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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는 아가페의 세 사람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1944년 9월 일제때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5학년 외사촌 누나가 시킨대로 “니시하라 히대하루”(西原永春)라고 일본 선생이 부르거든 일어나서 “하이(예)”라고 대답해서 일학년에 입학했으나 일본글 배우기가 싫어서 공부는 안하고 울릉도 바닷가에 우럭잡이로 시간을 보내어 통지표는 맨 뒤에서 2등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한국의 손양원 목사같은 하천풍원(가가와 도요히꼬) 선생의 전기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고베 시장의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서러움 속에 자라면서 폐병으로 고생했다. 소년 시절 고뇌 속에 길을 가다가 지하에서 들려오던 찬송 소리에 이끌려 선교사가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크리스천이 됐다. 그가 회개한 말씀, 은혜받은 말씀은 산상보훈 가운데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 보라(마 6:25, 34)는 예수님의 따뜻하고 낙천적인 말씀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어두운 일본 세상을 밝힌 사랑의 빛이 됐다.


내가 읽은 가장 감동을 주는 그의 두 책 “사선을 넘어”와 “사랑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은 그의 참된 인격과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의 사랑의 일화는 매우 많다. 그는 버린 바 된 창녀와 결혼했고, 살았을 때 한쪽 눈을 빼어 장기를 기증했으며, 한번은 시장 잡배들에게 농락을 당했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 5:40)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들은 속옷을 벗어달라고 달려들었다.


가가와 선생은 겉옷을 먼저 벗어주고 속옷은 길에선 벗을 수 없으니 집까지 따라오라고 했고, 방에 들어가 ‘훈도시’(속옷 팬티)를 벗어 문을 열고 던져 줬다고 했다. 그는 빈민가의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했다. 일본 천황에게까지 알려져 배알했을 때, “그대의 소문이 높아짐이 귀에까지 들리니 그대가 전하는 예수는 어떤 분인가?”라는 물음에 하천풍언 선생은 “감히 여쭙기는 예수님을 보시려면 저를 보십시오!”라고까지 담대히 말했다고 전해진다.


1948년 해방 후 서울에 들렀다가 부산을 거쳐 귀국해서 소천하셨다고 한다. 인도 나갈랜드 코하마의 아오교회에서 2000여명 이상 모인 한 주간 집회를 마치고 귀국길에 이상기 선교사의 안내로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가 봉사하다 운명한 인도의 캘커타(Kolkata) 수녀원에 들러 남자 150여 명, 여자 150여 명의 말기 환자를 만났다.


길거리에 버려진 사망 직전의 불쌍한 영혼들이 죽어 장례를 치를 때까지 최후의 위로를 받고 있었는데, 2층엔 테레사 수녀가 소녀 시절 예수님의 십자가상 앞에 엎드려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모양의 작은 기도실이 있었다. 교황도 이 수녀원을 다녀갔고 그녀를 성녀로 명명했다.


테레사의 원래 이름은 아그네스(Agnes)로 1910년 8월 27일에 옛 유고슬라비아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알바니아 출신의 어머니와 건축일을 하며 정치활동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일찍 죽자,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으며, 그러다 보니 최하의 인생살이었다. 그녀의 키는 난쟁이에 가까울 만큼 작았으며, 얼굴은 제멋대로 생긴 못난이였다.


주님의 은총을 받아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소명에 따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데서 깊은 내적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이 소명에 대한 증거”라는 신부님의 충고에 이어, 18세 때 “인도로 가라”는 주님의 소명을 받았다. 1937년에 종신서원을 했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캘커타로 보내져 성마리아 학교의 교장이 됐고, 로페토에서 가장 행복한 수녀로 불리었으나 주변 불쌍한 빈민가의 고통에 관심을 두면서 1946년 기차 안에서 두 번째 “수도회를 떠나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도우라”는 소명을 받았다.


거지, 부랑자, 피난민들을 돌보면서 1950년에는 “자비선교회”(Mission of Charity)가 탄생했다. 가난, 정결, 순종, 이 세 가지 기본서약 외에 “가난한 자들을 섬기기”를 서약하는 자매들이 늘었다. 테레사 수녀의 자비의 봉사를 보고 감동한 힌두교의 피와 저주의 타리스 신을 모시는 승려들이 저들의 신전 대지를 잘라 이 외국 여인에게 희사하므로 병원 설립을 발표했을 때 기자가 “현재 갖고 있는 기금은 얼마나 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테레사 수녀는 주머니에서 동전 몇 닢을 꺼냈다. “여기에 두 실링이 있습니다.” 모두가 비웃었으나 수녀는 심각한 낯으로 “주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나 가능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테레사 수녀는 1997년 9월 6일, 87세로 임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남긴 “주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나 가능합니다”라는 말은 91개국의 600여 개에 달하는 “자비선교회”의 공동표어가 됐다. 이것이야말로 십자가와 부활신앙의 승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 여인에게 기적을 주신 주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영국 글래스고(Glasgou)에서 목회하던 존 하퍼(John Harper) 목사는 매주 헌신적인 목회를 했다. 하지만 그는 시카고의 무디 기념교회에 초청되어 미국으로 건너가던 중 그가 탔던 타이나닉(Titanic) 호가 거대한 빙산과 정면 충돌해 2,207명이 수장됐을 때 함께 실종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러 해 후에 캐나다의 한 도시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청년이 “타이타닉 호가 침몰됐을 때에 저는 널판 위에 표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존 하퍼라고 하는 분이 무엇엔가 의지하여 표류하고 있더니 나에게 ‘예수를 믿습니까?’라고 물어서, ‘아니요’라고 했더니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라고 말하고 그는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라는 간증을 했다. 하퍼 목사는 죽기 전 마지막까지도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 한 영혼이 구원받아 주 앞에 서게 한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