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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삶을 살려면⑤-간증(3)

호밥의 산책-9

정길조 목사
천안참사랑교회

2012년 10월 3일, 저희 아들이 결혼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평상시에 사람들을 통해서 말로만 듣던 며느리를 저희 가정에 실제로 맞이하게 됐습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있듯이, 이 말이 그냥 전해 내려온 것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제 눈에 며느리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기도 하고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마주 본다는 자체만으로도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 교회에서 여전도회 주최로 교회 앞 놀이터에서 바자회를 하게 됐습니다. 저희 며느리도 무리들 속에 함께 섞여서 옷가지들을 훑어보며 마음에 드는 것을 찾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평상시에 제 아내가 쇼핑을 가면 저도 때때로 같이 다니며 물건 고르는 것을 도와주곤 했는데 그날도 제 아내에게 했던 대로 며느리와 함께 물건들을 보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며느리가 고른 옷들을 모두 제 돈으로 지불해 줬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느껴지는 것은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선뜻 낼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전혀 아까운 마음이 안 들고, 심지어는 사준다는 그 자체만으로 제 마음이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며느리에게 저는 어느 날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가장 훌륭한 시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할 테니 너도 가장 훌륭한 며느리가 되도록 노력하거라”고 말입니다. 그날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 후 저는 신앙적인 면에서나 가족 관계에 있어서나 또한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에서나 여러 다양한 면에서 며느리에게 권면하고,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일러 주는 것마다 며느리는 한 가지 한 가지 제가 말 한대로 잘 고치며 정말 잘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교회 안에서 저의 수제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어느 날 수요 저녁예배를 마치고 교인들을 배웅해 주기 위해 교회 현관에 서 있을 때였습니다. 교인들이 다 빠져나가고 제 곁에 서 있는 며느리를 보는 순간 너무나 착하고, 예뻐서 제 두 손으로 볼을 토닥거려 줬습니다.
제가 며느리에 대하여 사랑스러운 마음이 마구 일어났던 첫 번째 이유는 전에 없던 며느리가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시아버지인 제 말에 한 가지 한 가지 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오는 사랑스러운 열매들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때부터 하나님 말씀대로 한 가지 한 가지 순종하며 그릇된 나의 삶을 하나님 뜻대로 부지런히 고쳐갈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히브리서 11장 5절에 하나님께서 에녹을 죽음을 보지 않고 데려가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5장 21~24절을 보면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삶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모스 3장 3절을 보면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라고 했습니다.
즉, 에녹이 하나님 뜻에 전적으로 자신을 맞춰 사는 삶을 사니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지식과 상식을 초월하는 이적(살아있는 채로 천국에 올라가는)을 에녹에게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저의 신앙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회개 기도입니다. 즉, 전적으로 하나님 뜻에 저를 맞춰 살아가는 삶입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삶을 살면 늘 노트에 적어가며 매일 나를 고쳐가는 기도를 해왔고, 지금도 조그마한 죄라도 하나님 뜻에서 빗나가는 잘못을 범하면 늘 기도 때마다 1순위로 기도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전에 저에게 주신 은혜를 한 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저의 눈이 떠지는 순간 갑자기 너무 놀란 나머지 저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습니다.
“큰일 났네! 오늘 알람 소리를 못 들었나 보다”라고 말입니다.
왜냐면, 전혀 피곤함이 없는 상태에서 영은 너무나 맑고, 몸도 얼마나 가볍고 산뜻하던지 마치 사슴처럼 한 번에 2~3m씩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았고 또한 표범처럼 3~4m 높이도 순식간에 뛰어넘을 수 있는 그러한 몸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그대로 표현하면 나의 몸이 나의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몸을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너무나 놀래서 혼자 생각하기를 “잠을 얼마나 많이 잤으면 이런 몸이 됐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때 이 지구상에서 제일 빠른 우사인 볼트와 100m 달리기 경주를 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날 기도를 못 하고 넘어간 것 같아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그럼 몇 시나 되었을까” 하고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40분밖에 안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성을 가다듬고 알람이 울리기까지 10분 남았는데 더 잘까? 일어날까?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잠을 선택하고 잤습니다.
잠시 후 알람 소리에 눈을 떴는데 그때는 평상시와 똑같은 몸으로 무직하면서도 피곤하고, 영과 혼도 혼미한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어찌 몇 분 차이로 너무나 대조되는 것이 남한과 북한, 여름과 겨울처럼 너무나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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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과 협동의 능력을 보여주는 침례교회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이사야 43:19) 새해를 은혜로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코로나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침체된 교회들이 회복의 문턱을 넘어 서서 활기차게 성장할 기회를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통스러운 터널에서 견디게 하시고, 인내와 절제를 통해 새로움을 기대하게 하셨으니, 새해에는 고통스러웠던 모든 옛 일을 딛고 일어서며, 다시 시작하는 마음과 결단으로 새시대를 열어 나가겠습니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세상사람들 가운데 어떤이들이 말하기를 교회에는 희망이 없다고도 말합니다. 교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한 이유도 있고, 이단들의 폐혜를 본 사람들도 있으며, 여러 사회적 상황속에서 무작정 불신이 팽배한 이유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땅의 희망이자 소망입니다. 세상의 마지노선은 오직 교회 뿐입니다. 세상을 지키고 의와 생명을 주는 최종병기는 예수그리스도가 주인이신 오직 교회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허락하셔서 성령님으로 몸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랑과 희망이 교회이기에, 세상도 여전히 교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