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대학교에 입학하니 교수는 웃으면서 말했다.
1학년은 신입생 풋내기로 “Freshman”, 2학년은 조금 배웠다고 “Sophomore”, 3학년은 아직 손아래 미숙 “Junior”, 사가독서학년은 손위의 잘난 고참 “Senior”라고 했다.
인상 깊은 말이었는데 2학년에서 3학 년에 걸쳐 시건방진 나는 별도의 사전 없이 읽을 수 없는 미국인 최초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교수 의 걸작 “사랑과 법“(Love and Law)이란 책을 읽고 학보에 논문을 기고했는데 뒤돌아보면 정말 나의 인생과 목회에 가장큰 영향을 준 위대한 스승의 글이 됐다.
지난번에 기고한 글에 이어 “사랑과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칼 바르트(Karl Bart)는 독일의 위대한 신학자로 그의 교의학(Dogmaitc)에서 뜻깊은 문구를 인용하면 “다만 믿음”(Sola Fide)으로 “다만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 우리의 응답인데 “유한은 무한을 포함하지 못한다”(Finitum non capax infiniti)였다.
신대원에 들어와 그의 글을 읽으며 그의 몇 마디 단순한 신학사상의 표현이 오늘에 이르는 감명이겠다.
완전한 사랑은 예수님과 같이 법 곧 율법을 초월한 영역 내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신이 법과 사랑 앞에 선다.
사랑은 다만 선이지 상호 간의 책임을 뜻하지 않는다. 완전한 사랑의 입장에선 사람을 상호이해 관계도, 부주의도, 희생과 고난도 다 초월한다.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원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있을 따름이다.
사랑과 자선은 인간의 완전한 상호관계로 이끌 수는 없으나 그러한 경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이웃과의 관계에 대하여 유의해야 함을 희미하게 알고 있다. 이기적인 사랑은 자기 이웃을 사랑할 만한 힘을 갖기 전에 온다.
이기적인 사랑은 자기 이웃을 사랑할 만한 힘을 갖기 전에 온다. 사랑은 인간의 이웃이 돼야 한다.
만일 누구든지 그 자신의 생활에 있어서 사랑이 어떤 것임을 알고 이웃 사람의 편에까지 실제로 발을 내딛는다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하신 말씀에 접근함이요, 이것은 그리스 도와 마주침으로부터 마땅히 알아야 할사랑을 알아가는 존재로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대학시절 문창권 목사님으로부터 성경공부 시간에 성경에 나오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끌려 나온 음행한 여인에 대해 예수님의 취하신 율법과 사랑의 실제적 교훈으로 많은 논쟁이 있었다.
율법 7계명을 따르자니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이고, 사랑을 따라 살리자니 율법을 어겨 범법자로 만들어 죽이려는 음모에 예수님은 이렇게 저렇게 말씀해도 아귀에 걸려 죽이려 할 때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양심의 법으로 무도가 살았다(요8:3~11).
니버 석학은 일반적으로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윤리와 합리적인 결핍은 기독교의 사랑의 근본교회와 하나님 안에서의 신앙의 실마리를 줄 뿐 아 니라 또한 하나님 안에서의 신앙은 본질의 존재나 이상적 현실적 세계의 초월적인 단위 내에 있어서의 신앙을 의미한다고 했다.
헤겔(G.W. Friedrich Hegel)이 지존자 아닌 인간이 창조주를 믿는 신앙에서 자기의 위치를 바로 찾는 것을 모르고 인간 정신이 하나님과 일치되어 있다고 한 것은 마치 가련한 철학자가 그의 심원한 무구를 늘어놓은 다음에 재채기가 나서 책상 앞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로서 모든 시간과 존재들을 영원히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혼돈하는 실로 만화적인 광경과 같다고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을 풍자했는데 나도 이 글을 생각할 때마다 웃곤 했다.
오늘날까지 목회에서나 대인관계 및 생활철학으로 헤겔의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은 예수님의 사랑과 양심을 가르쳐 주신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 및 십자가 뒤의 부활의 영광으로 믿어 승리하게 됐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긴급조치 하에 반공법 보안법 형사소송법에 묶여 서대문 구치소 8개월 옥고 중에 깨달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의 참 좋은 주님의 위로는 출감 후지난 46년간 요셉의 옥고로 위로하셨다.
한명국 목사 / 증경총회장, 예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