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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위기

박종화 목사의 가정사역-5

버림받은 아이가 안전하게 생존하려면 자신의 부모를 이상화하고 자신이 나쁘다고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분열시켜야만 한다. 이렇게 분열된 자신의 한 부분은 사실 자신이 받아들기를 거부한 부모의 일부분이다. 아이는 이렇게 분열되고 금지된 자기를 다른 사람들, 즉 자신의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투사한다. 그리고 상처를 주는 부모의 목소리를 자신의 내부로 투사하게 된다. 이 말은 아이가 원래 자신의 부모로부터 들었던(상처가 되는 부정적인 말) 대화를 자동으로 계속 자신의 내부에서 듣게 된다는 것이다. 긍정적 이미지를 받든 부정적 이미지를 받든 아이는 자신이 부모에게서 양육을 받은 대로 자신을 본다.

 

오랫동안 거짓 자기를 자신으로 동일시하다 보면 자신의 진정한 감정, 필요, 욕구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 수치심이 내면화가 된다. 진짜 자기와의 의식적인 접촉은 차단되고 진짜 자기는 존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순종은 사랑을 통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는 실제적인 참 자기로서의 건강한 생명이 자녀나 타인에게 흘러 그 대상들도 역시 참 자기로서 건강하게 소통하게 되는 교류를 말한다. 순종이 강요되는 가운데 그와 같은 규칙에 의해 좋은 아이’(거짓 자기가 기능을 하는)가 됐다면 이는 순종이 아닌 무조건적인 복종이다. 종교적인 신념이 옳아 보여도 그 신념이 개개인의 인격과 자아경계선을 침범하는 강요하는 신념이라면 이 또한 역기능적이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처럼 교회 공동체에서는 목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신의 내적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목사는 역기능적으로 믿음과 신앙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므로 목사는 자신의 상처에 관심을 가지고 치유해야 하며 자신의 치유 경험이 있어야만 또 다른 형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사랑의 연합이라 불러 보고 싶다. 그러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거짓 자기가 기능하는 가운데 강조하는 순종은 자율적인 순종이 아닌 강요된 복종이 되고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닌 율법(律法)이 되기 쉽다.

 

역기능의 가족체계에서 상처 입은 아이로 자라서 목사가 됐다면 자신만의 신념을 가질 수 있다. 여기서 신념은 모든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신성한 명령으로 여기고 목사나 모든 것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신념이다. 이러한 역기능이 강화되면 극단적으로 잘못된 권위에도 복종하게 되기도 하고 자신 또한 자녀나 연약한 누군가를 복종시키기도 한다.

대부분의 가족은 크거나 작거나 역기능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규칙들도 가족과 사회내의 체계와 관계 속에서 각 가족이나 개개인에게 적용됨에 있어서 크거나 작거나 역기능적인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규칙이 있다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보다 공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부모의 사랑보다 상처를 먼저 받게 된 아이는 실제의 자기를 느끼고 인정하기도 전에 상처 입은 거짓 자기가 발달할 것이다. 문제는 그 거짓 자기가 참 자기인 줄 알고 있다가 자신이 부모의 강요에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어 부모의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해나 자살을 할 수도 있다.

 

역기능의 가족체계에서 그 구성원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정상이라 생각했고 겉으로는 정상적인 사랑의 행위인 것 같지만 서로의 관계가 그림자로서의 관계를 갖는 상호의존증(일종의 정체성 상실의 병으로 정의할 수 있다)을 갖게 된다. 상호의존적 관계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 이나 욕구 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체계에서는 가족 구성원들 간에 밀착이나 연합, 그리고 갈등구조 등을 만든다.

 

인생의 발달단계에서 특히 어린 시절에 충분한 사랑과 필요를 공급받고 인생의 발달단계마다 잘 자라는 경우 이 사람은 분화(分化)가 잘 됐다고 한다. 즉 결혼을 해서 부모의 품을 잘 떠날 수 있다. 부모는 자녀가 온전한 한 인격으로 새로운 독립된 가정을 이루는 자녀를 보며 기뻐한다. 부모는 자녀를 이미 기쁘게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부모 자체가 어린 시절 사랑을 많이 받아 분화가 잘 되어 성숙한 인격이 되어 있기 때문이고 부모처럼 자녀도 참 자기로서 기능을 하므로 앞으로의 삶도 부모처럼 자녀를 잘 양육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부모 자체가 원래 분화가 잘 되고 성숙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상처의 치유를 받아 거짓 자기를 버리고 참 자기를 찾아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고 배우자와의 관계를 회복해 자녀를 잘 양육한다면 자녀도 건강하고 성숙한 인격으로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줘도 받을 줄도 모른다. 그러나 먼저 사랑을 받아 사랑할 줄 알게 된 사람은 상대방의 어떠한 이유에도 그가 사랑을 받아들일 때까지 참고 기다리고 사랑하며, 그가 사랑받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끝까지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치유는 사랑받지 못한 자가 사랑을 받는 경험을 하는 것이 다. 사랑의 통로를 막고 있는 상처의 경험이 있는 과거의 현장에 들러 그 당시 부모 로부터 받았어야 할 사랑의 말과 표현을 경험하게 하면서 오염되었던 감정을 씻어 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대신했던 가면을 벗고 실제의 자기를 만나참 자기로서의 삶을 현재에 누리도록 하는 작업이 치유의 과정이 된다.

 

가족의 비밀(秘密)

누구나 비밀이 있다. 그 비밀에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그리움 등의 많은 기억과 감정을 포함하고 있다. 비밀은 보이지 않지만 숨을 쉴 수 있게 만드는 공간이요 그림의 여백과도 같다. 내가 원하는 비밀까지도 폭로되어지고 통제를 받는다면 이처럼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순기능적 비밀과는 반대로 아픔과 고통을 유지시키고 강화시키는 역기능적인 비밀도 있다. 한 예로 역기능적인 가족체계와 자신의 상처에 대하여 말하지 않기 규칙 같은 것이 역기능적인 비밀이라 할 것이다.

 

동일시, 합리화, 투사, 전이 등의 방어기 제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순기능에서는 자신과 가족의 관계를 사랑으로 잘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반면 역기능 체계에서는 이러한 기제들이 억압기제로서 상처를 감추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부정적인 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쓰인다. 자동차는 달리는 기능이 있는데 순기능은 규범대로 정해진 차로에서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에 반하여 역기능은 차가 움직이는 것은 같으나 차로를 역주행하는 것처럼 위험하다.

 

스트레스(stress)가 왔을 때 순기능적인 가족체계 속에서 분화와 성숙이 잘된 사람은 그 스트레스를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 반면 역기능적인 가족체계 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은 작은 스트레스도 크게 받아들이고 이에 자신의 방어기제는 반대로 작동하여 자신의 상처를 키우고 역기능적인 가족체계를 강화시킨다.

 

자신의 상처가 커져 감당할 수 없으면 결국 상처가 원인 된 행동들이 나타나는데 자해나 자살 등 공격을 자신에게 하느냐 아니면 타인에게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하느냐 등의 방법만 있을 뿐이다. 사실 자살이라는 것도 현재의 고통이 너무 크기에 그 고통을 피하는 수단으로 자살을 택하지만 이것이 결국 자신과 가족을 파멸로 이끈다. 그러므로 고통을 피하여 살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자살이라고 보면 결국 살기 위한 선택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 되기에 이것이 곧 역기능이다. 역기능은 삶에 대한 욕구가 죽음과 파멸로 이끌어 가는 힘으로 작용하게 한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이 참 자기를 찾지 못하고 거짓 자기인 그림자로서의 역할로만 살도록 강요한다.

 

대부분의 상처들은 가족체계 내에서 온것인 만큼 유능한 상담자와의 상담을 통해서 자신의 수치심을 직면하고 노출하며, 어린 시절의 상처와 맞물려 있는 감정을 순환시킴으로 치유가 시작된다. 또한 상담자는 과거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역할극이나 빈 의자기법 등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여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왜곡됐던 자신의 생각을 조명해 줄수도 있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듯이 심리적인 고통을 인지하면 자신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상담자를 찾기를 바란다.

비밀에 있어서 프라이버시(privacy)와 관련된 일상의 비밀과 이중성을 초래하는 병적인 비밀은 다르다. 일상의 비밀이란 일반적인 대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아경계선을 침범당하지 않고 대상(부모)과의 교류에서 자기(자녀)가 참 자아로서 반응하며 갖게 된 비밀을 자신의 능력으로 지킬 수 있는 비밀이고 이러한 비밀이 건강한 비밀이다. 반대로 병적인 비밀은 이러한 자유가 개인(자녀)에게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가정 내에 비밀이 있지만 그런 비밀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되는 분위기에 있다. 만일 이 비밀을 자녀가 인지하게 되고 밖으로 폭로한다면 이 아이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결국은 가족으로부터 제외되는 위험스런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기에 아이는 자신이 느낀 것을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아예 인지하지 않거나 생각조차 안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역기능의 가족체계는 자녀가 느껴야 할 것을 느끼지도 못하며 가족의 역기능적 비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금지당한다.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이중성을 띠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훗날 비밀이 밝혀진 뒤에도, 역기능적인 비밀 때문에 이미 분열된 아이의 정신세계는 여전히 분열된 상태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중성이란 어린 시절 상처 입은 아이가 부모가 되어 자신의 자녀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모든 형태로 병적이고 역기능적인 비밀이 이에 속한다. 자녀는 부모가 처한 고통스런 이중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느낀다. 그러면서도 이런 사실을 부모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리고 불완전한 부모가 완벽하다고 부모를 이상화(理想化)한다.

박종화 목사 / 빛과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