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떤 신문에 감정가 526억 원 규모의 대형 교회가 경매에 나왔다는 기사가 난 것을 보았다. 그 기사에 따르면 2009년 감정가 277억에 경매에 나왔던 교회 이후로 종교시설로는 최대 규모의 경매 물건이라는 것이다.
십여 년 전 천주교 교인인 지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수도권의 모 신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성당에 다니며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도 하는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네 성당은 신도시에 들어선 성당인데 막상 주민들이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이사 온 신자들이 예측을 넘어 엄청나게 몰려드는 바람에 지어놓은 시설로 감당하기 어려워 쩔쩔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개발이 진행된 상태에서 다시 땅을 사는 것도 어렵거니와 새로 지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그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침(?) 그 신도시에 교회 몇 곳이 예배당을 너무 크게 짓는 바람에 건축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도를 내게 되었고 자기들이 그것을 사서 성당으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목사인 내게 마치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얄미운 생각도 들었지만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밖에도 나는 교회가 건축을 하고는 건축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예배당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몇 번 더 들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다행(?)인 것은 내가 들었던 그 예배당들을 모두 다른 교회가 샀다는 점이다.
내가 신학교 다니던 80년대 초 무렵에 “교회는 예배당 크기만큼 교인이 채워진다.”는 속설을 들은 적이 있다. 특히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에 서울 특히 강남을 필두로 한 대도시 교회들 중 다수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큼 양적인 성장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신학교 교수님은 강의 중에 개척교회는 3년 안에 승부를 봐야한다(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말을 거침없이 하셨다. 그 때는 요즘 더러 볼 수 있는 큰 교회가 지 교회 형식으로 개척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갈라지는 경우는 있었지만) 당시의 개척은 대부분 시쳇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는데도 그 교수님이 3년 안에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다니던 교회도 1980년도에는 한 해 동안 침례 받은 사람의 수가 당시 출석교인 수의 30%에 가까웠을 정도로 교인이 증가했었다. 얼마 전 모 교회 대학부에서 홈커밍데이를 한다고 해서 갔었다. 후배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에 물어보니 부모님이 교회 다니시는 학생들이 거의 90%라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우리가 다닐 때는 그 반대로 부모님이 믿지 않는 사람이 거의9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가족구원은 당시 많은 형제들의 공동 기도제목이었으니까. 여하튼 이것만 봐도 그 당시와 지금의 양적 성장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앞서 언급한 그런 속설이 나올 만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교인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또는 비싸게 예배당을 건축하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부도를 내는 교회를 보면 칠팔십 년대의 속설을 지금도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교회가 건축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건축 한 번 하면 목사의 수명이 10년은 줄어든다는 말이 다 생겼겠는가? 하물며 건축비를 감당 못해 부도의 위기에 몰린 교회의 목회자나 성도들이 당할 고초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위로나 격려는 못해줄망정 속설 운운하며 비판조의 글을 쓴다고 나무랄 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져 건축 시작할 때 예측했던 것과 너무 달라진 상황 때문에 어려움에 빠진 교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도난 모든 교회가 그럴까?
건축을 시작하는 어떤 교회도 그 어떤 목회자도 그 속설에 의지에서 건축의 규모를 결정한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 건축을 해야 하는 당위성과 그런 규모로 건축해야하는 이유를 분명히 제시했을 것이다. 그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비전’이 아닐까 한다.
자신들의 교회가 가진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그런 규모의 건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교인들을 설득했을 것이다. 대도시의 중견교회 다니는 집사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니던 교회를 떠난 상태였다. 이유는 그 교회가 건축을 하기로 했는데 목사님이 제시하는 그 규모가 현재 교인의 세 배를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의 예배당과 온갖 부대시설을 갖춘 어마어마한 규모였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반대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회 비전을 가로막는 믿음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분위기마저 들어 교회를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몇 년 후 그 교회는 원래 계획보다 훨씬 축소된 규모로 건축을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건축에 관한 비전이 정말 주님이 주신 비전인지 아니면 속설을 믿는 목회자의 야망인지는 당사자와 주님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주님만이 아실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을 왈가왈부하는 것이 주제를 넘어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들리는 소식이 안타깝고 답답하여 하는 말이다.
고성우 목사 / 반조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