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예배와 설교를 경험하면서 세상이 달라졌음을 발견했다. 메타버스 예배 속에서 느낀 점과 우리의 생활 특히 신앙생활에 미칠 영향을 나누어보겠다.
첫째, 메타버스의 세계는 이미 우리의 옆에 와있다. 따라서 메타버스 예배도 기술적으로 완전히 준비되어 있고 이미 시도되고 있다. 단지 우리가 그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 메타버스 예배가 현실예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유튜브나 줌을 통해서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느새 일반화됐지만 현실의 대면예배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었다. 원래 주님께서 의도하신 예배는 오감(五感)을 총동원한 예배였기 때문에 시각과 청각에 국한된 영상 예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VR기술은 원래 사람의 오감으로 느끼게 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점차 현실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메타버스에 참석하는 것이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물론 메타버스 예배가 현실예배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 할지 모른다. 하지만 교회 예배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부 예배(9:00), 2부 예배(11:00), 3부 메타버스 예배(오후 2:00) 등 이렇게 될 수도 있다.
둘째, 메타버스 예배의 최고 장점은 공간(거리)의 제약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동시에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다. 앞서 소개된 마중물교회 메타버스 예배에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매주 참석하는 성도가 있다. 그들에게 이미 외국이라는 개념은 없어졌다. 미국의 유명 래퍼 트레비스 스콧트(Travis Scott)는 메타버스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그 공연에 무려 1230만이 동시에 접속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1000만명이 동시에 참석하는 메타버스 예배도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1000만명의 성도를 가진 세계 교회가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교회의 예배에서는 세계 최고의 설교자가 말씀을 선포하고, 최고의 수준의 찬양인도자가 찬양을 인도할 것이며, 뉴욕 필하모니를 능가하는 연주단이 반주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예배에는 수십개 언어로 동시통역이 이뤄져 ‘난 곳 방언’으로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정말 만민이 주님께 나와 예배하는 날이 올 것인가? 걱정스러운 것은 세계최고의 설교자와 인도자들이 나오는 예배는 더더욱 퍼포먼스(performance)화 하게 되고 성도들을 구경꾼으로 만드는 것이다.
셋째, 메타버스 예배의 가장 취약한 점은 ‘교제’이다. 물론 VR 기술의 발전으로 옆에서 만나는 것과 같은 친밀감, 함께 춤이라고 출 것 같은 실제감이 점차 구현될 것이다. 서서 인사를 나누는 것은 물론이고, 그룹 모임, 목장 모임도 생생하게 가지게 될 것이다. 심방도 가능하고, 상담에서 감정의 표현까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의 식사를 함께 하면서 웃고 우는 대면교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넷째, 메타버스 예배의 문제 중 하나는 아바타를 사용함으로 인해 생기는 ‘완전한 익명성’이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도 누군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나친 행동이 나올 수 있다. 실제 마중물 메타버스 예배 중에서도 여러 번 예배 방해 행위가 있었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아바타 뒤에 숨어서 하는 말과 행위가 그들의 진정한 속마음의 표현은 아닐까? 또한 핍박이 심한 무슬림의 세계에서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 차라리 메타버스 예배가 더 낫지는 않을까?
다섯째, 메타버스 예배는 차세대 선교의 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로블록스’라는 메타버스 플랫폼이 있다. 이것은 메타버스 공간에서 레고 블록 놀이를 발전시킨 경우인데,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즉 초등학생들은 이미 메타버스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어른이 되는 미래에는 메타버스는 일반화될 것이다. 메타버스의 사용은 걱정거리인 차세대 선교의 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곱째, 이제 교회도 이런 분야의 전문가가 많이 필요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교회 사역자는 설교, 교육, 목양을 잘 하는 일꾼이었는데, 이제 교회도 IT분야의 전문가, 메타버스 분야의 전문가를 많이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는 기술 분야로서 영적인 것과 거리가 있었다. 이제 메타버스에서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는 ‘영성과 기술을 겸비한 전문가’를 필요로 할 것이다. 얼마 전 사랑의교회에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는 직원채용 공고를 본 적이 있다. 여기서 교회가 미래에 어떤 일꾼을 필요로 하게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미래의 교회는 전통적인 말씀 사역자보다 이런 IT분야의 사역자가 가득한 것은 아닐까? 신학교에는 이런 학과가 신학과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정하든 아니든 메타버스 세상은 이미 우리 앞에 와있다. 이제 교회 예배와 다양한 활동을 위해 메타버스를 활용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 됐다. 또한 메타버스 예배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가를 신학적으로 논쟁할 때도 됐다. 메타버스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현실세계를 부정하고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을 현혹하는 사탄의 도구이므로 예배에 활용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주님께서는 단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라고 말씀하셨으므로, 메타버스 예배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수 있다면 문제될 것 없는 것인지? 혹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 7:9~10)의 환상이 메타버스를 통해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진지하게 토론할 때가 됐다.
아, 코페르니쿠스가 살아 돌아왔나 보다. 다시 멀미가 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