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오늘도 운동복 차림에 칫솔 들고 동생과 목욕을 다녀왔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어오던 패턴이다. 늘 가벼운 걸음이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못하다. 고등학교 첫 수능 모의고사 결과를 받았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까지 버티던 성적이 기어이 무너지고 말았다. 중학교 때는 전교 10등에서 20등을 오갔는데, 고등학생이 되어 받아 든 첫 성적표는 반에서 10등이라는 숫자가 박혀 있었다. 늘 벼락치기로 성적을 유지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 큰 폭으로 떨어져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내 인생이 끝나는 기분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며 큰 꿈을 품고 부모님을 떠나 대전으로 왔다. 부모님은 내가 학교 선생님이 되거나, 경찰대학을 나와 간부가 되기를 원하셨다. 나도 부모님의 바람대로 화이트칼라로 양복 입고 출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노동자이신 아버지의 삶, 그래서 부모님도 나도 더 간절했는지 모르겠다.
내게는 두 날개 인생 성공 전략이 있었다. 첫째는 공부 잘해서 꼭 성공하겠다는 것. 둘째는 도덕성을 지키며 성공하겠다는 것. 착실하게 공부해서 내 삶을 멋지게 만들어내고 싶었다. 양복 입고 출근하며 예쁜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의 배웅을 받는 것? 아, 집은 밝은 톤의 아파트이면 좋겠다. 하지만 내 나이 열일곱에 벌써 한쪽 날개가 꺾여버렸다. 추락하는 것 같다.
‘다 끝났어.’
시험 한 번에 이런 바닥을 경험할 수 있구나. 고1, 4월의 어느 일요일은 그렇게 우울한 하루였다. 하지만 그날이 내 인생을 뒤집는 또 다른 하루가 될 것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보다 말없이 목욕탕에서 돌아오던 길, 동생은 이유도 모른 채 형의 눈치를 보는 듯하다. 거의 도착할 즈음 집 앞의 작은 교회에 눈이 머문다. 늘 걷던 길인데.
‘여기에 교회가 있었나?’
갑자기 어린 시절 잠시 다녔던 교회가 떠올랐다. 교회 가자며 빵으로 나를 유혹했던 농협 아저씨. 종이 괘도에 그려진 악보를 따라 즐겁게 부르던 노래. 늘 좋은 향기를 내셨던 선생님. 내게 교회는 좋은 곳이었다. 성탄 연극 연습하며 마구간 동물 역할이 주어져 섭섭함에 교회를 끊어버리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교회를 다니고 있었을까? 갑자기 눈에 들어온 교회에 생각이 많아졌다.
‘교회 다녀볼까?’
확정은 아니지만 강한 끌림. 동생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무 냄새 짙은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왜 동생을 먼저 돌려보냈을까. 여하튼 나는 강한 끌림에 예배당 안까지 들어와 버렸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30여 명 모여 예배하는 중이다. 가장 뒷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본다. 마치 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즐거움으로 관객이 되었다. 그리고 헌금시간, 봉사를 맡은 아이가 바구니를 들고 이리저리 친구 사이를 오가며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녀석이 가장 뒤에 있던 까까머리 고등학생인 나에게까지 왔다. 바구니를 내 앞에 들이민다. 그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 예배 동참했으니 헌금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전해온다. 나는 초콜릿을 많이 좋아했다. 큰 사각형 초콜릿이 당시 500원이어서 늘 주머니에 500원짜리 동전 하나 정도는 넣고 다녔다. 어김없이 내 운동복 주머니에 있던 500원. 고민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리고 당황하는 아이의 착한 눈을 피하지 못하고 500원을 헌금 바구니에 넣고야 만다. 그제야 평안한 얼굴로 아이는 강단으로 돌아갔다.
‘그래, 교회 다녀보자!’
그렇게 신앙을 가슴 한 귀퉁이에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앙은 내 삶에 꺾이지 않는 날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