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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의 이 말씀을 대학 시절에 세상사와 인류 역사로 살펴볼 때, 납득이 잘 되지 않는 메시야 예수의 말씀이었다. 이 세상의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나 학생들이나 직장인들과 정치인이나 모든 사람들 중에 우선 나부터 섬기기에 대접받기를 마땅하게 좋아하며 기뻐하지 않았든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중에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나아와서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는가?”로 물으니 그들은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소서”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섬겼기에 좌우에 앉는 자리를 요구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알지 못하는구나. 나의 좌우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고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는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대답하셨다.


이러한 대화를 들은 열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을 대하여 분노하게 됐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서 등극하시게 되면 다른 제자들도 우정승, 좌정승의 자리에 함께 오르는 야심과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그들의 생각에 역설적인 대답을 하신 후, 가장 위대한 유언의 말씀을 주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처음 교회에 출석하면서 암송한 요한복음 3장 16절로 구원받은 다음에 목회 신조의 말씀으로 간직해 왔었다고 여긴다. 구약성경에서 몇 곳을 찾아보면 먼저 사르밧 과부의 엘리야 선지자를 대접한 이야기이다.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하신 엘리야의 말씀에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왕상 17:12)고 애절하게 대답했으나 엘리야의 말씀에 순종해 먼저 작은 빵을 만들어 대접했더니 엘리야의 말대로 삼년반 기근 중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님께서 복음 전도하실 때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눅 8:1~3)


예수께서 큰 무리를 먹이실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물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어린 아이가 자기 먹을 빵을 주님께 드림으로 여자와 아이 외의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를 거뒀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대원에 입학하면서 한 주간 신구약 성경을 묵상하면서 성령의 충만을 체험했다. 열정으로 기도하는 중에 김신봉 목사님이 개척해 사역한 후에 안병결, 최한원 두 분 전도사님이 일년 씩 목회하고 떠난 도안교회를 알게 됐다.


대전지역을 맡은 서달수 선교사님은 “도안리는 부흥이 안되는 지역이라 교회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서 필자는 신학생 주제에 ‘선교사들이 계속해서 교회를 개척해 오면서 세워진 교회문을 닫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대학생활 4년 동안 영어영문학과의 힘들고 어려운 공부에도 대전대흥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중고등부 담당 교사와 지휘자 주성범 교수가 없을 때는 장년부 예배에 성가대원으로 가끔 장년예배 지휘자 대행도 감당했다.


이 모든 것이 오직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종으로 섬기시던 사실을 기억하며 섬겨 온 것이다. 결국 1964년 3월 8일 도안교회를 찾아가는 길에 유성에서 대덕군 기성면 도안리를 찾아가는 길에서 깨닫게 해 주신 말씀이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이었고 오늘에 이르는 지난 57년 목회의 사명과 지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