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2)

장희국 목사의 복음 이야기-14

장희국 목사
문화교회

또한 한 환자는 원장에게 자신의 빈한함을 호소했고, 원장은 또 한 번 기가 막힌 처방전을 내립니다. “직원들이 퇴근 한 뒤 뒷문으로 오시오, 내가 문을 열어 두겠소.”


어떤 가난한 여인에게는 아예 탈출을 사주하기도 합니다. 치료비가 없다고 호소하는 여인의 손을 잡고 짤막하게 기도를 드린 뒤, 장기려는 눈을 빛내며 말했던 것입니다. “기회를 봐서 환자복을 갈아입고 탈출하시오.”
장기려는 왜 이런 행동을 했는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의사가 된 날부터 지금까지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책임감을 잃어버린 날이 없었다. 나는 이 결심을 잊지 않고 살면 나의 생애는 성공한 것이고, 이 생각을 잊고 살면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장기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한국 기독교에 침투한 맘몬신을 일생 내내 혐오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예배당이 하나님의 영광이 느껴지지 아니하고, 사람의 예술품으로 맘몬의 재주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성전에서 비둘기파는 자들을 징치한 예수님처럼, 그는 이 말로 우리들 마음속에 활개치는 탐욕의 멱살을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배부른 제사장들, 종교 귀족들, 개 교회에서 로마황제처럼 군림하는 자들의 전유물로 전락해 버린 한국 기독교를 보며 탄식합니다. 그는 평생 버는 것보다 주는 것이 많은 가불 투성이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본인도 당뇨병으로 고생하면서도 기력이 있을 때까지 무의촌을 돌보면서 자신이 평생 믿고 따른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던 그가 60년 동안의 의사 생활에서 남긴 것은 1000만원이 든 통장 하나였습니다. 그는 그 통장마저 자신을 마지막으로 간호했던 간병인에게 주어 버립니다.


북에 두고 온 아내를 위해 평생동안 수절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를 “특혜”라고 거부하는 바람에,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1995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떠난 날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 12월 25일 이었습니다. 무언가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 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배너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