런 오해를 받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평소에 명품과 명문가 애찬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명품이란 무엇일까? 한 물건이 명품으로 인정받는 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이것은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구촌에 사는 어떤 민족도 이 물건에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을 소장해도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용도가 이와 같던지 비슷해도 언제나 비교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물건을 명품이라고 할  때  공감이라는 필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어릴 때 어른들이 한 말씀 가운데 “호랑이와 산삼은 처음 봐도 안다.”라는 말이 있듯이 명품은 첫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명품은 무엇 때문에 구분이 되는가?
역사성과 스토리가 있다. 장인들의 피눈물나는 숙련도의 완성이다. 그래서 전문성이 녹아있고 정직과 신실함이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몇 년전 독일의 한 자동차회사가 그 차의 매연측정에 신뢰를 깨뜨려서 국내자동차 시장에서 그 브랜드 의미지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명품은 그 물건을 소장하는 순간 소비자를 돋보이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명품에 대한 나 개인의 정의는 “인간 양심과 성실성 그리고 정직성의 결정체”라고 말해본다. 그러므로 명품 자체를 욕할 이유는 없다. 다만 명품을 가질 소양이 있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이와 같이 명품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명문가라는 동경의 대상이다. 우리 사회가 근대화와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고정되어 왔던 귀족사회의 붕괴로 누구나 명문가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한 가문만 콕 집어서 이 나라 최고의 명문가 집안이 누군가 여론조사를 해본다면 각각 다른 대답을 하겠지만 그래도 공감하는 명문가라면 후삼국 이후 천년을 양반계급으로 살았고 영의정을 9명이나 배출했으며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던 백사 이항복의 후손 이회영 선생의 집안을 꼽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910년 나라가 일제의 병합되자 나라를 되찾아 독립시켜야 한다고 전 재산을 팔아 독립자금으로 사용하고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갔던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귀감이 된다. 하지만 해방 후 계급사회는 완전히 무너지고 일반백성들은 국민과 시민이 되어 교육받을 기회와 재화를 축척할 기회를 가짐으로 정치, 경제, 문화, 종교에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룬 것에는 갈채를 보낼 만 하다.


하지만 이들이 이룬 사회적 신분과 지위와 권력과 학식 등 이런 것들이 이들에게 신흥명문가 라고 불러 줄 위치에 있는지 묻고 싶다. 명문가란?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의 공공정신이 담보될 때 가능하지 않겠는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명문가 자녀들이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2000명이 전사했으며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싸웠던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의 둘째왕자 앤드류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일과 6·25 한국전쟁에서 미군 장성의 자녀들이 142명이나 참전해서 35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명문가가 어떤 의무를 져야하는지를 보여준다.


임진왜란 때 선조와 그 신하들이 한양도성과 백성들을 왜군의 칼날과 조총아래 버려두고 얼마나 빨리 의주로 도망을 쳤으면 명나라 조정에서는 왜와 조선이 연합해서 명나라로 쳐들어 온다고 난리를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 사회는 검정도 안된 자칭타칭의 명문가들이 너무많다.


최근 기독교 안에서도 명문가라는 생경한 용어들이 흔히 쓰인다. 우리는 이런 말이 오가기전에 예수님께 하신 말씀을 상고해야 하겠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 23:11) 우리는 아무 검정없이 백분위에 익숙해져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엘리트 우상주의를 마음에서 몰아내고 명품신앙으로 낮아짐과 섬김으로 신앙의 명문가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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