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목회의 조급증(躁急症)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병이 조급병이다. 한국의 속담에 우물가에 가서 숭늉 달랜다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참을성이 없고 급한 사람의 성격을 빗대어서 한 말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뭐든지 빠른 것을 원하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다. 미국이나 서양 사람들처럼 느긋하게 기다린다거나 무엇이 이뤄지고 완성되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여유가 없는 듯하다. 어느 글을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한 성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자판기에 커피 버튼을 눌러놓고 90도로 허리 굽혀 컵 나오는 곳에 손 넣고 기다린다. 기다리던 버스가 오면 도로로 내려가서 버스와 추격전을 벌인다. 택시가 오면 따라 뛰면서 문손잡이를 잡고 행선지부터 외친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닫힘 버튼부터 마구 누른다.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앞에 서기도 전에 지퍼부터 내린다. 우리 한국인이 성격이 급하다는 사실은 자타가 공인한다.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특징을 물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급한 성격이다. 술도 빨리 취하려고 폭탄주를 돌리고 원샷을 외친다. 식당에 가서 무작정 빨리 되는 게 뭐냐고 묻는다.” 한국 사람들은 빨리 결과부터 알고 싶어 하는 조급증을 드러낸다.

 

이렇다보니 한국인들의 조급증은 이제는 민족적인 정신 병리 현상으로 틀이 잡혀가고 있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에게 조급증을 느낀다는 것은 자기에게 무엇인가 위험이 다가온다는 신호이다. 따라서 조급증은 언제나 불안과 함께 경계심을 동반하게 돼있다. 이것이 발동하면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게끔 된다.

 

소위 말하는 위기에 대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위기에 대한 반응에 대해 어느 의과대 교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위기가 생기면 우선 혈중(血中)의 아드레날린 분비를 증가시킨다. 그렇게 되면 맥박은 빨라지고 혈압이 오른다.

 

또한 호흡이 급해지고 팔 다리 근육에 힘이 주어지면서 임전태세를 갖춘다. 이럴 때 신경은 아주 예민해져서 작은 자극에도 공격적으로 변한다. 이런 긴장상태에서는 하찮은 일에도 공격 중추가 자극되어 신경질을 부리며 핏대를 올리고 싸우게 된다. 이러한 반응은 위험에 처한 동물의 본능이다.

 

누구나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고 불안감을 갖게 된다. 불안감이 높아지면 이성을 차릴 수가 없고 막상 문제가 생기면 마음만 다급해서 허둥댈 뿐이지 냉정하게 이성을 찾지를 못한다. 이성을 잃고 여유가 없다보니 주의력이 떨어져 집중이 되지를 않는다. 이것이 조급증의 병리현상이다. 조급증은 모든 일을 빨리 이룰 수는 있겠지만 부실과 사고를 일으키고, 몸과 마음의 균형을 무너트려 건강을 해치게 한다.

 

마찬가지로 각 교회가 선택하는 프로그램의 트랜드 속도를 보면 그 바뀌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3년 정도를 적용해야 결과가 조금 나타날까 말까 하는 양육프로그램도 2년은 고사하고 1년을 넘기기 어려운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각종 세미나를 다녀온 후에는 기다리지 못하고 얼마 후에 또 다른 세미나를 간다. 거의 중독된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곤 한다. 목회자들의 조급증이 교회 성장의 방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급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조급증이란 것이 하나의 병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급증은 저명한 심장전문의 Meyer Friendman박사가 1970년에 그에게 진찰 받은 심장병 환자들의 공통적 행동 특성이 나타나는데서 기인하여 만든 것이다. 하여튼 모든 현대인들, 특히 도시인들이 조급한 마음으로 항상 바쁘고 긴장된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조급증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변형되어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것을 못 참아하는 일종의 열등감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겠다. 남보다 좋은 직장, 남보다 좋은 집, 남보다 많은 월급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너무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 자신의 개성과 독특한 소중함을 잘 모르고,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열등감이 이런 조급증을 만든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목회 역시 단 번에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다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저돌적으로 돌진을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을 소진하여 주저 않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가하면 목회자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을 본다. 마음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규칙을 바꾸어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목회와 목회자들의 모임은 조급함이나 성급함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주인을 지근(至近)에서 모시는 종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자리에 연연하여 그 자리를 밀고 앉아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그는 불충한 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회자들과 마찬가지로 교인들의 가정도 어린아이들을 사교육 조급증으로 몰아세우는 불안 심리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것을 쓰려면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이제는 먼 시야를 가지고, 현미경보다는 망원경을 가지고 삶을 여유롭게 살아보자.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너무 여유가 있지 아니한가?

 

이규호 목사 

처음사랑교회

행복가정치유상담원 원장

 



배너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