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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의 기능-2

  

만약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실체로 대치됐다면, 떡과 포도주의 실체는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는 부수적인 성질들 안에 존재하게 되는가? 만약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변형되는 실체의 교환이 이뤄진다면, 역으로 그리스도의 본질적 실체는 외부적으로 보이게 하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껍질(accidents)이 떡과 포도주의 껍질로도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가 되고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가 되는 오류를 인정하게 된다. 칼빈은 화체설의 이런 철학의 오류를 명확하게 지적했다. “그들은 떡과 본질이 그리스도로 변한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보는 그 백색을 그 본질과 결부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성찬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여전히 하늘에 계신다고 말한다.”

 

화체설을 주장하는 가톨릭교회 역시 성서적 근거를 제시한다. 그러나 화체설의 성서적 근거는 주의 만찬에 대한 본문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함에 있다. 아퀴나스는 주의 만찬에 대한 상징적 해석을 단죄하고 문자적 해석을 주장하길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일부의 사람들은 이런 점들에 대해 유의하지 않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이 성만찬에서 오직 상징적으로 존재한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주장(상징적 해석)을 이단적인 것으로 거절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 만찬에 대한 예수의 말씀은 떡과 포도주를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임박한 그리스도의 죽음 사건에서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한다.

 

가톨릭의 화체설은 주의 만찬에 대한 성서 본문들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는 오류를 범한다. 오늘날 주의 만찬에서 집례자가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 몸과 피로 문자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떡과 포도주를 통해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비유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분명한 의미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화체설을 주장하는 전통은 이것은 나의 몸이다또는 이것은 나의 피다라는 예수의 선언을 문자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예수는 문자적으로 자신의 몸과 피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자기 죽음을 기념하게 하는 상징적 의미로 사용했다.

 

포도주는 문자적으로 예수의 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예수가 포도주잔을 통해 이것은 나의 피다고 말씀하실 때 그의 피는 여전히 그의 혈관에 흐르고 있었다. 예수가 떡을 통해 이것은 나의 몸이라고 말씀하실 때 역시 예수님의 몸과 떡은 분리되어 존재했다.

 

주의 만찬을 무시간적인 초월적 희생제사로 이해하는 가톨릭의 화체설은 부활 후 승천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을 이 땅의 영역으로 내려오게 하는 오류를 범한다. 신약성서는 분명 하게 지상에서의 역사적 예수는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종결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해 종말론적 마지막 시간에 재림하실 것에 대한 시공간적 분리를 명백하게 표명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화체설은 역시 신약성서에 나타난 그리스 도의 승천에 대한 보도와 재림에 대한 약속을 무시한다. 만약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사라지고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실체가 된다면 승천하신대로 다시 오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루터교 전통의 주의 만찬의 이해

서로 다른 전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는 화체설이나 주의 만찬을 문자적 희생제사로 인정 하는 가톨릭 전통에 강한 반발과 역작용으로 떡과 포도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해를 시도했다. 루터교의 전통 역시 가톨릭교회의 주의 만찬에 대한 강한 거부감에서 발생한 루터의 주의 만찬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

 

루터의 주의 만찬의 기본 개념은 화체설에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지만 쯔빙글리와 논쟁 이후로 주의 만찬에 대한 방향성이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1525년을 분기점으로 이전의 루터는 가톨릭의 희생제사 개념과 화체설에 반대해 실제적 임재를 강조했다면, 후반기에 루터는 쯔빙글리와 칼슈타트 같은 스위스 학자들과의 논쟁에서는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상징적으로 임재한다는 것에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육체적으로 실제로 임재한다는 공재설을 주장했다.

 

루터는 화체설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떡과 포도주에 대한 상징적 해석의 입장을 보이고 싶은 유혹을 느겼다고 술회했고 쯔빙글리와의 논쟁에서는 차라리 화체설을 인정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자신의 심정을 이와같이 토로했다. “그리스도의 피가 현존한다는 그것만으로 나에게 충분하다. 내가 광신들과 함께 단지 포도주만을 마시는 것보다는 거기에 오직 피만 있다고 하는 교황에 동의할 것이다.”

 

루터교 전통은 가톨릭 사제의 축성을 통해 지상에서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가 천상적 실체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것을 반대하지만 주의 만찬에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심을 강조한다.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임재하심으로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임재에 참여하게 된다.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서로 다른 실체로서 공존한다.

 

예수가 주의 만찬을 제정할 때 단순히 포도주라고 하지 않고 포도나무에서 난 것”(22:18)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은 특정한 것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포도주를 뜻한다. 즉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반적인 떡과 포도주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현존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빵만을 먹는 것을 주장했다. 만약 참여자들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 다면 주의 만찬의 성례의식의 의미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루터에 의하면 주의 만찬은 약속의 말씀과 표상(sign)이 결합한 거룩한 의식이다. 루터는 침례와 주의 만찬만이 유일한 기독교 의식임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두성례전 즉 침례와 빵(주의 만찬)이 있다. 그러므로 유일하게 이 두 성례전에서 우리는 신성하게 제정된 가시적인 표상과 죄 용서의 약속을 다 발견한다.”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가 떡과 포도주에 실제로 임재할 수 있는 것은 집례자의 축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제정의 말씀을 신앙으로 받음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떡과 포도주에 현존하는 그리스도는 이것은 나의 몸이다또는 이것은 나의 피다라는 주의 만찬에 대한 제정의 말씀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 용서함을 선언 하는 복음의 말씀이 성취된다는 것이 주의 만찬에 대한 루터의 중심사상이다. 죄 용서함의 복음을 담은 말씀을 주의 만찬의 핵심임은 루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독자들이 우리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나는 그것에 대해 더분명하게 폭넓게 기술할 것이다. 우리는 죄 용서함을 두 방식으로 다룬다. 첫째로 어떻게 그것(죄 용서)이 성취되고 획득되어지는가이다.

 

둘째로 어떻게 그것이 우리에게 분배되고 받게 되는가이다. 그리스도가 그것을 십자가에서 성취하셨다. 이것이 진리이다. 그러나 십자가상에서 그가 그것을 분배하거나 주시지 않았다. 그가 그것을 만찬이나 성례전으로 아직 성취하지 않았다. 그가 말씀을 통해 그것을 분배하고 주셨다.

 

루터는 주의 만찬에서 죄 용서는 말씀을 통해 주어지고 분배되고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의 선물인 죄 용서의 수여는 그리스도의 새 언약 말씀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떡과 포도주는 단순히 물질적 표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이뤄진 죄 용서함을 선포하는 새 언약의 표상이다. 새 언약의 말씀과 연결된 주의 만찬을 통한 죄 용서의 효력을 루터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말씀들과 떡과 잔을 성례로 구성하고, 몸과 피는 새 언약을 포함하며, 새 언약은 죄 용서를 전해주고, 죄 용서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가져온다.” 매튜우 크라포드(Matthew R. Crawford)는 주의 만찬에 대한 루터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루터는 주의 만찬이 그리스도 사역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성서적 교훈을 회복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드리는 희생제사가 아니다. 더욱이 루터는 복음의 중심, 죄 용서함,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인한 칭의가 주의 만찬의 중심이 돼야만 한다는 것을 옳게 파악했다.

죄 용서를 선언하는 주의 만찬의 기능에 대한 강조는 루터의 공재설의 핵심을 이룬다. 참여자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에 연합해 공존하는 실체를 먹고 마심으로 주의 만찬에 참여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하게 된다.

 

1529년에 작성된 루터의 교리문답의 291번 질문의 답은 공존 임재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례전의 떡과 포도주는 성례전적 연합에 의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그의 말씀의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가 신성한 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그리고 밑에 있는 그의 몸과 피를 준다(ST 3a.75.1).

루터교 전통의 떡과 포도주에 대한 개념을 공재설(consubstantiation)이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화체설과 공재설은 기본적으로 헬라철학에 의존해 주의 만찬에서의 떡과 포도주에 어떻게 그리스도가 임재하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의 임재 양식에 대한 설명이다.

 

최선범 교수 / 한국침신대 신학과(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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