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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승전가 (삼하22:1~51)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44

성경에는 수많은 노래가 나온다. 시편의 수두룩한 찬양을 비롯해 예수님이 나시던 날 밤 천군 천사들이 불렀던 찬양(눅2:14)과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를 축복했을 때 화답했던 마리아의 찬가(눅1:46~55), 그리고 투옥됐던 바울과 실라의 한밤중의 찬양(행16장),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외친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찬양(계7:10), 모든 천사가 하나님을 경배하며 외친 찬양(계7:12) 등 찬양이 넘친다.


본문은 다윗이 여호와께서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부른 노래다(1). 파란만장한 삶에서 하나님을 드라마틱하게 체험했던 다윗, 일명 ‘다윗의 승전가’로 불리는 이 노래는 수많은 역경 속에서 체험했던 하나님을 생동감 있게 드러낸 다윗의 신앙 간증이었다.


성경은 구원 이야기인 동시에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의 간증 스토리다. 창세기에 보면 노아가 홍수 속에서 구원받은 간증, 아브라함이 100세의 노령에 아들 낳고 축복받은 간증, 그리고 야곱이 그 험난한 풍파를 다 이기고 금의환향한 간증과 요셉이 우여곡절 속에서도 입신양명한 간증 스토리로 이어진다. 


출애굽기도 마찬가지, 드라마틱한 모세의 개인적 간증과 이스라엘 민족의 간증 스토리다. 또 신약의 4복음서도 예수님과 제자들의 간증 스토리이고, 사도행전부터는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 성도들의 성령 충만한 간증 스토리다.


그런데 구약 인물 중에서 생동감이 넘치는 간증을 들려준 독보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이다. 본문은 다윗의 간증이 담긴 노래, 이 노래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하나님, 그분, 주’라는 표현이 73회 정도 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꽉 찬 노래다. 그리고 ‘나의, 나’라는 표현도 85회 정도 나온다. 이건 다윗이 내가 생생하게 체험한 하나님,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내가 만난 하나님, 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나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 나를 축복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높여주시는 하나님을 간증하는 노래라는 뜻이다. 다윗은 지금 ‘나의 하나님’을 연발하고 있다.


피난처가 되셨다는 노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라”(2~3)고 노래한다. ‘피난처는 도망해 보호받은 장소’라는 뜻, 대부분의 삶을 전쟁터에서 지낸 다윗에게는 실감나는 고백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반석’이라 했다. 암벽으로 둘러싼 든든한 바위산 같은 분이라는 말이다. ‘나의 요새’라고 한 것은 높은 언덕이나 산꼭대기, 어떤 적의 침입도 막을 수 있다는 표현이다. 또 ‘나의 방패와 나의 망대’라 했다. 하나님이 방패와 망대가 되어서 화살과 칼을 막고 적들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제압한다는 고백이다. ‘나의 구원의 뿔’이라고도 했다. 뿔은 승리와 권능의 상징, 하나님이 싸움에서 승리케 하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다윗은 ‘주는 나의 피난처’라고 노래한 것, 폭풍우와 불화살이 쏟아져도 주님은 품 안과 같이 안전하다는 말이다. 다윗이 가는 곳곳에 이런 쉘터(Shelter, 피난처, 대피소)가 있었다. 위험과 불안에서 잠깐 쉬게 하는 쉘터가 다윗에게 힘이 된 것이다.


다윗은 시편에서 여러 번 이런 고백을 한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61:3),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62:8),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46:1)… 마르틴 루터는 시 46편을 근거로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시를 쓰기도 했다.


다윗이 왜 이렇게 고백하나? 요나단을 통해 사울의 음모로부터 보호해주시고, 압둘람 굴에 모였던 용병들을 다윗의 방패로 삼으신 하나님, 블레셋 진영의 시글락에 있던 성을 요새 삼아 다윗을 지켜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력한 지지를 그의 든든한 반석으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많은 부분 자연법칙과 사회적 요소를 사용해 도우신다. 사람과 환경이 나를 도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련하신 피난처였다. 본회퍼가 성숙한 사회, 성숙한 인간에 대해서 말했는데 우리의 신앙이 신화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실제적이었으면 좋겠다. 다윗처럼 누가 뭐래도 “주는 나의 피난처”라고 분명하게 노래해야 한다.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노래
다윗은 환난 중에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하나님이 자신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한다(7). 평생을 시달린 다윗이지만 그들을 “사울, 블레셋”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망의 물결” “불의의 창수”(5) “스올의 줄”(6)…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17) 시인답게 표현했는데 이 물은 혼돈이고 죽음이다. 둑이 터져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홍수이고, 지진 이후 느닷없이 덮치는 쓰나미, 깜깜한 밤중에 물에 빠진 것 같은 공포와 무기력이다. 이 위기 상황에서 다윗은 극적으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수없이 체험했다.


어느 날 다윗은 사울 왕의 추적을 피하여 마온 사막 아라바 계곡에 숨어 있었는데, 현상금을 노린 마을 주민들이 신고하는 바람에 사울의 군대에 완전히 포위됐다. 사울의 군대는 포위망을 점점 좁혀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사울 왕이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으니 살아남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진퇴유곡(進退維谷), 누구의 도움이나 지지를 받을 수도 없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 독 안에 든 쥐 꼴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루살렘 왕궁으로부터 한 전령이 달려와 큰소리로 블레셋 오랑캐들이 쳐들어오고 있다고 외친다. 또 한 번의 위기를 모면한(삼상 23:24~29)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건져내셨다고 묘사한다(17~18).


건져주시는 하나님, 다윗은 그 하나님을 믿었기에 기도의 사람이 됐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셨다(10~11). 다윗이 수없이 체험했던 일, 그 모든 간증이 곧 시편의 줄거리다. 들판에 있을 때에 찾아오시고, 목장에 찾아오시고, 산악에 찾아오시고, 토굴 속에 숨어도 찾아오시고, 적진에 포위되어도 찾아오시고, 그 어떤 위기 상황 중에도 찾아와 위로하고 함께 해주셨다.


그래서 다윗은 노래한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시 65:2). 이게 바로 다윗이 기도를 즐긴 이유다. 하나님은 애절한 기도는 물론 어설픈 기도도 들으시고, 투박한 기도도 다 들어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어떤 상황보다도 더 압도적인 분이시다. 다윗은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린다”(8)고 했고,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른다”(9)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꾸짖고 콧김을 불자 혼돈의 물이 흩어지고 그 물 밑에 있는 세상의 기초가 드러난다고 했다(15). 상상할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하나님, 다윗은 그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라고 노래한다. 그분이 콧바람 한 번 불면 바이러스는 산산이 흩어져 태평양 바다로 내동댕이쳐질 것이고, 뜨거운 태양 빛을 비추시면 어떤 세균이나 질병도 다 불살라질 것이다. 죽음의 물결이 더 거세져도 어둠보다는 빛이 강하며 생명이 죽음을 삼킬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희망이시기 때문이다. 


더 크게 만들어주셨다는 노래
시 18편에도 나오는 본문의 시는 다윗이 인생 말년에 쓴 승전가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노래한다(30절). 다윗은 전투 기술을 가르쳐주신 분도 하나님이라 한다(35). 탁월하게 만드셨다는 말이다.


그리고 다윗은 초라한 자신을 하나님이 크게 만들어주셨다고 찬양한다(36). 20절의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고백도 ‘크게 하셨다’는 말이다. 다윗은 정적들을 물리치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이방 제 민족들이 복종하는 다윗제국을 이뤘다(45).


생각할수록 너무 커졌다. 역대상 29장 12절의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는 고백대로 하나님은 베들레헴 시골에서 양떼나 돌보던 한 천덕꾸러기 소년을 블레셋의 거장 골리앗보다 더 크게 만들어주셨고, 기골이 장대한 사울 왕보다 더 큰 군왕으로 만들어주셨다. 이제는 위대한 정치가이자 유능한 지도자, 비범한 장군이자 빼어난 영웅, 탁월한 시인이자 훌륭한 예술가가 됐다. 완전 팔방미인 되게 해주셨다. 다윗의 승전가가 우리 인생의 정점에서 부르는 우리의 노래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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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2024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3500침례교회와 목회 동역자. 성도들 위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기쁨과 회복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죄인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이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직접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며 이제는 구원의 완성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몸소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주신 사실을 믿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가르치셨으며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고난 받는 자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 회복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 믿음의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 공동체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 소식이 복음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