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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음악으로 풀어보는 성경이야기(268)

다윗의 찬양론(3)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사무엘하6:21-22)”

 

왕의 찬양하는 모습에서 왕의 체통을 깎아먹을 만한 것이 있었다며 자신의 남편을 비난했던 미갈을 향하여, 다윗이 당당하게 반론을 폈던 이 선포적 예언 속에서, 세 번째로, 진정한 찬양과 경배의 핵심은 영적 집중력에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갈릴리호수의 물위를 걷는 기적을 맛보았던 베드로가 오직 예수님께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면 그가 누렸던 기적의 시간은 더욱 길어졌을 것이다. 물위를 걸었던 그 짧은 시간은 베드로의 마음이 빈틈의 여지없이 온전히 주님께 집중하며 그와 하나가 되었던 순간이다. 완벽한 찬양의 순간도 이와 같다. 찬양받으실 주인공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찬양으로 나아가는 자는 찬양의 시간 동안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하고, 그분만을 마음에 담고 있어야 한다. ‘두 마음을 품고 찬양하고자 하는 자는 찬양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두 마음은 두 가지 이상의 마음이나 상념들을 포함하는 말이다. 개인적인 근심걱정이나 두려움을 마음에 잔뜩 품은 상태에서 진정한 찬양이란 있을 수 없다.

 

완벽한 찬양의 순간을 맛보았던 베드로의 기적이 오래 유지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타깝게도 베드로는 주님께만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과 함께 풍랑도 함께 보기 시작했다. 오직 주님을 향했던 하나의 마음속으로 풍랑으로 인한 두려움이 침입하여 즉시 베드로의 마음은 두 마음으로 오염됐다. 집중력 부족은 두 마음을 품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두 마음은 영적 집중력을 무너뜨리는 원흉이다. 영적 집중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점점 더 물속 깊이 빠져드는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시며 그를 책망하셨다(14:31). 이 상황에서의 의심은 주님에 대한 집중력 부족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찬양이 믿음의 표현이므로 영적 집중력이 부족한 찬양은 내용을 갖추지 못한 형식적 껍데기에 불과하다. 형식만 남은 껍데기 찬양은 주님에 대한 집중력 부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찬양에 대한 미갈의 무지는 찬양의 영적 특성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됐다. 그녀는 찬송을 단순히 종교적 내용이 담긴 노래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찬양이 믿음의 고백인 줄도, 진정한 찬양이 영적인 유기체인 줄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찬양에 영적 집중력이 요구되는 줄도 몰랐다. 그녀는 찬양을 하나의 형식으로만 보았다.

 

형식적인 예식순서로 채워지는 예전(ritual)이나 종교행사에 일종의 양념으로 첨가되는 액세서리로 여겼다. 껍데기 찬양, 즉 형식이 중요하다 보니 그녀에게는 왕의 권위나 위엄이나 체면이 찬양보다 더 중요했다. 남편을 향한 미갈의 분노는 이러한 영적 무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반면에 다윗은 하나님께 찬양할 때 전인격을 통해서 온전히 그분께 몰입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적 집중력에 의한 몰입된 찬양의 순간에는 찬양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찬양을 우선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다. 왕이라는 체면이나 체통도 그의 찬양을 방해할 수 없었다. 신하들을 비롯한 종들의 업신여김도 그의 찬양을 방해할 수 없었다. 다윗은 완전히 몰입된 찬양의 세계로 들어가 있었기에 찬양하는 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비록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실성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몰입된 찬양에만 집중했던 다윗이다. 찬양의 순간 그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봤다. 오직 찬양받으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생각만을 자신의 마음에 가득 담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마치 유치한 어린아이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나 두려움도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는 그의 순수한 찬양의 마음을 오염시킬 수 없었다. 다윗 자신이 찬양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뛰어노는 것이라고 정의한 말속에 진정한 찬양의 의미가 담겨있다.

 

노주하 목사 / 대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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