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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철학의 정점: 신앙과 이성의 조화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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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오창희는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예수는 단순한 마음으로 찾아야 가능하고, 그리스도 이후에는 사변이 필요 없다는 다소 강한 입장을 피력했다.” 이 말은 신앙과 이성, 종교와 철학을 완전히 떼어놓는 것이고, 대립적인 걸로 보는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건 이성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이 고, 불합리하다는 건 이성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불가능하기 때문에 확실하고 종교적으로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의 입장은 신앙과 이성을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신앙의 초월적 측면을 잘 드러내고는 있으나 너무 극단적이어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철학이나 문화 활동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했다는 사실이다.

 

덴마크가 낳은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인 동시에 19세기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로 알려진 키르케고어 역시 신앙적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사유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창세기 22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아케다(Aceda) 사건은 이성으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데 이런 명령을 따르는 것이 과연 옳은가? 아브라함에게 무조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과연 인간 이성의 윤리적 원리에 부합하는 것인가?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을 바치라는 이 명령은 당사자인 이삭에게 잘못도 없는 상황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으로 어떻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인가?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 대가로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하지만, 이삭에게는 그런 잘못이 없고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이 문제에 대해 키르케고어는 인간 이성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의 결단만이 대응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기에 신앙은 이성의 합리적인 차원을 넘어선 비합리적인 모순의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키르케고어는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을 사상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며 이를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 ‘실존’ 개념을 사용했다. 헤겔은 존재라는 말을 사유와 같이 보편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이해했던 반면, 키르케고어는 존재를 이 세계에 실제로 생존하고 있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이해했다. 그에게 있어서 진실한 인간 존재, 즉 실존은 하나님 앞에 서는 단독자(單獨者)였다. 이 단독자는 그의 사상의 중심 개념이었다. 키르케고어는 인간 실존의 단계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째, 심미적 단계-미적 실존이다. 이 단계는 천박한 쾌락주의자의 특징을 드러낸다. 이 단계에 서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전적으로 가시적이고 세속적이며, 일시적인 목표들만을 추구함과 동시에 인생을 미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은 감각적인 직접성의 영역이다. 심미적 인간은 윤리적인 결단, 즉 선택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더욱이 이 단계에 있는 인간은 인생의 외적이고 한정적인 요소들에 제한되어 있으므로, 그에게는 영원한 것을 일시적인 것과 연결시킬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기독교의 특징인 시간과 영원의 종합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수없다. 또한, 객관적 사고에 의하여 자신이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는 사색적인 유형의 사람 역시 심미적 단계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심미적 단계의 생활은 절망, 불안에 대한 승산 없는 싸움이다.

 

둘째, 윤리적 단계-윤리적 실존이다. 인간이 선과 악 사이에서 어느 쪽인가를 선택하라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강요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절대자와의 관계 속에 들어가면서 존재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소중한 아들인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합리적인 것에 반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 요구에 겸손하게 순종했다. 그러나 윤리적 요구는 인간으로 하여금 선택이라는 영원한 중압감에서 비롯된 진지함을 가지고 자기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끔 한다.

 

이것은 이어서 인간의 내부에 후회 혹은 회개의 상태를 유도해 내는바, 이는 그가 윤리의 끝없는 요구들을 완전하게 충족시킬 수 없음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윤리적 결단 아래서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어 종교적 단계로 이어진다.

윤리적 단계는 인간에게 양자택일을 맞게 하는, 양심에 대한 절대적인 요구로 이뤄져 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도 있고 놓쳐버릴 수도 있다.

 

셋째, 종교적 단계-종교적 실존이다. 종교적인 사람은 인간의 착한 마음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결국 인간이 절망에 둘러싸여 있음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새로운 형태로 결단해 비약하는 사람이다. 종교적 실존의 초점은 고난이다. 종교적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절망을 거쳐야 한다. 신앙과 함께 형성되는 종교적인 실존은 절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면서도 또한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신앙이 일어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역설’(paradox)의 개념을 도입했다.

 

미적 실존이나 윤리적 실존의 단계는 인간 스스로 도달할 수 있으나 종교적 실존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키르케고어는 신앙적 단계가 가장 높은 차원의 실존의 경지임을 말하고, 이런 신앙의 차원에서 인간이 가장 실존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봤다.

 

2. 이성주의(rationalism)

이성주의는 신앙과 이성간의 확고하고도 명확한 분리를 주장한다. 합리적인 논변이 이뤄지는 곳에는 신앙이 끼어들 수 없으며, 이성만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 관한 지식에 도달이 가능하다. 즉 이성주의는 신적 계시의 도움 없이도 이성을 통해 모든 종교적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성주의는 신앙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신앙과 이성의 연관성을 주장해 온 교회 안의 사상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이성주의에 대한 교회의 응답은 복잡하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오창희는 이성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신앙을 최소한으로 인정하면서 이성을 극대화하여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즉 이성의 한계 내에서 종교를 인정하는 입장이다. 둘째, 신앙을 완전히 제거하고 이성만으로 대처하여 설명하는 입장이다.”

 

이성의 한계 내에서 종교를 인정하는 입장도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중 대표적인 학자인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는 신앙을 이성에 종속시켜 이성의 틀 안에서만 존재 가능한 것으로 파악했다. 칸트는 인간의 순수이성의 한계라는 점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능한 방법은 도덕적 증명이라고 보았다.

 

물 자체(Ding an sich)와 현상(Phenomenon)이라는 이원론적 관점에서 볼 때, 현상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실천이성비판이다. 신은 결코 증명(prove)될 수는 없지만 신은 우리들의 실천과 삶을 위해서 요청(postulate)된다. 칸트는 종교는 도덕을 위해 필요한 것이며 하나님은 도덕적 근거로서 요청된 존재라고 주장한다.

 

칸트에 의하면 신의 존재는 실천이성의 요청으로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도덕적인 의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도덕성의 완성과 더불어 그에 상응하는 행복을 얻는 것인데 이와 같은 도덕성의 종합을 칸트는 ‘최고선’이라고 칭하고 있다. 실천이성은 최고선을 끊임없이 구하는데 최고는 최상과 완전을 의미한다. 칸트에 따르면 최고선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 성취될 수 없다.

 

그렇다면 최고선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의지가 지향하는 대상인 최고선이 실현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가능 근거로서의 영혼불멸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아울러 최고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신의 존재’를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의지가 지향하는 최고선의 실현가능 조건으로서 두 가지 요청을 제시한다. 하나는 도덕성의 완성을 위한 조건으로써 인간 영혼의 불멸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렇게 완성된 도덕성에 상응하는 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신의 존재이다. 칸트는 이성의 능력을 경험현상계로 한정하고 형이상학과 신앙의 세계를 인간 이성의 영역 밖으로 완전히 추방시켰다.

 

종교는 이론이성의 영역에서 다뤄질 수 없는 도덕적 차원인 실천이성의 영역에서만 다루어 질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1793)라는 저서는 칸트의 이러한 입장을 잘 표현하고 있는 저서이다.

 

신앙을 완전히 제거하고 이성만으로 대처해 설명하는 입장은 자연주의(naturalism)에서 나타난 다. 자연주의는 신앙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시도조차 거부하고 신앙에 대한 논의도 거부하는 극단적인 형태이다. 즉, 신을 떠나 신앙의 영역을 거부하는 입장이 자연주의이다. 자연주의는 자연적 존재의 세계를 넘어서는 어떤 실재도 없다고 보며, 세계의 모든 현상은 초월적 존재 없이도 자연 적인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베일러 대학교의 석좌교수인 스티븐 에반스(Stephen Evans)와 사우스 웨스턴 침례대학교의 철학교수인잭커리 매니스(Zachary Manis)는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자연주의는 초자연적인 실재가 존재하지 않으며 천사나 불멸적 영혼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과학적 방법이고 그러기에 초월적인 방법은 거부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주의는 이성의 자율성과 자기 충족성을 믿는 이성 중심적 사고의 완성된 형태이다.

 

그러므로 자연주의는 도덕적인 삶이나 종교 적인 삶을 포함하는 모든 인간 경험을 물질적인 환경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지성을 가진 동물로서의 인간 생존으로 충분히 설명할수 있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신념이다.

 

김종걸 교수

한국침신대 신학과(종교철학)

Today's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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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째 라이즈업뱁티스트, 논산 한빛교회서 열려 우리 교단 총회(총회장 고명진 목사)는 지난 5월 6일 논산 한빛교회(강신정 목사)에서 6번째 라이즈업뱁티스트 연합기도회를 열었다. 총회 여성부장 양귀님 권사(전국여성선교연합회 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기도회는 충남‧세종침례교연합회장 서성래 목사(새샘)가 대표기도를, 총회장 고명진 목사(수원중앙)가 환영사를 했다. 고명진 총회장은 청개구리 이야기를 예화로 들며 “평생 한 번도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던 청개구리가 마지막 유언 만큼은 들어드렸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인가? 온 땅 열방에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라며 “오늘 저녁에 이 자리에 나온 모든 이들이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가슴깊이 새겨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삶을 누리시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고명진 총회장의 환영사가 끝난 후 다음세대 학생들의 특별찬양이 있었고, 포항중앙침례교회 김중식 목사가 단상에 올라 “빛과 어둠의 소리 없는 전쟁”(요 8:12)이란 주제로 말씀을 선포했다. 김 목사는 빛과 어둠의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빛이 무엇인지, 어둠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며 말씀을 시작했다. 그는 어둠을 악한 영들의 총칭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어둠을 물리치는 것이 바로 빛의 힘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