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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테라피 5> 균형의 미(美): Give & Take

 

우리 교회를 비롯한 많은 지역 교회들이나 코스타와 같은 집회를 보면서 갖게 되는 고민 아닌 고민이 하나 있다. 이 수많은 크리스천 자매들의 짝 찾아 주기 미션이다.

 

너무 기도도 열심히 하고, 너무 신앙도 좋고, 너무 공부도 많이 했고, 너무 능력있고 똑똑한 이 자매들을 보면서 뿌듯하기 보다는 시름에 잠기게 되는 이유가 있다. 괜찮은 자매들이 자기가 존경할 만한 배우자를 찾을 때, 지레 겁먹고 도망가고 싶을 우리의 보통형제들을 보면서다.

 

실제로 독신의 은사와 거리가 멀고, 결혼은 하고는 싶은데 하염없이 나이만 먹는 자매들을 보면서 자꾸 외치게 되는 한마디가 있다. 제발 너무 괜찮은 엄친딸은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요즘의 대세는 허당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같이 적당히 잘나고 적당히 못난 구석을 갖고 태어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돕는 배필’(2:18)을 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도움이 필요한 빈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도 허당의 면모가 있게 마련이다.

 

거의 모든 일을 철저히 잘 해내는 사람들도 아차 흘리는 순간이 있다. 너무 괜찮은 사람들은 잘못하면 도움 받는 법을 잊어버린다. 내 옆에 사람들이 다가오고 설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아주 열심히 일을 하다 문득 돌아보면 나 혼자 일하고 있고, 나 혼자만 힘들다고 원망하고 있다.

 

오랜 시간 지속되는 인간관계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Give & Take의 특성이다. Give & Take가 적당히 균형을 이룰 때 그 관계가 오래 간다는 것이다. 잠깐 확 도와주고 잊어버리면 그만인 사이도 있다.

 

그런데 계속 주고 싶다면, 받는 법도 알아야 그 관계는 유지된다. 계속 받고 싶다면, 나도 줄 수 있도록 애써야 그 사이는 오래간다. 왜냐면 계속 주는 사람은 진이 빠지고, 계속 받는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계속 주는 사람은 상대방이 받기를 당연히 여기기 시작하면서 억울해 지거나 지쳐버린다.

 

내가 만만해 보이나, 내가 인가 싶어진다. 계속 받던 사람은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엄청 부담스러워진다. 상대가 많이 주다가 덜주거나 안주면 괜스레 섭섭해 질 때도 있다.자꾸 받으면 내가 자꾸 작아지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이렇게 균형이 깨져버린 관계들은 끝이 안 좋게 마무리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죽기까지 희생하시며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셨던 예수님의 삶을 지표로 삼는다. 오른 뺨을 한 대 맞으면 왼쪽 뺨도 돌려대고, 속옷뿐이 아니라 겉옷도 주며,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함께 걸으라고 하셨던(5:38-42) 그 말씀이 우리의 가치관을 형성한다.

 

그런데 인간관계의 강의에서 어떤 분이 하신 질문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우리보고 ‘Door mat’-즉 집안으로 들어갈 때 신발을 닦도록 현관에 까는 매트-가 되라는 말이냐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당하고도 가만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언뜻 보면 크리스천처럼 멍청하게 사는 사람들도 없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door mat’을 자청하는 자존감 낮은 군단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퍼줄 수 있는 데에는 한 가지 큰 비밀이 있다. 우리는 받은 것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시작된 예수님의 진한 사랑으로 생명을 받았고 풍성한 삶을 받았고 마르지 않는 기쁨의 근원을 알게 된 것이 크리스천들이다.

 

그래서 이제는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사역은 Give & Take가 균형을 이루고, 그래서 우리의 사역은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해지는 비밀이 여기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는 은혜가 고갈된 사역은 금방 탈진(Burnout)으로 이어진다.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밑천이 드러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열심히 말씀을 듣는 것과 손발을 움직여 봉사하는 것의 균형이 깨진 교회 생활은 무미건조해지기 마련이다. 자기를 돌보는 일(self-care)에 무심한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돌보다가 그들을 오히려 자신의 정서적 필요에 이용하게 되는 함정이 빠지기도 한다.

 

쉼과 일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오랜 장거리를 뛸 수 있다. 반대로 너무 많이 쉬는 사람은 일을 해야 쉼이 더 달콤하다는 것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Balance 즉 균형의 묘미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약한 면이 있다. 그냥 안 그런 척, 약하지 않은 척 할 뿐이다. 아내학교를 인도할 때, 아내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부탁이 있다.

 

제발 혼자 집에서 가구 좀 번쩍 번쩍 옮겨 놓지 말라고데이트에 대해서 강의할 때 교회 자매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교회 스피커 같은 무거운 짐 나르기를 자랑스러워하지 말라고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상대방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때로는 그 상대방을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다. 내가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 상대방은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도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당신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만 약속할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도 해보자. 내가 차 태워 줄 테니 언제 커피 한잔 사라고 해봐도 좋다. 이삿짐을 날라주고 짜장면을 얻어먹는 것도 상대를 덜 미안하게 한다.

 

남편이 일하고 돈 벌어 오느라 애쓰면, 칭찬받고 감사의 표현을 들어야 더 힘내서 일할 수 있다. 엄마가 아기 때문에 잠 못 자고 허리 아파도, 아이가 방긋방긋 웃고 엄마밖에 모르니까 힘든 건 다 까먹고 또 아기를 낳는 것이다. 주고받는 것이 깍쟁이처럼 계산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인간관계를 지속하는 skill이 되기도 한다. 오래 사역을 해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주고받음을 통해 무거운 짐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

 

오늘은 좀 약해져 보자. 나를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 그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내일은 또 강해져도 보자. 나의 작은 도움이, 꺾인 무릎에 힘을 얻고 일어서는 누군가의 지팡이가 될지도 모른다.

 

심연희 사모

RTP 지구촌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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