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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왕이 되다 (삼하 2:1~3:39)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29

이희우 목사

신기중앙교회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3:1) 사울과 다윗의 대칭과 대비의 스토리, 약하여지는 정도가 아니라 사울은 몰락하고, 다윗은 번영한다. 사울이 죽자 드디어 왕이 되는 다윗 (2:4), 그는 이미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었다(삼상 16:13). 하지만 그때는 은밀한 기름부음, 왕으로 기름부었다는 개인적 언약이나 소명 정도였지만 이번 기름부음은 공식적인 기름부음이다.

 

12개 지파중 한 지파, 유다 지파에 의해서 왕으로 추대되면서 받은 기름부음이다. 사무엘 선지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것이 ‘선택, 언약의 기름부음’이라면 이번 기름부음은 ‘성취의 기름부음’, 드디어 왕으로 등극하는 영광의 순간이다. 물론 전 이스라엘의 왕은 아니다. 7년 6개월 후 통일왕국을 이루고 온 이스라엘에 의해서 세 번째 기름부음을 받고, 그때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만(5:3) 10년 이상의 도피생활을 마치고 하나님의 언약적 선택이 성취되어 드디어 왕이 된다.

 

헤브론에서 통치를 시작하다

사울이 죽자 무주공산이 된 이스라엘,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야 할 때 다윗은 결단해야 했다. 블레셋 시글락에서 헤브론으로 간다. 벧엘 남방 예루살렘 남서쪽 약 30km 지점의 헤브론, 본래 명칭은 기럇아르바, 유다의 중심도시다. 아브라함이 구입했던 막벨라 굴이 있는 곳, 지금도 이곳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의 무덤이 있다.

 

다윗이 시글락을 떠날 때의 분위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윗이 헤브론으로 떠난 것은 과감한 결단이었다. 미적거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냥 한 결단이 아니다. 하나님께 물었다(1). ‘어떻게 할까요?’가 아니라 이미 헤브론으로 갈 결심을 하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가라’고 응답하시는데 그 응답은 추인 정도, 때로는 우리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다.

 

그런데 결단하고 올라갔더니 전리품으로 기반을 닦아 놓았던 곳이라 사람들이 다윗을 유다의 왕으로 삼는다. 그래서 ‘연합, 친교’라는 뜻을 지닌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를 기반으로 통치를 시작한다. 나이 28~30세 쯤이었던 것 같다. 5장 4절의 “다윗이 나이가 30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라고 한 것은 전 이스라엘의 왕의 되었을 때였다. 30세로 보더라도 젊은 나이다. 그래서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안 된다. 다만 30세는 정신적으로 판단력이 성숙해지고, 육체적으로는 가장 왕성하게 일할 시기이고, 민수기 4장 3절에 보면 30세는 레위인이 성막에서 공적인 일을 시작하는 나이였다. ‘통치와 다스림의 숫자’, 요셉도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됐고(창41:46), 예수님도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눅3:23).

 

한편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은 다윗이 너무 새파랗게 젊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촌이자 왕이었던 사울에 대한 의리 때문일까?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운다. 그때 이스보셋의 나이는 40세(10), 다윗보다 10살이나 많다. 그렇다면 요나단은 맏아들이었으니까 다윗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았었다.

 

무려 25~30세 정도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친구였을까? 그들은 나이를 떠나 코드가 잘 맞아 최고의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유다 지파는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은 11개 지파와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2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지만 분열왕국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상황이 점점 바뀐다. 다윗은 떠오르는 태양이고 사울의 집안은 기울어져 가는 석양이었다(3:1).

 

왕이 된 다윗은 승승장구, 왕국 통일을 위해 친화 책과 강공책을 병행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길르앗 야베스에 대한 정책이다(4~7). ‘활의 노래’에서 살펴봤듯이 야베스 주민은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을 탈취해서 정중하게 장례를 치러준 사람들, 다윗은 그들의 선행을 기억하고 은혜 베풀 것을 약속한다(6). 길르 앗은 이스보셋 편에 서 있는 곳이지만 개의치 않고 은혜를 베풀겠다는 것이다. ‘사울 끌어안기 정책’이 다. 정통성 확보를 위한 멋진 정책, 이 정책이 결국 온 이스라엘의 마음을 얻게 한다. 좋든 싫든 청산보다 끌어안고 가는 것은 성공하는 지도자들이 가진 덕이고 지혜다.

 

분열, 시작은 비극이었다

왕국이 분열되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다윗이 주도한 내전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장군 아브넬과 그 용사들, 다윗 편에서는 요압과 아사헬과 그 용사들이 충돌한 무력충돌, 고단함과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벌어진다. 동족이자 야훼 하나님을 믿는 믿음공동체의 충돌, 이건 골육상잔, 형제들 간의 전쟁이다. 비극이다.

 

아브넬과 요압의 싸움, 전면전을 벌이기 전에 양측 용사 12명씩 나와서 1:1 싸움을 벌였다(16). 열둘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지파를 상징하는 것, 형제간에 서로 죽고 죽였다. 비극이다. 아브넬과 요압의 동생 이자 다윗의 조카인 아사헬이 싸운 것도 비극이다.

 

다윗의 누이인 스루야의 아들인 아사헬은 ‘들노루 발’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발이 빠른 사람, 그러나 충성심과 열정에 비해 싸움에는 능숙치 못해 무리하게 추격하다 아브넬의 창에 찔려 죽는다.

 

아브넬은 아사헬이 요압의 동생임을 알고도 죽였다. 그래서 요압은 아브넬에게 보복해야 하는 가족 간의 피의 복수가 시작된다. 결국 요압은 나중에 사적인 감정으로 아브넬을 죽인다. 전쟁이 계속되자 아브넬이 ‘형제’라는 표현을 쓰며 휴전을 요구한다(26). 요압도 “그의 형제를 쫓지 아니하였으리라”(27)고 말한다.

 

아무리 대의를 위한 전쟁일지라도 형제간에 이렇게 싸워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형제간의 전쟁은 기뻐하시지 않는다. 빨리 끝내야 한다.

 

정치력을 발휘하다(?)

다윗은 여러 아내를 거느렸다. 여섯 아내가 낳은 여섯 명의 아들이 거론된다(3:2~5). 암논(아히노암의 소생), 길르압(아비가일의 소생), 압살롬(마아가의 아들), 아도니야(학깃의 아들), 스바댜(아비달의 아들), 이드르암(에글라의 소생), 나중에는 솔로몬(밧세바의 아들)까지 얻는다. 정략적인 결혼이었다. 나중에 사울의 딸이었던 첫 부인 미갈까지 돌려받는다.

 

사랑해서가 아니다. 사울 가문과의 결탁으로 이스라엘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다. 사랑도, 일부일처라는 윤리도 없고, 세력 확대와 기반 다지기를 위한 정치가 있을 뿐이다. 한편 북왕국 이스라엘은 리더십이 실종됐다. 왕은 이스보셋인데 실권은 아브넬이 장악하고 있다(3:11).

아브넬이 사울의 첩 리스바를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이 또한 정치적인 행위, 권력이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행위다. 이를 이스보셋이 지적하자 아브넬은 자기가 왕으로 세운 은혜를 생각지 않는다며 심사가 뒤틀려 나라를 다윗에게 넘기려 한다(3:9~10). 상한 감정 때문에 왕권을 다윗에게 넘기려 한 것이지만 다윗을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는 하나님의 뜻이 적의 내분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브넬은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 나라를 다윗에게 넘기겠다고 하고, 다윗을 찾아간다(3:20). 다윗은 약정을 맺은 다음 아브넬을 평안히 보낸다. 그런데 요압이 동생을 죽인 아브넬을 다윗 몰래 칼로 암살하며 피의 복수를 한다. 사실 아브넬은 주변 형세가 불리해지자 사람들을 데리고 거짓으로 다윗에게 나아왔었을 수도 있다(25).

 

그러나 통일 약정이 깨어질 수도 있는, 대사를 그르칠 수도 있는 위험한 사건, 동생 죽인 사람을 선대해줬다는 사사로운 감정과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으로 사고친 것이다. 이때 다윗은 아브넬를 위한 극진한 장례식과 애도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33~34). 종일 금식하며 슬픔을 표현하자(35) 백성들은 다윗이 아브넬을 죽인 것은 아님을 알게 됐다(36).

 

결국 모든 책임은 요압이 지며 결과적으로 이 사건마저 다윗에게 이로운 일이 됐다. 북왕국을 대표하는 장군이자 경쟁자인 아브넬이 제거됐다. 다윗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 물론 요압을 공로자 대우할 수는 없다. 다윗은 요압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악행대로 갚으실 것이(39)라고 했지만 말만 그렇게 했지 다윗은 자신이 통치하는 동안 요압을 처리하지 않는다. 요압은 나중에 솔로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

 

이 부분에서 노회한 정치인 냄새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노련하면서 교활한 여느 정치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물론 다윗이 딱히 잘못한 건 아니다. 잘못이 조금 있더라고 정치인들이 늘 하는 말 있지 않나?

 

‘국민을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적당히 무마하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이런 추한 내러티브 속에서도 하나님의 시계는 움직이고 있다. 다윗을 통일왕국의 왕으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뜻은 더디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진행된다. 인간사에서 모든 것이 100% 깨끗하게 순수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실수가 엮이고, 엉킨 실타래 속에서도 자기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다. 약간 묻은 때로 인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진흙탕 속에서 진주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가운데서 실현되어 가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보는 것, 이게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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