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가면서 장애인 가정에 방문하는 것이 조금 자유로워지게 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가 언제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자유롭게 장애인 가정에 방문을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조금은 조심스러웠을 때였습니다. 그때 우리 선교단에서 협동간사로 돕게 된 권사님이 장애인가정을 심방하면서 기도와 격려를 해주던 중에 장애인 가정에 밑반찬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두 가정에 반찬을 만들어서 집에 방문할 때마다 가져다주는 섬김을 하셨습니다.
처음에 한두 가정이었는데 생각보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코로나를 겪으면서 장애인들의 가정에 모세혈관처럼 반찬을 공급해주던 많은 후원자들이 끊어져 재가 장애인 가정들마다 상차림이 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시작된 반찬섬김의 사역이 10가정이 되고, 조금 후 20가정이 되고 2년이 지나서는 30여 가정을 넘어서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평안밀알의 가족들에게 나누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건소의 간호사에게 연락이 오기도 하고, 때로는 공무원에게 연락이 오기도 하고, 때로는 복지관에서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교회에 다니는 성도님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반찬을 보내줄 수 없느냐는 요청을 받게 됐습니다.
지역사회의 장애인복지관과 사회복지관, 그리고 동사무소들에서 사례관리를 전문적으로 하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재가복지사업을 충실하게 해오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아함을 가지기도 전에 그렇게 많은 장애인들이 도움을 요청해 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상과 상식으로 알고 있는 세상과 눈에는 띄지 않지만 우리가 아는 상식과는 다른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하게 됐습니다.
선진국인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을 위해서 국가가 쏟아붓고 있는 예산은 실로 엄청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데도 장애인들의 가정에서 밑반찬을 마련하지 못해서 최소한의 신선한 식탁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잠시 느슨해져 있었던 제 마음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사회가 변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회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누리는 것을 일상적으로 누릴 수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은 그제서야 기억해 냈습니다.
그래서 밀알의 직원들과 함께하는 회의에서 간사들에게 부담스러운 제안을 하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이런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우리가 섬기는 가정을 35가정에서 100가정으로 확대합시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면서 좋은 봉사자들을 찾고, 후원자들을 찾아 나서고,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의 접수를 받아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후로 정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얼마 전까지 35가정이 도움을 받았는데 이후, 신청한 가정의 숫자가 90가정을 넘어섰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가정이 몇 개월만에 신청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데 만들 수 있는 조리시설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됐고, 또 만든 반찬을 한두 명의 직원들이 모두 배달하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초적이니 생활에 대한 지원을 포기할 수 없었고, 지금은 턱없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봉사자에게 인건비는 드리지 못하지만 점심식사는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재정적인 지원을 해드리면서 고생스러운 부탁을 드리면서 어렵사리 반찬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사실은 이렇게 자신의 시간을 드려서 봉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봉사자들은 한결같이 섬기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는 일들을 통해서 누군가가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봉사자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당분간은 100가정까지만 섬겨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연약한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바쁜 일상 때문에 이런 사람들의 존재들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장애인들과 함께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조차도 예외는 아니지요. 이번에 이런 귀한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는 훈련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의 이웃 중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아주 많이 계십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이렇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잠깐 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다시 한 번 우리보다 더 낮은 곳을 생각해낼 수 있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