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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테라피 6> 균형의 미(美): 자율성과 친밀감의 사이

 

몇 년 전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말아톤이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5살짜리 지능의 자폐증을 가진 20초원이라는 주인공이 자신이 가진 장애를 극복하고 마라톤을 세 시간 내에 완주하는 성장기를 다룬 내용이었다. 필자가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초원이를 마라톤 선수로 만들어낸 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이 마라톤을 세 시간 내에 완주하는 서브쓰리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서 그 어머니는 영 관심이 없는 코치에게 매달리기도 하고, 나머지 식구들의 필요를 무시하기도 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아들의 훈련에 혼신을 다해 매달리던 어머니는 코치와 한바탕 말다툼을 한다.

 

코치에게 자식사랑과 집착을 혼돈하지 말라는 따끔한 충고를 듣고 그 어머니는 자신의 전부를 걸어온 초원의 마라톤 서브쓰리를 포기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출발선에 선 아들을 말리기 위해 달려온 어머니가 꼭 잡고 있던 아들의 손을 놓던 장면이다.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놓고 나서야 비로소 그 아들은 자신의 의지와 열정으로 서브쓰리라는 목표를 이루어낸다.

 

우리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면서 하나 됨을 강조한다. 필자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 가족은 하나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그룹을 나 자신보다 중요시하는 한국의 문화에서는 이러한 하나 됨의 정신은 아름다운 가치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 되기 위해서, 서로 친밀해지기 위해서 우리가 간과하는 점이 있다. 다른 사람과 어우러지고 하나 됨과 동시에 스스로를 책임지고, 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내는 자율성-autonomy’ 또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가정에서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러나 나 자신을 잘 돌보고 나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일은 나의 책임이다. 아들을 끊임없이 뒷바라지하는 어머니의 희생은 정말 귀하지만, 어느새 인가 어머니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체면을 세워주는 도구와 집착으로 전락해 버리는 위험성을 수반하기도 한다. 때로 그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놓을 때, 아들도 어머니도 스스로의 삶에서 진정한 성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Bowen은 가족치료의 한 이론에서 자아분화’(Self Differentiation)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이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할 줄 아는 능력이다. 우리에게는 인간의 독립성이 너무 강조된 서구적인 가치관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자율성과 의존성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상태를 가리킨다. 자아분화가 잘 이루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어우러져 살줄 알면서도,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을 독립적으로 구분할 줄 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힘들고 불안해 할 때 함께 그 감정에 휩쓸려서 함께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분리해서 그 상황을 다루는 침착함이 있는 사람이 높은 수준의 differentiation, 자아분화가 이루어진 사람이다. intimacy 친밀감과 autonomy 자율성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와 자신을 문제를 잘 분리하고, 다른 사람의 문제 때문에 지나치게 요동하지 않는 상태를 설명한다. 자신을 문제에 분리할 줄 알면,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함께 가슴 아파하면서도 그 사람을 오히려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자아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신의 문제를 상대방에게 투사시키는 일도 잦아진다. 상담소를 찾았던 어떤 남자 분은 차가 없으면 다리가 없는 것과 같은 미국에서 50세 중반이 되도록 운전을 배우지 못했다. 어머니가 운전을 못했단다. 심한 불안장애에 시달리던 어머니의 심한 불안증세가 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진 사례였다.

 

어머니의 감정에서 자신을 분리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감정기복에 따라 함께 불행하고 함께 불안해하는 것이다. 자식이 다칠까봐 너무 불안했던 어머니가 자식이 자신에게서 분리되고 독립되어 나가는 단계를 극도로 두려워한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우리들은 자칫 잘못하면 자녀들에게 우리의 못다 한 꿈을 강요하게 되기 싶다. 우리가 하지 못했던 일을 자녀들이 대신 해주길 바란다. 사회적인 지위와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미국까지 들어와 자녀들에게 최고의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하는 부모들을 보게 된다. 부모가 보여주는 위대한 사랑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자녀들은 자라가며 영어가 잘 안되는 부모님을 위한 통역사 노릇을 하다가 자신에게 자꾸만 기대는 부모님이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자라가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미국에서 자란 1.5, 2세들이 겪는 갈등이고, 그들이 멀리 집을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냉정한 말이지만, 부모의 삶은 부모에게 책임이 있고, 자식들의 삶은 자식들에게 책임이 있다. 하나 되는 가정이지만 그 안에서 독립성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의 자식들은 세상에서 깨지고 부서지면서도 다시 일어날 힘을 잃는다.

 

부부가 늘 함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지만, 떨어져 있는 시간이 없으면 함께 있는 시간이 귀하게 느껴지지 않게 마련이다. 연애하는 커플이 항상 붙어있으면 싸우는 시간도 늘어난다. 자녀들이 아무리 귀하고 예뻐도 방학이 빨리 끝나기만 바라는 게 또한 부모이다.

 

마마보이가 배우자로서 기피대상이 되는 이유는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며 자신의 정체감과 독립성을 찾아야 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되지 못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정말 가까운 그 한 사람이 필요하지만, 나 자신에게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 상대를 위한 희생도 필요하지만 나를 발전시켜가는 self care, 자기관리도 함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부부는 분방하면 안 되지만, 기도하는 시간은 떨어져 있도록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라고 말씀하셨지만, 또한 모든 지체들을 다르게 만드셔서 다른 모양으로 섬기게 하셨다. 우리는 함께 모이기를 힘써야 하지만, 또한 흩어져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너무 자기들끼리만 좋은 목장이나 소그룹은 분가가 안 되는 고인 물 같아진다. 통일성과 자율성의 조화가 중요하다.

 

하나 됨을 핑계로 우리는 우리 배우자에게, 혹은 자식에게 내 행복을 책임지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나를 돌보고 나를 발전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면서,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에 실패하면서 배우자 탓, 자식 탓, 다른 사람들 탓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나의 불안감 때문에, 낮은 자존감 때문에 상대방을 꼼짝없이 내 옆에만 붙들어 놓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친밀감과 독립성의 균형이 건강한 관계, 건강의 인성의 지표이다.

 

심연희 사모

RTP 지구촌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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