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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율법적 안식일과 십일조

하늘붓 가는대로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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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행 길에 가장 심하게 고통을 안겨다 주는 것이 율법적 안식일과 십일조다. 예수 피 공로로 사죄받아 칭의얻고 성화과정을 거치며 재림의 구주님을 기다리는 정상적인 신앙생활의 고속도로에 안식일과 십일조라는 장애물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 장애물은 구원사역의 시초에서 사라진 것이었는데 누가 다시 갖다 놓았던가?

 

단적으로 이단들의 소행이다. 그 이단이란 누구를 가리키냐? 안식일을 고수하고, 또 십일조를 법으로 강요하는 사람들이다. 언필칭 십일 조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실행하라고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한다. 십일조를 지킨다는 것은 어렵다. 나의 불신친구는 끝내 십일조 헌금 문제로 아직까지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죽음을 맞고 있다.

 

고정수입에 십일조가 첨가되어도 빠듯한 살림인데 거기서 1/10을 빼간다는 것은 경제 논리상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긴 그가 경제학 정공학도이지만. 엄격한 안식일만 하더라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24시간을 무위무동(無爲無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안식교 의사는 아예 토요 안식일에 대어 놓고 의료행위를 한다.

 

그리고 마음으로 안식일 준수 못한 죄책감으로 안식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묻노니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율법이 해결되고 말았다고 하면서도 안식일과 십일조는 해결되지 아니한 것이라 하니 예수님은 어떻게 율법을 완전 해결하셨다는 것인가? 율법은 완전해결 인가 부분 해결인가? 필자는 여기서 율법 해결이라고 하는 말의 진의는 율법 폐지를 말하고 있는데, 너무도 이 말에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기에 해결이란 말을 쓰고 있지만 실은 폐기를 말하는 것이다.

 

율법의 완성과 폐기는 다른 두 가지 얼굴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다. 마태 5:17절 말씀을 두고 사람들은 여보세요 예수 율법 완성하러 오셨지 페하러 오신 것은 아니라고 했지 않소하고 이 구절을 코 밑에 갖다 대지만 이 말씀하신 시기는 십자가 달리시기 전이라는 것을 알라고. 십자가 보혈이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감해주는 법이 없이 다 실전을 요구하지만 보혈을 흘리신 뒤에는 율법의 요구즉 죽음을 응해주었으니 율법이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은즉 그땐 율법이 폐기 처분된 것이다.

 

그런데 일부 반복음주의자들과 반율법주의자들은 안식일과 십일조만은 폐기되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 까? 그것은 교회 지도자의 목회사업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야 하겠기에 안식일을 갖다 대고, 돈이 모여져야 하겠기에 십일조법을 갖다 댄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제도는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다. 원래 십일조는 아브람이 승전하고 감사해서 자원하여 멜기세덱에게 바쳤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15:20)

 

또 야곱이 벧엘에서 자원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28:22) 원래 자원했던 십일조가 나중에 법제화됐다. 마침내 말라기에 와서는 십일조가 저주나 축복의 율법이 되어버렸다. 안식일과 십일조의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법이 되기에 문제이다. 안식일과 십일조는 명백한 이런 율법이 폐기되었다니까.

 

그럼 율법 폐기 신앙을 가진 자가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안식일과 십일조를 율법으로는 담을 쌓고 비율법적 항목으로 보고 나를 하나님께 거룩되게 바치고 십일조 이상으로 수입을 넉넉히 바치되 자원감사(自願感謝) 심정으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두 문제가 천국행로에 장애가 아니라 활력소가 되는 것이겠다. 복음주의자들은 그렇게 믿고 살아간다.

 

권혁봉 목사 한우리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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