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자매님, 제가 무슨 잘못한 말씀이 있어요?” 아무런 대답이 없어 다시 설교를 이어가기 바쁘게 복창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이라 중얼거렸다. 조금 참다못해 “자매님,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예배 후에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나 설교가 시작되자 또 계속 잠꼬대 같은 소리로 불평하는 듯 했다. 조용히 앞으로 다가서서 “꼭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지금 나오셔서 말씀하시면 저는 앉아서 듣겠으니 자 어서 나오세요?” 가끔 말대꾸는 계속하였으나 첫날의 설교는 잘 마쳤다.
그러니까 플로리다의 월튼 비치(Walton Beach)에 막내 동생 한명훈 목사가 시무하는 온누리 한인침례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였다. “막내야, 네가 설교할 때도 그렇게 따라 중얼거리냐?” “예, 늘 그래요.” “그래 너는 어떻게 참고 설교하냐?” “큰 형님, 이해하면 괜찮아요.” “아니야, 오늘 저녁 나처럼 조용히 타이르든지 아니면 꾸짖거나 책망하여 그 버릇을 고쳐야지! 글쎄 외국강사가 왔는데도 말끝마다 계속 씹어제키니 ...허 참네.”
“형님, 이해하니 아무 부담이 없어요. 사실 그 모매는 너무 불쌍해요. 한국에서 미군과 만나 살림 살다가 36세에 미군 따라 미국에 와서 이혼하고 그 후 백인 흑인 번갈아 네 번 살다가 54세에 홀로 살면서 이제 70세가 넘었어요. 혼자 살면서 말동무도 없고, 이웃처럼 가까이 해주는 사람도 없어요. 주일이면 교회에 나와 예배시간에도 혼자 뭐라고 중얼거려요. 저는 이해하니까 아무런 부담이 없어요. 혼자 복창을 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그를 내려다 보면서 설교해요.”
저녁 잠들기 전에 가만히 혼자 생각해 보니, 그래도 명색이 40여년 목회를 해온 그런 경험으로 오늘 노모매를 달래면서 설교하여 잘 넘겼는데, 5년째 목회하는 막내는 “이해하면 아무런 부담이 없다”고 하니 정말 훌륭하구나! 농담 삼아 저도 가끔 말했듯이 목사가 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삼해, 사해, 그리고 “오해”로 올라가 문제는 커지는 법이다 라고 했는데 오늘은 막내에게서 목회의 비법을 한 수 음미했다. 그래서인지 작년에 또 부흥회를 인도했을 때, 6억 들여 잘 수리해서 100여명 모이는 갑절의 부흥이 된 것을 보고 ‘잘 이해하는 목사의 교회는 다르구나’ 생각이 들었다.
설교중에 책장 넘기는 소리
조용하고 엄숙하게 설교를 듣고 있는데 강대상 바로 앞쪽 밑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가 두세번 들려서 살짝 내려다보니 옛날 서울교회에서 안수를 거절하고 자기가 전에 다닌 광천교회 신혁균 목사님께 안수를 받았다고 부임시에 자랑스럽게 말하던 집사였다. 슬쩍 내려다 본 후 계속 설교를 하는데 또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려 무심코 3-4초 동안 그 집사를 물끄럼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교 목소리가 끊기자 그가 저를 쳐다보며 눈길이 마주쳤고 저는 고개를 들어 설교를 이어갔다. 그 다음 주일은 역시 모자를 쓰고 교회당 안에 들어와 앞자리로 나오려다 이층으로 올라가 맞은편 앞줄에 앉았는데 목사가 설교하며 쳐다보란 듯이 설교는 안 듣고 성경책장만 이리저리 뒤지며 넘기는 것이 보였다.
유치원 화재로 교회건축헌금을 우선 사용토록 결의되었지만 직전 재무위원장인 그는 ‘건축헌금은 지정헌금이라 쓸 수 없다’고 고집했다. 교회는 성경의 징계순서를 거쳐(마18:15-18)오는 주일이면 사무처리회에서 재명처분 여론이 팽배한 때였다.
드디어 주일 새벽에 가부결정에 따르는 명확한 영몽으로 저는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았는데 사무처리회는 만장일치로 재명의 징계가 결의 되었다. 이 결의로 저도 검사의 호출로 불려가 교회대표권 행사를 하여 검사의 지시로 건축헌금을 환수받아 교회에 넣고 화재수습이 끝날 때까지 그 후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저는 교회의 결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목회자로서 그가 아무리 교회의 당면 위급한 문제에 역행했다고 하더라도 재명결정에 앞서 선처 변호를 해주지 못했던 것을 그 후 뉘우쳤다. 목회자에 대한 불만표시로 성경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저에게 남겨놓고 드디어 청주의 다른 교회로 이사갔고, 거기서는 회개했는지 봉사를 잘 하고 있다고 가끔 전해 들었다. 50여년 목회를 뒤돌아보니 두 번째 한 교인 징계는 지금도 그 ‘책장 넘기는 소리’에 씁쓸하다.
설교를 잘라먹은 간증
시간 맞춰 심방을 갔는데 문을 두드렸으나 소리가 없더니 “목사님,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방정리를 잠시 한 후 들어오세요!” 저는 화장실에서 오줌누는척하며 서성거리다가 반갑게 나와 맞이하는 손집사를 만났다. 결혼을 해서 아이가 여섯 살인데 결혼사진이 벽에 없는 것을 보고 늦게나마 결혼식을 올리도록 권면하고 그렇게 진행하여 결혼식을 하게 했다.
한번은 “목사님, 오늘 저녁 예배에 제가 간증을 하고픈데 허락해 주십시요”해서 설교전에 허락했더니 저의 설교시간을 많이 잘라먹는 간증을 해서 설교는 후렴으로 간단히 마쳤다. “목사님이 3년전 저의 결혼식 문제로 심방왔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사실 방안에서 담배를 한참 피우던 참이라 잠깐 기다리라 해놓고 방문과 창문을 열고 웃옷을 흔들어 담배연기를 몰아내고 목사님을 모셨죠..... 명색이 집사가 되어 담배 끊기로 결심했으나 양심의 가책도 받으면서 정말 쉽지 않았지요. 이젠 술담배 완전히 끊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손집사야, 술담배를 하는 줄 이미 알면서 집사로 임명했고, 그날도 담배연기 몰아내는 꼴을 건너편 화장실에서 다 보았고, 집사로 임명해 놓고 기도하면 언젠가는 신앙양심에 부대껴 못견디다 술담배 끊을 날이 올줄을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이야. 내가 충청도에 10년 살면서 목회했다고 멍청인줄 알았냐! 요런건 몰랐지!’ 강단 위에서 속으로 뇌까리며 교인들과 함께 격려의 박수를 쳤다.
한명국 목사
증경총회장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