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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교정선교 이야기-1
최만준 목사
천안서머나교회

교회 개척을 시작하기 전, 나는 교정공무원으로 10여 년 넘는 시간을 담안에 있는 수용자들과 함께했다. 첫 임용지인 천안에서 1년 만에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광주교도소로 전출을 가게 됐다. 그곳에 가보니 살벌했다. 무기수뿐만 아니라 장기수가 너무 많았다. 살인, 강도 등 눈빛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들과 어떻게 씨름하며 지낼까?’ 걱정이 앞섰다.


마침내 담당업무가 주어졌다.
“사형수 담당!” 순간 머릿속에서 전쟁이 시작된다.
‘큰일이다. 사형수 담당이라니….’ 
두렵고 떨렸다.

 

돌아보면 그곳에서 7년 2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사형수들과 함께 지내며 보냈던 시간들이 나에게 큰 유익이 되었던 기간이었다. 그중에서 1993년 12월과 1997년 12월은 필자의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날이다. 교도관 생활 평생을 해도 한 번을 사형장에 들어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2번이나 들어갔다. 운명의 장단과 같았다. 사실 사형집행이 있는 날이면 분위기가 완전히 저기압 수준이다.


전날, 늦게 그 소식을 알고 몇몇 종교위원 목사님들께 전화했다.

 

“OOO 목사님, 내일 교도소에 조금 일찍 들어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집행이 있음을 알렸다. 한결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좀 전 이야기와는 달리 오지 못하신다고 한다. 물론 이해는 간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서운한 감이 물밀듯 몰려왔다. 나는 사형수 담당이지만, 이미 목사 안수를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서도 ‘최 목사’로 불렸다.


보안과장님으로부터 호출이다. “내일 사형장에 최 목사님께서 들어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상하관계가 그 어느 직장보다도 뚜렷한 이 곳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은 뜬 눈으로 하얗게 밤을 새웠다. 갑자기 몸이 무거워진다. 가슴이 아프다. 머리는 멍하다. 어제부터 밥을 먹지 못했다. 어쨌거나 살인이라는 엄청난 죄를 짓고 이곳에 와 있지만, 이제는 사형수라는 말보다 한가족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情)도 들었고, 인간적인 냄새가 풍기는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생각은 갈기갈기 찢길 정도로 혼란은 가중되고 있었다. 그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서글퍼졌다.

 

죄는 미워할지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하지 않았던가? 사형 집행받을 아이는 내가 전도한 아이였다. 오랜 시간 사랑을 쏟았던 친구다. 초기 모습은 조폭에 얼굴 표정이 장난이 아니었다. 체중은 100kg 넘는 그야말로 조폭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천사로 변해있었다. 사형 집행을 위해 이 아이를 상담이 있다고 나더러 불러오라고 한다. 그것만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죽으러 가는 아이에게 마지막만큼은 거짓말로 데려오고 싶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 자신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의 의중을 이야기했더니 결국 보안과 직원의 대동하에 그가 상담실로 오게 됐다. 순간 얼굴을 보니 얼굴빛이 제 빛이 아니다. 누렇게 떠 있다. 손에는 수갑이 차 있었다. 집행 후 알게 됐지만, 이 아이는 자기가 집행당할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자신의 의류를 잘 세탁해 그 전날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고, 이미 자신이 읽었던 책과 소지품을 정갈하게 포장해 놓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사형장, 스산하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이 칙칙하고 기분이 영 아니었다. 온몸이 쭈뼛쭈뼛 닭살이 돋았다. 사실 사형집행은 인정 심문에서 유언을 말하기까지 15분에서 20분이면 끝이 난다. 
사형집행을 위한 짧은 질문들이 시작된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수번을 말해보세요?”

 

듣기도 싫은 범죄의 개요를 다시 묻는다.


“이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순간 침묵이 흐른다. 이 아이가 입을 연다.


“저 같은 건 이미 죽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산 것만 해도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덤으로 살아온 인생입니다. 다시는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열심히 예수님 사랑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치도 떨림 없는 목소리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조금만 있으면 죽게 되는 아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순간 오히려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부족한 저를 예수 믿게 해주신 최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갑자기 내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번에 흘리는 눈물은 그냥 눈물이 아니었다. 어디서 쏟아지는지 후두둑 소낙비처럼 흘러내렸다. 이 아이의 파란색 바지는 금방 눈물 자국으로 번졌다. 쓰고 있던 검정뿔테안경과 자신의 성경책을 나에게 건네줬다.


“울 엄마 만나면 꼭 전해주세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까?”


“네! 소장님. 저의 장기를 기증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죄과를 용서받을 수 있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내 찬송가 한 장을 불러도 되느냐고 물었다. 침묵이 흐른다. 부르라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 준비라도 한 듯 찬송을 불렀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나는 마지막 가는 길 앞에 이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줬다. 지금은 ‘사형수 담당’이 아닌 ‘목사’로서 이 아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기도했다. 손이 떨려 왔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도 울고, 이 아이도 울고, 순간 사형장 분위기는 더욱 엄숙해졌다. 


순간 무릎을 꿇고 있었던 이 아이의 머리 위에 하얀 두건이 씌워졌고, ‘덜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이 아이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 짧은 시간이 내 인생에 가장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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