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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명국 목사 회상록-사랑과 법(Ⅱ)

한명국 목사 / 증경총회장, 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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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석학은 자유는 인간의 자기 이해 곧 자신이 무엇이며 무엇이 되느냐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니버의 그러한 자유정신을 위한 인간의 사랑은 생활의 법칙이라는 내용을 이끌어 올 수 있는가? 소크라테스가 부정의 소리에서 중요하고 심오한 결론을 이끌어낸 것 같이 우리는 자연과 이성의 구조에 대한 사랑과의 관계도 숙고할 수 있다.

 

사랑은 법보다 고차원적 단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행위의 강제력이 없고 성문화되지 아니한 법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우선 법으로 처리하려 한다. 그래서 인간을 위한 도덕적 율법인 사랑을 잊어 버리기 쉽다.

 

사랑은 인간을 위한 법이며 사랑의 법은 인간의 제한된 상태에서의 인간을 위한 무제한의 법이며, 인간은 자신의 종말까지 자기 자신을 형성해 갈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또한 인간의 사상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자신의 빈약 속에서 그것을 견지할 수 없다.

 

지고의 사랑 아가페(agape)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 하나님의 법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인식이 불가피하게 궁지에 빠진 자신을 위해서나 자신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보다 잘 견지된 자신을 위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성서의 용어인 아가페 즉 하나님은 사랑이시라(God is Agape)”라고 한 것은 리츨(Ritschl)이 그대로 받아 그것으로 엄격한 의미에서의 정의의 개념을 형성했는데 이것은 최고 존재자의 생각이므로 다른 아무 신앙도 이와 경쟁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는 선언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난 이 아가페의 가장 뚜렷한 특징인 긴장성과 이율배반에 대해 그는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에밀 부루너(Emil Brunner)리츨이 하나님의 사랑과 병존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이념을 의식적으로 억압한 것은 하나님의 속석에 대한 그의 교리의 특이한 요소일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역설적인 것과 대립된 합리적이며 일방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아가페는 실존적 인간의 본질에서나 인간이 그의 미확정의 자유 속에서 기상화하는 사실에 기초를 둔 물질의 심장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의 초월적 자유는 사랑을 위해 존재하고 사랑을 자유 속에 그의 생명을 위한 법으로서 결정한다. 사랑을 자연적 도덕법의 주요부이며 인간의 자유에 자리잡게 되는 법전이나 고정된 양상을 포함한다.

또한 그것은 초자연적 영역내에서만 인생을 위한 법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인간의 본성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우리는 즉시 인간을 위한 자연적 규범도 한정할 수 있다.

 

사랑의 법은 모든 도덕적 달성 위에 궁극적 초월의 입장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은 어떠한 정의의 달성을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비록 병자가 직시할 수 있는 건강의 환상으로나 인간이 소유하지는 못했으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을 근본적인 정의로 니버 교수는 사랑의 법을 확인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필요성은 병이든 건강이든 사랑할 수 있는 정신력을 소유하는데 있다.

 

에릭 프롬(Erich Fromm)은 그의 비평지인 인간자신을 위한 인간에서 니버는 자유 속에서 인간 자신는 너무나 위대한 존재로 우발적 존재 속에 자유를 누릴 수 없다. 그것은 그 자신을 넘어서 헌신의 목적물이고 막연한 우정의 분야라고 지적했다. “사랑은 전부이다(Love is all of all.)”라고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 선생은 말했다.

 

사랑과 법(Love and Law)”의 학설은 법으로써의 사랑과 법의 궁극에 있어서 사랑과 극한을 초월한 사랑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람세이(Ramsey) 석학을 평했다. 우리가 아는 한 법의 극한에 있어서 사랑은 결코 더 이상 관념적인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주관적으로 법을 능가한 사람과 법으로 사람 사이는 긴장이 있다. 니버는 이 논제 속에서 기독교 윤리의 내용과 의미를 정의하려고 시도했다.

 

자연과 규범이 일치하므로 자유와 사랑은 전통적 관념으로부터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신학의 본질적 전통 내에 소속된다.

이러한 사랑의 종류는 막연히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자유이다. 이것은 만일 니버 석학이 자연적 이성이 자유의 요구로서 사랑을 알게 되는 바를 허용한다면 특별한 진리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그의 사랑의 계명 중에 해야된다”(shalt)란 동사 단어를 열광적으로 사용한데 대해 비난했으나, 이것은 키에르케고르가 사랑은 모든 법의 틀 안에 물질적으로 있지 않는 최상의 법으로 인식됐기에 사용한 말이다.

 

나는 이와 같은 학술논문과 하늘에서 내 앞으로 내려온 십자가의 환상으로 아가페 사랑에 대학교 3년 겨울방학 중 학교 당직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기숙사에서 많이 울었던 일이 있었다.

신대원에 입학한 후 수도신학생과 합병한 후, 총학생회장이었을 때 기말 시험에 컨닝하다가 발각되어 학교 게시판에 오르고 퇴학이나 무기정학에 오른 학생이 있었다. 3일간 고민하며 기도하다가 구약교수이며 학생과장이신 정 교수를 찾아가 선처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또 찾아갔으나 역시 거절하셨다.

목사가 될 사람이 남의 글을 도둑질하는게 어찌 목사가 될 수 있느냐!”

그러나 사랑과 법논고를 소개하고 한남대학교 4학년 때 동급생으로 세익스피어의 어려움을 도와준 우정으로 김군을 용서해주시며 동기생으로 졸업할 수 있게 됐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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