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개척해 작은 공간에서 적은 인원수와 함께 예배를 하려고 하니 어설픈 것들이 참 많았다. 반주자도 없어서 내가 직접 기타를 치며 찬양을 했는데, 매주 주일마다 예배 때 부를 찬양을 선곡하는 것도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어떤 찬양곡을 불러야 할지 참 고민이 많았다. 더구나 요즘 새롭게 나온 찬양곡들은 기타 하나로 반주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피아노와 베이스 기타, 드럼 등이 함께해야 그 곡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데, 인도자 한 명이 기타 하나 달랑 들고서 반주하면 그 찬양곡의 분위기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데다가, 성도들은 요즘 새로운 찬양곡들이 익숙하지 않아 함께 찬양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면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까 더 고민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에 맞는 예배로 디자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작지 않은 규모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다. 내가 전도사와 목사로 사역하면서 대부분의 경우 어느 정도의 시스템이 갖춰진 교회에서 사역을 했다. 늘 적지 않은 인원이 예배에 참석했기에 예배 분위기는 쉽게 고조될 수 있었다. 울릉도에서 목회할 때도 성도의 숫자가 적지 않았고, 성가대도 갖췄으니 교회에서 늘 해오던 형식의 예배를 드리기에 문제가 없었다. 대전에서 교회를 개척해 사역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피아노 반주자가 있어서 어려움 없이 예배를 디자인하고 예배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 사역할 땐 피아노를 비롯해 각종 악기를 전공하는 성도들이 매우 많았고, 성악 전공자도 넘쳐났기에 매우 다양하고 풍성한 예배의 모습으로 예배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다시 교회를 개척해 예배를 드리는데, 반주자 한 명도 구하기 어려웠고, 신앙의 연륜이 그리 많지 않은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자니 도대체 분위기가 살아나질 않아 예배 때마다 늘 아쉬움이 생기곤 했다.
보통 예배할 때 우리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교회의 예배를 연상하며 예배를 디자인하고, 그렇게 예배를 인도한다. 대여섯 명이나 열댓 명이 앉아서 예배하는데, 수십 명 앉아서 예배하는 것처럼 멘트를 하면서 인도한다. 성도도 몇 명 되지 않는데, 예배 때마다 대표기도를 시키려니 했던 사람이 또 하면서 매번 몇 명의 대표기도자가 돌아가면서 대표기도를 해야 할 때가 많다. 앉아있는 성도의 숫자를 보면 구역예배나 셀(Cell)모임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예배는 매우 거창한 모습을 갖춰 진행하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공예배(公禮拜)이기에 나름의 형식을 갖춰 예배해야 한다는 것에 백번 동의한다. 주일에 드리는 공동체예배는 가정예배나 개인예배와는 사뭇 다른 부분이 있다. 예배 의식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들이 있기에 나름의 형식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대여섯 명, 혹은 열댓 명이 드리는 예배가 100여 명 이상의 성도가 모여 예배드리는 모습을 흉내 내어 그대로 예배하려고 하면, 예배가 공허해지기 쉽다.
공예배는 한 교회공동체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향해 성도가 마음을 향하여 나아가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다. 공동체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배에 참여한 예배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주시고, 어루만지신다. 그런데 아주 적은 숫자의 성도들이 모인 예배에서 백여 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인 예배처럼 인도한다면, 성도들 각자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추상화시킬 위험이 있다. 예배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기보다는 매우 피상적으로 끝날 위험이 있다. 그럴듯한 형식만 남아 예배 의식은 진행했지만, 예배하지는 못할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에 맞는 예배를 디자인해 예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적은 숫자라고 해서 예배 의식의 요소가 무너져서도 안 된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지만, 주일에 드리는 공동체예배는 이러한 삶의 예배가 농축되어 성도들이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儀式)이다. 그렇기에 주일 공동체예배는 예전적(禮典的) 요소가 배제돼서는 안 된다. 격식(格式, formal)이 갖춰야 한다. 그런데 예배자의 숫자가 적다면 조금은 격의 없는(Casual) 분위기를 가미해 성도들이 경직되지 않고 예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주일 공동체예배 때마다 첫 찬송과 축도 전의 마지막 파송 찬양을 1년 동안 1곡을 선정해 매주일 함께 부른다.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와 같다. 이 곡들은 1년에 한 번씩 바꿔 한 해 동안은 늘 같은 찬송으로 예배를 시작하고, 예배를 끝내어 예배 의식임을 인지하게 한다. 우리 교회는 성도의 숫자가 적기도 하지만, 신앙의 연륜이 초보인 성도들이 많기에 예배 때 대표기도도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엔 회중 기도라고 바꾸어 몇 가지 기도제목을 제시하고 예배를 위해, 주어진 기도제목을 위해 합심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굳이 한두 사람이 매번 돌아가면서 대표기도하게 함으로 몇 사람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거나, 늘 비슷한 느낌의 대표기도로 신선함을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가끔은 담임목사가 대표기도를 해 변화를 주기도 한다.
적은 숫자의 성도가 예배할 때엔 예배실의 좌석도 일률적으로 전면을 향하게 하기보다는 반원형으로 배치하는 등으로 함께 예배하는 자들이 얼굴을 서로 살짝 엿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좋다. 적은 인원이라면 예배 중에 개인의 신앙고백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면 어느 정도의 규모의 교회는 느낄 수 없는 친밀함 속에서 따뜻한 분위기와 더불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자칫 큰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교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함을 상실하여 오히려 작은 교회가 가질 수 있는 매력을 잃어버리기 쉽다. 작은 교회라면, 작은 교회에 맞는 예배를 구상하여 예배하고, 규모가 점차 커지게 되면, 그에 걸맞게 예배를 재구성해가는 것이 성도들이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