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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기능적 통제(1)

박종화 목사의 가정사역-24

역기능(逆機能:Dysfunction)의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사회의 여러 제도나 기구 등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반작용을 일으켜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기능(機能:Function)은 인간의 욕구충족이나 목표달성에 있어 유용한 활동이라는 의미와 어떤 시스템의 존속·발전에 있어 어떠한 활동이 긍정적으로 공헌한다는 의미가 있다. 


순기능과 역기능을 가족의 체계로 이해하면 순기능은 3세대(부모, 부부, 자녀)체계에서 개별적이고 분화가 잘 된 건강한 가족체계의 구성을 말한다. 반면에 역기능은 가족관계에 있어서 밀착이나 융합, 갈등이 나타난다.
새티어(Satir)는 가족의 96%가 역기능으로 보는데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역기능적인 가족체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역기능 가족체계에서 알코올 중독자이며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상처를 많이 받게 되고 참 자기의 기능은 멈추게 되고 거짓 자기로서 반항아 역할이나 모범생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들이 자라 다시 부모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되면 자신의 부모처럼 자신들도 자녀의 행동을 항상 통제하려 한다. 어린 시절 반항아 역할을 했을 경우 폭력으로 자신의 자녀를 통제할 수 있고 모범생 역할을 했을 경우 가치관이나 신앙으로 통제하려 할 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이든 자녀는 감정에 상해를 입게 되고 참 자기를 잃고 폭력적이거나, 신앙이나 신념을 통해 통제하려는 부모에 의해 자신만의 역할(거짓 자기)을 떠안게 된다. 


통제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특징과도 같은 것이다. 만약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에 늘 긴장하면서 산다. 그 두려움은 통제하는 부모에 대한 예측 불가능으로 인한 불안감과 두려운 감정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자녀는 자신의 수치심을 건드리는 일이 되며 자신이 어린 시절 통제를 당하거나 현재 부모로서 통제를 하지 않으면 역시 과거의 상처들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자신의 수치심 등이 건드려지게 된다.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은 과거 상처가 일정한 부분에 직면을 하게 된다는 의미로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함은 항상 공존하게 된다. 그 고통과 두렵고 불안한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누르려고 일을 항상 계획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며 통제하게 된다. 또는 반대로 자녀를 방임하고 유기할 수도 있다. 통제, 유기, 방임, 학대 등 이 모든 것은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통제의 한 방법으로 법이나 서열을 중요시 여길 수도 있다. 자신이 어린 시절 힘 있는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상처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을 피하고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서열상 위에 있으려고 노력한다. 서열상 아래에 있다는 것은 힘 있는 대상에 의하여 과거 힘 있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받았던 상처가 재연될 것이란 두려움을 때문에 자신이 서열상 위에 있어 타인을 통제하려 한다. 그러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통제하는 입장에 서려고 노력한다. 돈이나, 명예, 권위에 있어서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두기를 싫어하며 자신만이 구축하고 쌓아놓은 비교우위의 것들을 동원하여 점점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그 높아진 권위(거짓 자기)로 타인과 관계하려 한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힘이 있거나 서열이 높아 넘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한 편이 되려고 애를 쓰고 아첨을 잘 할 수 있으며 서열상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에 통제하려 한다. 사실 회사나 다른 조직에서 각자의 맡은 역할과 서로 돕는 일들로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 일로 관계를 해야 하는 것이 옳음에도 상처 받은 결과로 인한 왜곡된 사고는 흑백논리로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개념을 갖기 쉬우며 지속적이거나 융통성 있는 인간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도 관계를 하면 견딜 수 없는 분노와 미운 감정이 든다. 그럴 경우, 누구 편인지를 밝힐 것을 요구하거나 내 편이 아닌 적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오랜 친분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사람을 대할 때는 거리를 두고 교류분석의 세 가지 자아 가운데 어른 자아로 대화하는 편이 좋다. 


내면의 상처 입은 아이를 그대로 둔 채 성인 아이가 된다면 자신의 자녀에게 유해한 교육을 할 수 밖에 없다. 근친상간, 폭력, 그리고 유기나 방임으로 나타날 수 있고, 반대로 윤리적이거나 종교적인 부모가 되어 자녀가 어떤 경우라도 부모에게 복종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무조건적인 신념을 가르칠 수 있다. 이에 부모는 내면에 수치심을 가리는 도구로 완벽을 추구하거나 강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도덕과 윤리, 그리고 종교를 통하여 부모는 자녀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암묵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윤리와 종교는 부모의 수치심을 가리면서 옳은 일, 더 높은 권위를 사용하여 자녀에게 자신의 상처와 분노를 다른 어떤 것으로 포장해 투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기능의 가족이 외부에 나타나는 모습은 극히 정상적이고 훌륭한 부모 밑에서 복종하고 효도 잘하는 좋은 자녀들로 비춰질 수 있고, 그러한 모습이 조금이라도 깨졌을 경우 부모는 몹시 불안하고 수치심을 느끼기에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예측 가능하게 가족을 통제하게 된다. 내면의 상처가 폭력이나 중독형태로 드러나는 경우보다도 더 윤리적이고 종교적으로 드러나는 경우 치유를 위한 직면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본인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이러한 부모와 가족의 역기능의 체계를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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