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도 이 새로운 규약과 함께 등장한다. 마태공동체가 유대교의 율법뿐만 아니라 전통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함으로, 마태공동체 구성원이 된 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를 원한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마태 기독교 공동체 구성원으로 전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또한 마태는 하나님의 뜻이 이제는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나타난다고 묘사함으로, 마태공동체가 하나님과 맺은 새로운 규약의 중요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산상수훈의 중심인 팔복도 마태 기독교 공동체의 새로운 규약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팔복의 첫 번째 복과 마지막 복은 산상수훈의 수신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될 것임을 약속한다(마 5:3, 10). 팔복 가운데 나머지 부분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소유하게 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신해 마태공동체에 새로운 규약을 전달한 것이다. 이것은 마태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 취해야 할 믿음의 유형들과 공동체 생활에 대한 규율을 말한 것이다. 즉 산상수훈의 수신자인 마태공동체는 예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것을 새로운 규약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교 사상이 함의된 마태복음 5장 8절의 “하나님을 볼 것이요”가 마태의 기독교 공동체가 지켜야 할 하나님과의 새로운 규약임을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을 볼 것이요”는 하나님의 가시적인 현현이 예수를 통해 나타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태는 무리들이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는 했지만(1:23),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 존재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무리들에게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예수의 신성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강조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볼 것이요”에는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현현이 함의되지 않았다(참조, 계 22:4). 따라서 “하나님을 볼 것이요”에는 하나님의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현현이 묘사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마태 기독교 공동체의 새로운 규약 가운데 하나인 팔복에 유대교 사상인 하나님의 가시적인 현현이 그대로 묘사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유대교적 색채를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을 볼 것이요”에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영적으로 만난다는 의미가 전혀 없다.
기독교교리 관점에서 예수를 통해 영적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은 타당성이 있는 성경적 가르침이지만, 마태복음 5장 8절 “하나님을 볼 것이요”에는 이러한 의미가 나타나지 않는다. 마태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을 예수를 통한 영적인 만남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유대교 사상인 가시적인 하나님의 현현을 본 구절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즉 마태복음을 포함한 신약성경에는 예수를 통해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내용이 있지만, 본 구절은 의인들이 미래에 하나님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음을 강조한다.
결국 본 구절에는 예수를 통해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가 없다. “하나님을 볼 것이요”는 유대교의 가시적인 하나님 현현 사상이 함의된 것이다.
셋째, “하나님을 볼 것이요”는 다가올 종말에 의인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유대인들은 종말에 가서야 하나님을 완전히 알게 되고 가시적으로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유대교 사상에 바탕을 둔 하나님의 가시적인 현현 사상이 예수의 미래 종말론 가르침을 통해 본 구절에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볼 것이요”에 유대교 사상이 함의되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유대교 사상이 함의된 “하나님을 볼 것이요”가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마태공동체에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에 의해 유대교 사상이 마태 기독교 공동체에 전달됐다는 것은 그가 가르친 유대교 사상이 기독교에 융화되어 마태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전달됐음을 말한다. 마태가 묘사한 예수의 가르침 방식은 랍비들이 백성들을 교훈할 때 사용한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그의 가르침에는 미래 종말론적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다. 예수는 종말론적 설교가이며, 그의 가르침에는 유대교 종파의 한 부류인 쿰란공동체의 종말 사상이 함의되어 있다(막 1:27).
또한 유대인들은 역사적 사건들을 성경에 빗대어 해석하는 전통이 있다. 유대교의 교육 방법은 스승과 제자들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예수는 유대교 교육 형태를 뛰어 넘어 모든 사회 계층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은 분명히 랍비들의 가르침과는 달랐다. 랍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경 해석에 권위를 가진 분으로 소개된다. 이러한 권위자인 예수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는 유대교의 미래 종말 사상을 선포한 것이다. 예수가 유대교 사상을 마태의 기독교 공동체에 그대로 가르친 것은 마태공동체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환 중에 있는 공동체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기 공동체는 당연히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마태공동체의 이러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환 중인 모습이 바로 팔복 가운데 하나인 “하나님을 볼 것이요”에 투영된 것이다.
V. 나가는 말
‘하나님을 보다’와 마태공동체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첫째, 하나님의 천지 창조 이래 인간의 열망은 창조주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하나님을 보다’를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많은 학자들은 문헌 연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구약 성경과 유대교 문헌에서 ‘하나님을 보다’는 하나님의 가시적인 현현이 종말론적 관점에서 언급됐음을 확인했다.
반면에 신약 성경은 ‘하나님을 보다’를 인간이 가시적으로 하나님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보다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영적인 만남, 그리고 그리스도 자체를 하나님의 현현으로 보려는 경향을 보인다.
구약과 유대 문헌이 하나님의 가시적인 현현을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해한 반면에 신약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유독 마태복음 5장 8절은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인 사건으로서 “하나님을 볼 것이요”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시적 현현을 미래 종말론적 관점에서 언급했다. 즉 유대교의 하나님 현현 사상이 마태복음 5장 8절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둘째, 마태공동체에 대한 정체성 연구는 마태공동체가 유대교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는데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논쟁은 마태공동체가 유대-기독교 공동체인지 아니면 기독교-유대인 공동체인지를 확인하려는 지루한 논쟁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을 보다’와 마태공동체의 정체성 논쟁은 서로 다른 일직선을 그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본 논문은 서로 다른 두 주제가 마태공동체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증명했다. 유대교 사상이 내포된 마태복음 5장 8절의 “하나님을 볼 것이요”는 마태공동체가 여전히 유대교로부터 분리가 진행 중인 전환기적 정체성을 함의한 공동체임을 보여준 것이다.
유대교로부터 분리가 진행 중인 마태공동체는 새로운 종파(sect)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들이지만, 여전히 유대교의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태공동체는 여전히 유대교 신관을 함의한 상태로 전통 유대교 사상에서 벗어나 서서히 기독교로 그 정체성을 전환 중인 공동체임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팔복 가운데 여섯 번째 축복인 “하나님을 볼 것이요”는 단순히 유대교 사상을 함의한 구절이 아니다. 이것은 유대교 사상을 벗어나 기독교로 그들의 정체성을 전환중이면서도 여전히 유대교 사상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마태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신인철 교수
침신대 신학과
(성서신학/신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