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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치기 해변을 생각하다

 

한 달 동안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출발 때는 맑은 날엔 사진을 찍고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엔 글 쓰는 일을 할 계획이었으나 가서 생각을 바꿨다. 이 기간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휴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달 내내 사진만 찍었다. 좋아하는 사진을 원도 없이 찍었다. 찍을 만한 곳이라 생각되면 어디라도 달려갔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조사를 해 두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그러지 않아 출사에서 돌아오면 내일의 출사지를 찾는 데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일부러 출사지에 대해 알아보지 않은 면도 없지 않았다. 유명 출사지의 포인트에 삼각대를 거치해 놓고 찍은 사진들의 유사성에 호감을 가질 수 없는 필자인지라 그런 곳을 찾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기도 했다.

 

필자는 대개 자연에서 피사체를 찾아 찍는다. 유명한 곳이 아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돌아다니며 찍는다.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기 위해 여행을 하지만 출사지로 유명한 곳을 일부러 찾는 일은 드물다. 그건 그렇고 야외에서의 사진은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찍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그럴 때 찍으면 밋밋한 사진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개는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일출 직후와 일몰 직전에 찍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보니 숙소에 돌아온 것은 항상 날이 어두워져서였다. 녹초가 된 몸으로 낮에 찍은 사진을 정리하랴 내일의 출사지를 찾으랴, 제주도에서의 생활은 밤에도 쉴 틈이 없었다.

 

이리 말하면 그런 것이 어떻게 휴가가 될 수 있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아니다. 육신은 무척 피곤했지만 머리만은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마음도 한가하고 편했다. 탁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시합에 져 밀려난 다음 다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과 같다면 조금은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몸은 지쳐 있으나 마음은 아니지 않은가.

 

한 달 동안 참으로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우도에 가파도와 마라도 같은 섬까지 다녀왔다. 사진도 상당히 다양한 것을 찍을 수 있었다. 돌담, 돌하르방, 초가집, , 해변, 선인장 등 많은 것을 찍었다. 그러는 동안에 계획된 한 달이 사흘 뒤로 다가왔다.

 

밤에 내일은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관광 안내 책자를 뒤져 보았다. ‘광치기 해변이라는 좀 색다른 이름이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는 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필자가 좋아하는 피사체들로 가득했다.

 

다음날 새벽 일찍 서둘러 길을 떠났다. 숙소가 있는 애월에서 성산 일출봉 가까이에 있는 광치기 해변까지는 상당한 거리여서 차로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성산에 들어서자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아침노을의 붉은 빛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말할 수 없이 허탈했다. 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삼각대를 접어 모두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해변을 덮고 있는 너럭바위가 햇빛을 받아 노랗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바위에 낀 파란 이끼가 햇빛에 노란 빛으로 보이기도 한 것이다.

 

너럭바위라고는 하지만 그냥 넓기만 한 것이 아니라 층을 이루는가 하면 갖가지의 모양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파랗고 노란 빛이 한없이 아름다워 카메라만 들이대면 어디고 사진이 될 것 같았다. 필자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는 사이에 물이 조금씩 차 들어오고 있었다. 마침 썰물 때였던 것이다.

 

바위와 이어지는 모래밭으로 눈을 돌리니 검은 색이었다. 검은 모래의 해변이었다. 노란빛을 띤 파랑과 검은색의 조화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필자는 이게 무슨 횡재인가 싶었다. 행운이었다. 날씨가 좋은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물때가 맞은 게 행운이었다.

 

낚시라든가 조개 캐기 같은 바닷가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물때가 무척 중요하다. 이는 아침저녁으로 밀물과 썰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때를 말하는데, 이것이 날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것을 명시해 놓은 달력도 있고 물때표라고도 조석표라고도 하는 것도 있어 여간 편리하지 않다.

 

필자도 한동안 바다사진을 찍었기에 이것의 덕을 톡톡히 봤다. 광치기 해변에 대해 알게 된 그날 밤도 인터넷에서 물때표를 찾아 해변이 드러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 다음날, 그러니까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그날도 필자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어제처럼 붉게 물든 아침노을을 상상하며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다. 그러나 도착해서 보니 노을은커녕 해가 떠올라야 할 동쪽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없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관광객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있으니 감사하게도 구름은 말끔히 사라져 주었다. 필자는 역시 신이 나서 셔터를 눌러 댔다. 그러는 사이에 물이 들어와 너럭바위들이 물에 잠겨갔다. 바위들이 자취도 없이 물속으로 사라진 뒤에야 사람들이 와서 바다 저만치에 보이는 성산 일출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 그 장관인 너럭바위들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필자도 그랬다. 사실을 말하면 필자가 처음 광치기 해변을 찾은 것은 제주도에 도착하고 며칠 안 된 어느 날 성산 일출봉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거기가 광치기 해변이라는 것도, 유명한 곳이라는 것도 모르고 차를 몰고 가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어 들려 본 것이다.

 

그때는 물이 들어와 있어 그냥 평범한 바다에 지나지 않았다. 필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그저 그런가보다고 자리를 뜨고 말았다. 일본은 국민의 1%도 채 안 되는 크리스천이 있지만 기독교 작가는 많았다. 그런데 그들의 대개는 나중에 기독교를 떠나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자신을 기독교 신자라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주위만 맴돌다가 별것 아니라며 떠나 놓고는 기독교 안 깊숙이에 들어가 있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필자가 초신자 시절 고향에 자기도 교회에 다녔었노라고 거드름을 피우는 선배 한 사람이 있었다. 열심히 믿어 봤지만 별것이 아니었다며 교인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했다. 초신자였지만 필자는 그때 그가 진짜로 믿은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가 있었다. 정말 하나님을 알았다면, 성삼위 하나님을 알았다면 결단코 신앙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기독교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거기를 떠날 수가 없다. 가장 값진 가치가 있는 곳을 어떻게 떠날 수가 있겠는가. 만약 세상에 한눈이 팔려 잠시 떠난다 해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 기독교이다.

 

필자는 밀물 때의 광치기 해변에서 저만치에 보이는 성산 일출봉만 바라보다가 자리를 뜬 사람들이 나중에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명성과는 달리 별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자기도 기독교 신앙을 가져 봤지만 별것이 아니었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 그 장관인 너럭바위들이 물속에 잠겨 있는 밀물 때의 광치기 해변을 보고 별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크리스천만큼 횡재한 사람들도 없다. 어쩌다 밭에 숨겨진 보화를, 천금을 주고도 못 살 보화를 발견하여 자기 것으로 한 사람들이니 왜 아니겠는가. 그런데 거기에도 문제는 있다. 그 보화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값진 보화라 할지라도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가치를 모른다면 이미 보화가 아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보화 하나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됐다. 그것도 그냥 백성이 아니라 그 나라의 왕자와 공주로서 백성이 됐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상승된 신분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왕자로서, 그리고 공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긴다면 그것을 어찌 부나 명예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임 종 석 목사

우리집교회 협동목사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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