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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테라피-4> 게임의 법칙 : 밀당!


미국에서도 노스캐롤라이나(NC)의 ‘촌’에서 사역을 하다 보니 인터넷으로 올라오는 수많은 신조어들이 꽤나 낯설다.
마음먹고 공부(?)하지 않으면 뭐가 뭔지 알아듣지 못하는 사오정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가정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강의하면서 요즘 청년들에게 배운 말 중에 ‘밀당’이라는 그럴듯한 개념이 떠오른다. 주로 데이트를 하는 남녀 관계에 적용되는 ‘밀당’, 즉 밀고 당기기는 부부관계에서든, 자녀하고든, 많은 관계에서 중요한 역동을 표현한다.


사실 인간관계에서는 1+1=2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밀당’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상호작용 때문이다.
한 사람만 들여다보면 참 좋고 재미있는 사람인데, 어떤 사람하고 붙여놓으면 영 딴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인 영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누군가하고 같이 있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부산물이다.


예를 들어 성격이 강하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은 옆에 잘 따라주고 도와주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빛이 난다.
재미있고 유머 있는 사람은 옆에서 깔깔거리고 웃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더 재미있어진다. 과묵하고 조용한 형제는 발랄하고 수다스러운 자매를 소개시켜 주면 잘 맞는 커플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상한 것은 성격이 똑같은 사람이 만나면 갈등도 없고 좋을 것 같은데 사실 서로 재미없어 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조용하거나 잘 따라주는 유한 사람들이면 서로 답답해한다. 둘 다 강하고 일을 만들어 내는 스타일이면 훨씬 더 많이 부딪친다. 한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이 만나면 간단한 1+1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역동(Dynamic)이라는 플러스 요소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호작용은 부작용을 수반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아버지께서 집안일을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다고 해도, 하다 못해 벽에 못 박는 것이나 뭘 고치시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이삿짐도 어머니가 새벽에 싸시고, 온 식구가 학교나 직장에 갔다 오면 이사가 끝나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어떻게 벽에 못도 하나 못 박으시냐”고 놀려도 그저 웃기만 하셨다. 그런데 요즘은 집안일을 못하시고 느긋하셨던 아버지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급하디 급한 어머니가 함께 보인다. 설거지가 조금이라도 쌓여 있는 것을 못 참고, 집안에 그림 하나 비뚤어져 있는 것을 못 견디셨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시키느라 잔소리를 하느니 당신이 그냥 해버리는 것이 속 편하셨던 거다.


이렇게 부지런한 어머니 덕에, 집안일을 점점 더 할 줄도, 하려고도 안하시는 아버지가 되어 가셨다. 성격이 불같은 어머니가 아이들을 잡고 야단치는 횟수가 늘수록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있거나 아이들과 놀아만 주면 되는 역할에 익숙해 지셨다. 필자는 어릴 때 야단치는 어머니가 악마고 놀아주는 아버지가 천사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천사 역할(Good guy)에는, 나쁜 역할(Bad guy)을 짊어지셨던 어머니의 공조가 함께 있었던 것이다.


부부관계에서 한 쪽 이야기만 들으면 상대 배우자는 세상에 몹쓸 사람처럼 그려지기 마련이다.
부부싸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만 살아. 그 인간 못 쓰겠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사람의 관계는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상대방의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으면 전체의 그림을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호작용이 조금 더 극단적이고 병리적인 양상으로 발전하는 것이 바로 중독이나 몸, 혹은 정신적으로 아픈 가족이 있는 경우에 생긴다.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포르노 중독, 도박 중독 등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의 옆에는 꽤 많은 경우에 이 사람을 고쳐 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중독자가 있는 가정에 가족으로서의 역기능이 발전되기 시작한다.


중독자의 옆에는 바로 ‘co-dependent’, 즉 상호의존적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Codependent는 아프거나 뭔가 부족한 사람 옆에서 이들을 도와주거나 고쳐주는 자신의 역할을 찾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필자와 같은 상담자나 목회자도 이런 Co-dependent의 특성을 발전 시키기 쉬운 자리에 있다.
혹 뭔가 부족해 보이고 불쌍한 사람에게만 자꾸 끌리고, 인간관계가 계속 도와주거나 고쳐주는 역할에 고정된다면, 내가 Co-dependent의 특성이 있는 사람을 아닌지 살펴야 한다.


이상하게도 중독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 부부가 깨져버리는 결과가 바로 이 상호작용 때문이다. Co-dependent는 옆에 아픈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고쳐줘야 하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얼마 전에 상담실을 찾아온 한 아내는 말한다. 자신이 데이트를 했던 모든 사람은 약물에 중독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현재의 남편은 ‘Adderall’이라는 향정신성 약물과 코카인 등의 마약이 없으면 제대로 깨어있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다. 그런데 이 남편을 이해하고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함께 앉아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이야기 해 본 적도,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화가 나있는 지 말 해 본적도 없다고 했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드러내서 남편과 대화하기 시작하면서 아내는 자신 안에 감추어진 두려움을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문제를 직시하게 되면, 자신이 남편을 떠나든지, 남편이 나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변화가 극도로 무서워지는 것이다.


남편에게 약한 모습이 있어야 나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남편의 중독을 방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Co-dependent이자 낮은 자존감의 예이다.
우리 모두는 원하든 원치 않든,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밀고 당기는 ‘밀당’의 상호작용 안에서 산다. 그 상호작용 때문에 삶이 재미있기도 하고, 그 상호작용 때문에 계속해서 망가져 가며 살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상대방의 역할만 보고 손가락질 한다.


저 인간 때문에 내 인생이 꼬였다고…. 그런데 사실은 그 게임의 일부분은 내 책임이다. 내가 한 파트를 담당한 그 ‘밀당’에서 내 역할 덕분에 상대방이 천사가 되기도 하고, 내 역할 덕에 그 사람이 더 못나지게도 된다. 내게도 내 몫의 책임이 있다.
심연희 사모
RTP 지구촌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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