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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아이고! 화산댁, 아들 낳아 반갑네요!” 두각댁이라는 이웃 할머니는 새끼줄에 고추가 달린 금기(Taboo)를 보고도 무례하게 들어와 어머니께 축하 인사를 했다.
당시 부모님은 종교가 달랐다. 조상들이 함경도 함흥에서 수백 년간 사시다가 강원도 강릉에 내려오신 부친의 증조부께서도 유도(유교)를 신봉했고, 그 후손도 계속 유학을 배우고 살아오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무속종교(Shamanism)와 불교를 믿어 왔다. 나는 왜정때 1937년 11월 30일(양력 12월 28일) 저녁때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저동 439번지(본적)에서 한학수 농부(아버지)와 전유봉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지금 그 출생지는 주사골 중에도 안동리 말등산 밑 봉래폭포 아래 맑은 지하 샘물이 솟아나는 곳에서 그리 멀지않는 초가집에서 3세까지 자랐다고 어머니께 전해 들었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는 밖에 나갔다 들어오실 때 ‘객귀’를 물리친다고 마당에 십자가 표시를 긋고 칼을 한복판에 꽂아두기도 하셨으며, 부엌 부뚜막 위에 찬물과 표주박에 쌀을 넣어놓고 조상신을 섬기셨다. 동생들을 낳으셨을 때는 ‘삼신’에게 정수를 떠 식사판 위에 놓고 비시기도 하셨다.


물건을 옮길 때도 조심하고 이사를 할 때도 ‘손 없는 날과 방향’을 택하셨다. 그 외에도 어떤 일을 할 때에 귀신이 무서워서 점을 치기도 하시고, 집에 늘 드나드는 여승 양남댁에게도 묻기도 하셨다.
그날 두각댁이 왔다간 후 아이는 젖도 먹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잠도 안 자고 계속 울기만 했다. 소위 불신자와 무당의 말로 “부정을 탄 것”이었다.


나중에 알아낸 것이지만 두각댁의 남편인 어부가 바다에 빠져 죽은 귀신이 애기에게 붙어서 죽는 소리를 지른다고 점쟁이가 말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힘을 다해 간호하고 달래었으나 수개월을 끌었다.
나중에는 어머니마저 애기가 애처로워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 나는 어머니께 물었다. “나는 쌍둥이가 아니고 형인데 왜 동생하고 키가 똑같이 자라요?” 어머니는 대답하시기를 “너는 애기 때 석 달간 젖배를 곯아서 그래”라고 말씀하셨다.


어려서 젖배를 곯은 것은 일평생 신체 건강에 큰 지장을 준다는 사실을 자라면서 더욱 잘 알게 됐다.
하루는 마당에 감자를 캐다 놓고 방에 들어온 아버지와 안방에 있던 어머니 사이에 말다툼이 오고 갔다. 두 분은 뱀띠 동갑내기셨다.
아버지는 종일 일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에 아내가 바가지를 긁고 있는데다가 애새끼마저 깽깽거리고 울어 재끼니 그만 19세의 젊은 서방은 홧김에 아기를 들어 마당의 감자 위에 집어 던지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깩”하고 소리가 그치더니 아기는 기척이 없었다. 어머니가 얼른 방에서 달려 나가 아기를 안아보니 죽어버렸다. “차라리 나를 던지지. 죄 없는 애기를 왜 던지는고!”하며 온돌방 아랫목 따뜻한 곳에 아기를 포대기로 싸서 눕히고 빨리 미음을 끓여 하늘님께 기도하며 정성스레 먹였더니 살아났다고 했다.


점쟁이 말로는 아버지가 애기를 살렸다고 했다. 애기가 죽을 때 붙어있던 물귀신이 떠나갔고 애기는 소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가끔 전철 경로석에 앉다 보면 얘기 중에 나이를 말할 때가 있어 나의 나이를 밝히면 실제 나이보다 5~10살 아래로 보기도 한다.


건강비결을 물어볼 때 나는 마음의 평안이 최고의 비결이라고 말하고, 예수님 믿으면 성령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보약 중의 보약이라고 말하며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살아간다고 고백한다. 나는 성령으로 충만 받고 아래의 말씀에 확신을 얻어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오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미 2000년 전에 나의 병과 약한 것을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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