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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가정의 비극(1) 비뚤어진 사랑과 권력다툼(삼하 13:1~39)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37
이희우 목사
신기중앙교회

다윗 왕의 가정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부전자전일까? 장남도 비뚤어진 사랑에 빠졌다. 불편한 진실, 다윗이 뿌린 열매다. 마치 곁에 있던 시한폭탄 같은 성적 문제가 또 터졌다. 이제 다윗 가정의 비극이 시작된다. 성폭행과 칼에 의한 피 흘림, 왕자들의 권력 다툼…. 추악한 일들이 이어진다. 다윗 가정의 비극의 첫 부분, 비뚤어진 사랑과 권력 다툼이다.


콩가루 집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던가? 지금도 아랍 지역에서는 코란의 율법에 따라 한 남자가 4명의 아내까지 둘 수 있는데 그 정도가 아니다. 역대상 3장으로 보면 부인은 사울의 둘째 딸 미갈로부터 말년의 봉양을 위해 얻은 수넴여인 아비삭까지 최소한 9명(미갈, 아비가일, 아히노암, 마아가, 학깃, 아비달, 에글라, 밧세바, 아비삭)이고, 그 외의 소실은 몇 명인지 알 수조차 없다. 아들들도 마찬가지, 최소한 19명(암논, 길르압, 압살롬, 아도니아, 그바댜, 이드르암,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 입할, 엘리사마①, 엘리벨렛①, 노가, 네벡, 야비아, 엘리사마②, 엘랴다, 엘레벨렛②), 전체는 몇인지 알 수 없다(대상3:9). 엘리사마와 엘리벨렛은 각각 2명씩, 이름이 같을 정도다. 딸들은 또 얼마나 되었을까? 완전 콩가루 집안이다.


숫자가 많아서였을까? 성적인 문제가 터졌다. 낯 뜨거운 주제, 성경은 덮기는커녕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과하게 다룬다. 성을 둘러싼 권력과 욕망, 사랑과 복수, 가부장제와 성차별 등의 문제가 전면에 부각된 셈이다.


본문은 다윗의 아들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했다는 말로 시작된다. 다말은 이름이 밝혀진 유일한 딸, 그술왕 달매의 딸 마아가 공주가 낳은 딸이고, 암논은 아히노암이 낳은 장남이다. 그렇다면 장남이 이복 여동생을 사랑했다는 말이다.


암논과 압살롬(3남)은 왕위 계승 서열 1, 2위다. 둘째 길르압은 일찍 죽었는지 지혜로운 어머니 아비가일의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권면 때문에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떠났는지 기록이 거의 없다. 다만 본문에 암논과 압살롬의 권력 다툼이 엿보인다. 


암논이 다말을 사랑했다고 했지만(1, 14, 15절) 이게 사랑일까? 욕망 아닐까? 암논도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울화병에 걸렸다(2). 얼굴에 병색이 돌 정도의 상사병, 그 모습을 보고 친구이자 사촌인 요나답이 치유를 위해 나선다(4). 성경은 그를 ‘간교한 자’라 했다(3). 


요나답은 암논에게 다윗을 이용해 다말을 침소로 유인하라고 코치한다. 이 정도면 공범 수준, 작전대로 일이 진행된다. 아들의 부탁을 받은 다윗 왕은 음식을 아들에게 먹이도록 딸을 암논의 침실로 보낸다. 본의 아니게 범죄의 기회를 만들어준 꼴, 현명하던 다윗이 아니다. 아들에게 휘둘리는 무기력한 아버지, 나이 탓도 있지만 범죄에 대한 징계인 것 같다.


다윗이 멍청해졌다. 암논의 죄가 발각된 후 뒷수습도 제대로 하지 않고 화만 낸다(21). 암논의 만행과 딸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황 자체에 대해 화가 난 것, 그런데 그뿐이다. 희대의 개차반인 망나니 암논을 징계하지 않는다. 이 처사가 결국 장남 암논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또 암논을 보복 살인한 압살롬에 대한 징계도 마찬가지다. 징계는커녕 오히려 도망간 압살롬을 그리워한다(39). 결국 압살롬이 반기를 든다, 다윗의 침실을 더럽히고 나라를 두 동강 낸 것, 다윗의 무능이 자식들을 엉망이 되게 한다. 급격한 추락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가내 성폭행
암논은 치밀한 음모 끝에 다말을 침실에서 성폭행한다. 끔찍한 가내 성폭행이다. 성경은 여러 번 암논이 사랑했다고 하지만(1, 14, 15절) 이건 욕정이고 성폭행일 뿐이다. 사랑이 뭔가? 온유하며 친절한 것 아닌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 아닌가? 상대의 감정이 중요한데 암논에게 다말의 감정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계 후에는 다말을 미워하며 가차없이 버린다(15). 정복 후의 허탈감일까? 아니면 다말의 반항이나 무반응이 모욕감을 줬을까? 암논의 이 극단적 심리 반전을 전문용어로 ‘에난티오드로미’(Enantiodromie) 현상이라 한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주로 인생 후반기에 겪게 되는 급격한 성격 변화를 일컫는 것인데 남녀의 애정 관계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말을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말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음식물을 들고 침실까지 들어간 것도 비난받을 행동이 아니다. 오빠니까,아프다니까. 다말의 행동은 아버지의 명령과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인간을 향한 순수한 신뢰였다. 오빠의 강간 시도에도 다말은 “나를 욕되게 하는 짓” “이스라엘에서 유례가 없는 어리석은 일”이라며 미친 요구에 완강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어리석다’는 말을 반복했는데 실제 암논은 이 일로 살해당하니까 어리석은 일을 한 셈이다. 다말은 분명 암논을 설득했다. 이복남매니까 아버지께 말씀드려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하면 가능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암논은 다말을 무시하고 짓밟았다. 마치 욕정을 이기지 못한 짐승 같았다(잠7:22 참조). 그리고 다말에게 “자기 눈앞에서 꺼지라고 윽박지른다. 반면에 다말은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암논과의 결혼을 생각했던 것 같다(16). 실제 율법에는 불륜이나 성폭력을 행한 자는 사형에 해당하지만, 처녀에게 행한 경우에는 배상하고 결혼을 함으로써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폭행이라는 악에 더하여 무정함과 율법을 범하는 더 큰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하지만 암논은 죽음의 길로만 간다.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17), 거리의 여인도 아니고 동생에게, 공주에게 모욕에 패악, 이게 무슨 짓인가? 다말은 질질 끌려나간다. 인간 말종에 의해 그저 ‘손상된 제물’이 되고 만 꼴이다. 그래도 아버지 다윗은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밧세바를 책임졌다. 그런데 암논은 일말의 죄의식도, 책임감도 없다.


끌려나온 다말은 머리에 재를 뿌리고 공주의 채색옷을 찢고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는다. 여동생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자 친오빠 압살롬은 속된 말로 빡친다. 일단 소문을 의식해 자기 집으로 동생을 데리고 가서 철저하게 보호한다. 다말은 친오빠의 집에서 극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괴로운 나날을 보냈고 이를 지켜보던 압살롬의 마음은 착잡함과 불쌍한 여동생에 대한 안타까움, 이를 막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 암논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찼을 것이다.


처량한 다말(20), 당시 사회 통념상 더 이상 결혼할 수도 없다. 자녀를 낳을 수도 없다. 한순간에 공주라는 사랑스런 자리에서 생과부로 전락한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다.


그런데 끝이 아닌 것 같다. 일말의 희망이 보인다.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14:27). 압살롬의 자녀 소개에 아들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딸의 이름만 밝혀지는데 이름이 다말이다. 얼굴도 아름다웠다고 했다. 본문 1절의 “아름다운 누이”로 소개됐던 다말과 연결하면 억측일까? 누이를 위해 동명의 이름을 지은 것일까? 그보다 다말의 부활처럼 보인다. 마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 같다. 악을 선으로 바꾸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보인다.


복수일까? 정적 제거일까? 
압살롬은 동생 다말이 당한 일을 눈치채고 복수의 때를 기다린다. 무려 2년, 아마 아버지 다윗 왕의 특단의 조치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 조치도 없자 복수를 결행한다. 2년 후 목축업자들에게는 추수감사절 같은 양떨 깎는 날, 왕에게 청하여 암논을 포함하여 왕자들이 다 참석하게 한다(24~27). 그리고 암논을 술 취하게 한 후 죽인다. 복수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14장부터 19장까지의 중심인물인 압살롬에 대한 이야기의 일부, 복수이기도 했지만 압살롬의 왕세자 암논 제거 사건이기도 하다. 왜 압살롬은 다말의 불행을 알고도 그 자리에서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2년간이나 철저히 침묵했을까?(22) 복수의 칼날을 간 것도 맞지만 압살롬은 권력 승계의 라이벌을 제거할 기회로 삼은 것 같다.


그렇다면 압살롬은 동생의 아픔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한 사람, 동생의 비극을 권력 쟁취의 발판으로 이용한 사람이다. 암논이 죄인인 것은 맞지만 죽음에 이를 정도였을까? 그런데도 2년간 복수의 칼을 품고 살았다면 압살롬도 끔찍한 사람, 그는 살인자다. 


장남이 죽고, 차남이나 다를 바 없는 3남, 그것도 다윗이 좋아하는 압살롬마저 망명을 간다. 다윗 가정의 비극이다. 이 정도면 가정이 지옥이지 않나?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나? 가슴 아픈 것은 이 모든 것이 다윗의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이고, 무능한 왕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며, 은혜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가정의 행복이 다 깨졌다. 무엇보다 생명의 존엄성이 사라진 것, 다윗은 자신이 행했던 죄가 철저히 심판받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기억하자. 은혜를 상실하면 가정이 지옥 된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려면 가족 모두가 함께 은혜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을 회복하고, 사랑을 회복하고, 관계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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