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와 인도하심을 구합니다…우리는 영적 균형을 잃고, 절대 가치가 흔들리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1996년 1월 23일 미국 캔자스 주 상원 의회 개회식때 기도하신 조 라이트(Joe Wright) 목사의 기도 내용이다.
그는 ‘다원주의’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진리를 타협하는 것과 ‘또 다른 라이프-스타일’이라며 성적 타락을 인정해 주는 것,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착취하는 '로또 당첨', 게으름을 보상하는 ‘복지’, 태아를 죽이며 ‘부모의 선택’이라고 포장하고 합리화하는 것 등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또 권력을 남용하며 ‘정치’라 하고, 공금을 횡령하며 ‘필수경비’라 하는 것, ‘야망’이란 이름으로 이웃의 소유를 탐내고, ‘표현의 자유’라는 그럴듯한 말로 경건치 않은 삶과 포르노로 공기를 더럽히는 것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존중받은 가치들을 농락하는 것에 대해 눈물로 기도했다.
날이 갈수록 혼탁해지고, 사람들은 강퍅해지며 나라가 어지럽다. 이런 때에 우리의 발목을 잡은 코로나19는 진실로 눈물로 매달릴 때가 되었다는 표시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사인이다. 왕으로 등극하는 사울의 모습을 보며 조 라이트 목사처럼 나라를 돌아 보며 회개할 뿐만 아니라 반성할 것은 통렬하게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예언으로 확신하다
사울의 기름 부음 받음은 사무엘과 단둘만의 은밀한 일이었다. 사울은 숙부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울 입장은 자기가 왕으로 출마한 것도 아니고,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나섰다가 얼떨결에 기름 부음을 받았기에 사실 상당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이게 정말 자기 사명(使命)인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을 것이고, 또 그때가 언제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집으로 가는 길에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이라며 세 가지 예언을 한다.
첫 번째는 베냐민 지역의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될텐데 그들이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았고, 아버지가 당신 걱정하신다는 소식을 전할 것이라는 예언이다(2절). 그대로 됐다. 두 번째는 다볼 상수리나무 근처에서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의 순례자를 만날 것이며, 그들이 떡 두 덩이를 줄 것이라는 예언이다(3절). 역시 예언대로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산에서 선지자의 무리를 만날 것인데 너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이다(5~6절). 세 번째 예언도 그대로 성취됐다.
세 가지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사울은 기름 부음 받은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확신했다. 소명은 내 욕심, 내 야망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그래서 소명에 대한 확신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사인이나 주변 환경을 통해 확인시켜 주시고, 내가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신다. 물론 강요보다는 설득이다. 그리고 내가 확신하지 못하면 기다려주신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처럼 기다리신다. 확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새사람이 되다
사무엘의 마지막 예언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다는 것이었다(6절). 실제로 요란스럽게 행진하던 선지자 무리처럼 사울에게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했다. 나중에 라마 나욧에 있는 다윗을 잡으려고 직접 출동했을 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사울이 예언을 하게 된다. 그때는 심지어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종일 벗은 몸으로 드러눕기까지 한다. 그래서 사무엘이 있던 ‘라마 나욧’은 하나님의 영이 강력하게 임하는 곳으로 유명하고, 여기서 나온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라는 말이 속담이 됐다.
그때는 사울이 왕이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일반인이 볼 때 꼭 미친 사람처럼 예언한다는 것이다. 어울리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울 같은 권력자에게 오히려 하나님의 영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새사 람이 되고, 그래야 하나님의 지혜와 통찰력으로 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을 ‘지혜의 영’ 이라 했다(사11:2).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다. 지혜가 있어야 역사의 방향을 알고, 지혜가 있어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그래야 성공한다. 그래서 솔로몬 왕도 일천번제 후에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는 소원을 아뢴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중요하다. 코로나19 까지 겹친 혼란스러운 한반도, 외부적으로는 뭔가 꽉 막히고 내부적으로는 갈기갈기 찢긴 느낌이다. 지혜가 필요 하다. 지금은 성도들마저 교회 지도자보다 정치 지도자 영향을 더 받는 것 같은 시대, 그래서 정치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새사람’이 강조되고 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되리라”(6절),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9절), 하나님의 영이 새사람 되게 한다. 그런데 사울은 왕이 될 때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새사람이 됐지만 왕이 된 다음에는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16:14).
사울이 권력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래서 폭력적이 되고, 의심하고, 주저하고, 불안해한다. 악령이 번뇌케 한다. 권력에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에 취한 사람이 설치는 나라가 아니라 주의 영이 임한 새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제비뽑기로 왕이 되다
때가 되어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았다. 그런데 사무엘은 바로 왕을 선출하지 않고 책망부터 한다.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19절). 백성들과 왕에 대한 경고다. 왕정 제도는 결코 하나님의 계획도 아니고, 하나님이 좋아하신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훗날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왜 하나님이 싫어하셨는지를 알수 있다. 재난이나 우상숭배 대부분이 어리석고 믿음 없는 왕들에 의해 벌어졌다. 다윗(2대 왕), 히스기야(남왕국 13대 왕) 요시야(남왕국 16대 왕) 정도만 칭찬받을 뿐, 남북왕국의 왕들은 주변 강대국의 우상을 성전으로 끌어들였 고, 위기 때는 하나님보다 애굽의 말과 마병을 더 의지한다. 그래서 사무엘이 하나님만 우리의 왕이시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경고 후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다. 방법은 제비뽑기, 제사 장의 판결 흉패인 우림(Urim)과 둠밈 (Thummim)이 이용됐을 것이다. 우림과 둠빔은 ‘빛’, ‘완전함’이란 뜻, 아마 돌이나 보석이었을 것이다. 마치 동전 던지기처럼 ‘예’와 ‘아니오’를 물었다. 그결과 먼저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이어서 베냐민 지파 중 마드리 가족이 뽑혔고, 최종적으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다.
그래서 드디어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게 됐다. 기름 부음이 사울의 사명에 대한 자각이었다면 제비뽑기는 객관적인 확증이었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건 결정적인 순간에 사울이 달아나 짐짝 사이에 숨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순수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물어 사울이 숨은 곳에서 데려와 백성들 가운데 세운다. 키가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 크고 준수하고 건장했다. 백성들 마음에 흡족했다. 백성들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며 “왕께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어떤 불량배들은 그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불량배니까 그러며 무시하면 안된다. 왕은 그들까지 통합시켜야 한다. 그게 실력이다.
다음 장인 11장에 보면 사울의 주도로 암몬과 싸움이 벌어지고 사울이 앞장서서 그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런데 승리 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11:15), 또 왕으로 삼았다고 했다.
암몬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왕다운 능력을 보여서 비로소 왕이 되었다는 뜻이다.
기름 부음 받은 것이 부르심에 대한 자각이었다면 제비뽑기는 백성들의 인정이었고, 이제는 국가적 위기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임으로써 비로소 진짜 왕이 됐다는 것이다. 사울은 드디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등극한다. 이 모습을 보며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희우 목사 신기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