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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오징어 됐다

뉴노멀 시대의 교회-9

요즘 전세계가 ‘오징어 게임’이라는 한국 드라마 때문에 난리다. 미국 에서 목회하는 필자에게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놀랍다. 고등학교 다니는 딸에게 미국 친구들이 오징어 게임 봤냐고 묻는다고 한다.

 

정말 한국 게임들 중에 구슬치기, 뽑기 등이 있냐고 묻는다고 한다. 사실은 초등학교 다니는 막내아들에게까지 미국 친구들이 오징어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넷플릭스에서 계속 몇주째 1위다.

 

요즘 한국 사람으로 매우 살만한 세상이다. K-콘텐츠가 세상을 휘어잡고 있다. 쇼핑몰에서도 BTS나 블랙핑크의 노래를 종종 듣기도 한다.

게다가 영화 그러면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에 열광하던 우리에게 기생충, 미나리 같은 영화의 성공과 오징어게임의 흥행은 놀라운 그 자체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IMF를 겪으면서 콘텐츠의 힘을 깨닫게 됐다. 당시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IMF와 금모으기 운동을 따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꼭 독립운동하듯 금을 모았던 기억이 필자에게도 있다.

 

그런 온 국민의 노력이 당시 개봉한 타이타닉이라는 영화 한 편으로 완전히 물거품이 됐다. 외국 영화 한 편이 한국에서 벌어간 돈이 온 국민이 헌신했던 금 모으기 운동의 금액과 비슷했던 것이다.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아끼던 금붙이를 나라에 기부하고 영화 한 편보고 오니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 것이다. 오히려 금을 안내더라도 타이타닉 안 본 사람이 애국자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한국 콘텐츠를 열심히도 개발했다.

 

개그맨이 영화 만든다고 신지식 인이라고 하면서까지 노력했다. 결국 그 열매는 20년도 안되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정말 한국인은 대단하다. 한국인으로서 정말 자부심이 든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독교인으로서는 매우 수치스럽다. 특별히 K-콘텐츠에 등장하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너무나도 수치스럽다. 정말‘ 세상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를 이렇게 보고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지고 던졌다.

 

어쩌면 우리가 마주할 뉴노멀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오염된 세상이 아니라, 기독교를 바이러스쯤으로, 성도를 돈만 아는 겉과 속이 다른 병균쯤으로 여기는 세상일지 모른다.

오징어 게임만 보더라도 기독교와 관련된 인물이 2명 나온다. 툭하면 요술 램프 부르듯이 기도하는 남성과 목사인 아버지의 비뚤어진 성인식으로 인해서 가정이 깨져 버린 여성이다.

 

오징어 게임은 작심하고 기독교를 비판했다. 매우 심각하게 기독교의 이미지를 나쁘게 그려 놓았다. 특히 제일 불편하게 보았던 대목은 유리 징검다리를 건너는 대목이다. 성공하면 일확천금, 실패하면 죽음의 갈림길에서 기도한다. 신앙이 거의 도박 수준이다. 무슨 신이 가야 할 길을 점지해 주는 무당정도로 비춰진다.

 

믿음은 인내다. 기다리고 견디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무슨 점집에 앉아서 ‘이리로 갈까요’ ‘저리로 갈까요’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한탕주의 기독교만 등장한다. 여기서 보여지는 기독교인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남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다.

 

결혼 정보 회사에서 피하고 싶은 시어머니에 대해서 조사했다고 한다. 그 조사에 의하면 교회 권사님이 당당하게 1등을 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믿음으로 다 이루어 내서란다.’ 말씀도 많이 알고, 기도도 많이 하고, 찬양도 뜨겁다.

 

그런데 사랑도 없고, 실천도 없다. 오직 축복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마음에 먹은 것은 챙취하고 이룬다고 한다. 거의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인지, 자기 신념인지 구분이 안간다는 것이다. 자기만, 우리 자녀만, 우리집만 축복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약점이 무엇이냐면, 다른 사람들 구원을 못 시킨다고 한다. 전도도 안되고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한다. 왜? 자기만 아니까?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이런 우리의 모습을 너무도 잘 알아버렸 다. 단지 우리만 모를 뿐이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꾸었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이 바꾼 세상을 뉴노멀로 여기고 글을 써왔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한 드라마의 내용을 보면서 우리가 마주할 뉴노멀은 어쩌면 코로나가 만든 새로운 세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기독교가 마주할 뉴노멀의 세상은 자신들의 경험으로 교회를 판단하고 더 이상 교회가 스스로 갱신할 힘이 없다고 보기 시작한 오징어 게임의 세계관이다.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인 성공은 너무도 기쁘다. 그러나 그 속에 등장한 우리의 모습은 너무도 절망적이다. 비록 다소 과장되어서 억울한 면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우리가 마주할 뉴노멀의 세상은 우리의 억울함과는 상관없이 같은 시각을 계속 가질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초대교회 시대 같이 다시 기독교에 적대적인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어쩌면 이 뉴노멀의 극복은 다시 순교를 각오하는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일 것이다.

이제 축복은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자.

궁인 목사 휴스턴새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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