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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의 침례식

복음의 뿌리를 찾아-3
이진아 전도사
뿌리교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셨음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일생 중에 그분을 떠나지 않을 것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맹세합니까?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저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삶 속에서 전하는 자로 살겠습니까?”


호수의 풍광이 간신히 짐작될 만큼 이른 새벽이었다. 우리의 죄된 심령처럼 어둠이 깔린 그 시간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영혼과 온 생애 위에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이기를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순례 여정 셋째날의 첫 행보인 침례식을 행했다. 아멘! 아멘! 우리 모두의 심령 안팎에 마침 태양이 떠올라 서로가 은혜로 상기된 얼굴을 뚜렷이 볼 수 있을 즈음 아마도 전무후무할 갈릴리 호숫가에서의 침례식이 마무리됐다. 이곳보다 그리스도를 풍기는 곳이 또 있을까. 순례 중의 침례의식은 의례히 예수님께서 몸을 담그셨던 요단강에서 행해지나 우리는 변화를 주고 싶었다.


1차 순례 중 요단강에서 한 성도님이 침례를 받으셨는데 장소가 품은 의미는 충분했으나 지극히 현실적으로, 무엇보다 생각 이상으로 탁했던 강물과 전 세계의 순례객들이 몸을 담그고 드나들어 매우 혼잡스러울 뿐더러 코로나가 잠잠해졌다고는 하나 혹시 모를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작동되기에 충분한 환경 앞에서 이번 침례 대상자인 요즘 아이들이 과연 이곳에 흔쾌히 들어갈 것인지 염려됐다. 


게다가 요단강 침례터에 별도의 샤워, 탈의 시설이 마련되어있기는 하나 시간과 여건상 말끔한 상태로의 복귀는 불가능한데 빼곡한 다음 일정을 이어가며 감내해야 할 불편들을 고려할 때, 숙소 문 앞에서 찰랑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생애의 물결 속에 몸을 담그는 것만큼 의미와 효율을 챙길 수 있는 선택은 없었다. 여담이지만 이후 일정 중 요단강물을 마주한 아이들은 갈릴리 호수에서의 침례를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유연한 사고의 유익이 또다시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세겜 지역으로의 다음 여정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긴장 고조로 인해 갑작스럽게 취소되면서 다소 낯선 이름의 아르벨 산에 오르게 됐는데 가벼운 산책 코스 정도의 오르막 산길을 지나자 갈릴리의 전경이 감탄을 일으키는 자태로 펼쳐져 있었다. 수세기 전의 지진으로 생겨난 절벽과 어우러진 드넓은 호수의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던 아르벨 산은 이스라엘을 패키지로 방문하는 경우 일정상 곧잘 생략되는 장소인데 크게 무리를 불러오지 않는다면 여정에 꼭 포함시켜 올라보기를 권한다. 그만큼 아름다웠으며 로마에 맞서 절벽 동굴에 숨어 살면서 장렬히 최후를 맞았던 유대인들의 혼을 마주할 수 있는 의미 깊은 곳이기도 하였다. 


‘종교’로 해석되는 ‘religion’이라는 단어는 ‘다시 연결하다, 묶다’라는 의미의 어원을 가졌다. 통곡의 벽을 두 번째로 마주하면서 신과의 연결을 꿈꾸는 인간의 열망이 인간 사이의 고통을 가중시켜 버리는 아이러니를 생각했다. 앞서 방문했던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의 거주인 중 다수가 아랍인이며 예전보다 기독교인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무슬림들과의 충돌이 잦아진 그 지역의 현황을 학습했는데 라헬의 무덤을 둘러싼 장벽과 통곡의 벽 곳곳에서 만났던 무장한 이스라엘군이 뿜어내는 긴장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다툼과 불화가 불러온 오랜 아픔의 역사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땅을 에워싸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 땅에 평화로 임하실 주님의 이름을 나즈막이 불러보았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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