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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C. 펜윅(Malcolm C. Fenwick)의 북방선교-4

안희열 교수
침신대 신학과
(선교학)

반면에 2세대는 1세대보다는 복음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 좀 떨어지지만 현지 언어에 능숙하고, 현지 문화와 충돌이 거의 없다. 소명만 분명하다면 훌륭한 영적 자원이 될 수 있는데 바울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렇다면 재만 동아기독교의 북방선교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로 재만 동아기독교는 이주자들에게 ‘세상의 꿈’보다는 ‘하나님 꿈’을 실현시키는데 탁월했다. 대다수 디아스포라들은 타국에 와서 성공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사업, 학업, 예술 등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재만 디아스포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20세기 초반 만주로 이주 온 한인들은 생활고(35.8%), 금전난(16.4%), 경제적 어려움(14.9%) 등 96.9%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이주했다. 한마디로 ‘세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주했다. 하지만 펜윅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꿈’, 즉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 ‘세상의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일깨워줬다.


실제로 펜윅은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창설한 후 바로 그 다음해에 직접 간도를 방문해 순회하다가 이곳에서 최성업, 이종근, 이종만, 장진규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를 영접토록 한 것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꿈’을 이루도록 하는데 얼마나 모범을 보여준 자임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재만 동아기독교의 교회개척은 훈춘구역(12개)→간도구역(28개)→왕청구역(10개)→북만구역(5개) 순으로 이뤄졌다. 사실 펜윅은 1906년에 ‘간도’에 첫 전도자들을 파송했지만 교회개척은 훈춘구역이 가장 빨랐다. 훈춘구역이 1911년에, 간도구역이 1913년에, 왕청구역이 1915년에, 북만구역이 1930년에 교회개척이 이뤄졌다. 왜 훈춘구역에서 교회개척이 빨랐을까?


이곳은 북한과 시베리아와 맞닿아 있는 국경 지대여서 양쪽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훈춘구역의 모세평교회가 1911년 봄에 개척되기 이전에 북한 경흥구역의 고읍교회가 1908년 봄에, 증산교회가 1909년 봄에, 회령구역의 회령교회가 1909년 봄에 개척됐고, 더욱이 훈춘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시베리아의 연추(크라스키노)구역에서 달미교회가 1909년 2월에 개척된 것은 훈춘구역의 교회개척을 앞당기는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당시 교회 개척자들은 순회전도자(circuit evangelist)로 사역했기 때문이다.


셋째로 재만 동아기독교는 건물(building) 중심의 ‘조직교회’ 보다는 집(house)에서 예배드리는 ‘가정교회’가 많았다. 특히 재만 동아기독교는 약 70~80%가 가정교회(house church)였다고 한다. 다만 가정교회는 교회를 빨리 개척할 수 있는 ‘자전’(self-propagating) 선교에는 탁월했을지 몰라도 신자들이 목회자의 사례비와 교회건축에 책임을 가지고 지역교회를 든든히 세우려는 ‘자치’(self-governing) 선교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사실 펜윅의 가정교회 중심의 교회개척은 재만 동아기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지역에 해당됐다.


넷째로 재만 동아기독교의 교회개척은 목사가 아닌 평신도가 주축을 이뤘다.
예를 들어 펜윅은 1924년에 만주선교를 위해 두 명의 목사(牧師)를 “구역 책임자”로 임명했는데 이들의 주된 업무는 ‘담임목사’가 아니라 해당 구역을 순회하고 전도하는 ‘순회전도자’였다. 실제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재만 동아기독교 55개 교회 중에서 평신도들이 개척한 교회가 50개 교회로 총 91%를 차지한 것을 보면 재만 동아기독교는 그야말로 ‘평신도가 사역하는 교회’임을 알 수 있다.


3. 현지인 선교를 위한 동아기독교의  만주교회 개척
재만 동아기독교의 두 번째 선교 대상자는 중국 현지인이었다. 이들의 수고로 만주 지역에 세워진 중국인 교회가 7~10개 정도여서 재만 동아기독교회 중에서 약 10%를 차지했다. 재만 동아기독교가 중국인 선교에 열정을 쏟아 부은 것을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만주 임강현에 중국인 이경춘 씨를 총찰로 임명하여 방사현 교사와 중국인 유자운, 진수장, 양풍년 씨 등과 동반해 그 부근 지역에 전도할 것을 작정하고 실천에 옮겼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재만 동아기독교는 간도 서쪽 지역에 있는 내몽고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1924년에 이현태, 이충신, 방사현을 파송해 몽고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이들의 수고로 내몽고에 최소한 3개의 교회가 세워지는 축복도 있었다. 하지만 이현태 교사는 거친 유목생활을 하던 몽고인들의 습격을 받아 1939년에 순교를 당했다. 이처럼 재만 동아기독교가 디아스포라 외에도 중국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한 정신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본 받아야 할 자세이다.


4. 평가
재만 동아기독교의 북방선교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교회라면 종성동교회이다.

종성동교회는 1913년 조정립 총장이 10명의 신자들과 함께 개척했다. 종성동은 용정에서 동북쪽으로 22km 떨어진 산골이었는데 이곳 출신인 김영진은 1907년 동아기독교 전도자들로 통해 예수를 영접한 이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김영진은 간도 지역을 뛰어 넘어 평안북도의 자성, 후창구역까지 전도하는 일을 내일처럼 여겨 그를 “간도 구역의 주역”이라 부른 것을 보면 그는 분명 ‘북방선교의 대가’였다. 김영진 목사와 그의 형 김영국 감로의 목회를 통해 종성동교회는 “60호(戶)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45호(戶) 마을 주민이 거의 다 교인”이 될 정도로 부흥해 교인수가 무려 130여 명에 달했다.


안타까운 것은 김영진 목사와 김영국 감로가 전도 나갔다가 돌아온 후 1932년 종성동교회에서 마적단들에게 몽둥이와 총에 맞고 칼에 찔려 과다출혈(過多出血)로 김영진 목사는 당일 저녁에, 김영국 감로는 그 다음날 순교한 것이다. 이처럼 두 형제의 삶 속에는 북방선교의 ‘3C’ 전략인 헌신(commitment), 순회선교(circuit evangelism), 교회개척(church planting)이 그대로 베여 있었다. 그 다음 1930년대 이후부터 재만 동아기독교회의 교회개척이 멈춰버린 것은 만주사변(1931년)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가 노골화되면서 교회박해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림 “재만 동아기독교의 교회 분포도(1889~1949)”를 보면 각 구역별로 마지막에 세워진 교회는 다음과 같다: (1) 훈춘구역의 미전교회는 1930년 봄; (2) 왕청구역의 남흥동교회는 1932년 가을; (3) 간도구역의 봉황성교회는 1937년; (4) 북만구역의 목단강교회는 1937년 봄. 일제가 1931년 만주사변에서 승리한 이후 신사참배를 강압적으로 강요한 것을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국은 만주국을 건설하여 부의제왕(傅儀帝王)을 봉하고 토벌작전을 할 때 전사자를 위한 위령제 단을 설치하고 그곳에 참배하라는 문제로 재만교회와 교회기관에 박해가 심하였던 것이다.” 국내든 만주 땅이든 신사참배 강요에 동아기독교인들은 절대 순종하지 않았고 이에 따른 교회의 핍박은 교회개척의 속도를 멈추게 했고, 이후 교단해체령(1944년)으로 인하여 재만 동아기독교는 만주에서 점차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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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위기교회, 총회와 함께 극복한다 지구촌교회·강남중앙교회·성광교회·여의도교회 등 지원 동참 목회자 생계비·마스크·손세정제·세탁세제 물품 전달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19로 대구·경북지역을 비롯해 전국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침례교 총회(총회장 윤재철 목사) 소속 강남중앙교회(최병락 목사)와 지구촌교회(최성은 목사), 성광교회(유관재 목사), 여의도교회(국명호 목사)가 코로나19 발생 지역과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온정의 손길을 모아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교회별로 대구와 경북지역, 그리고 전국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의 교회와 목회자를 위해 강남중앙교회와 지구촌교회, 여의도교회는 긴급 목회자 생계비 지원으로 각각 1억원과 3000만원, 1000만원 후원금을, 성광교회는 개인용 마스크와 손세정제 등을 지원하기 위해 2000만원을 헌금하고 코로나19 대응에 협력하기로 했다. 또한 강남중앙교회는 2000만원 상당의 세탁세제도 별도로 기증했다. 현재 대구에 거주하고 있는 윤재철 총회장을 대신해 총회 총무 김일엽 목사는 지난 3월 3일 지구촌교회와 강남중앙교회를 차례로 방문하고 각 교회의 후원금과 물품을 전달받으며 총회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