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가 ‘세월’이 제일 좋은 ‘약’일 거라 했는가? 가는 ‘세월’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세월’ 앞에는 그 누구도 장사 없을 거라 했던가? 작금의 우리나라는 그 모든 말들이 다 우리의 게으른 생각과 준비의 부족만을 덮으려 함이었을 뿐, 진리는 아니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세월’이 ‘약’이란 말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억울하고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세월’만 가면 다 해결될 것이고, 흘러간 그 ‘세월’이 그 고통을 다 잊게 해 줄 거라 했지만 어디 지금 그런가? 그 ‘세월’만 믿고 아무런 준비 없이 그 소중한 생명들을 그냥 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더 화가 치미는 것을. 그로 인해 일상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음식은커녕 잠조차 청할 수 없는 이들이 아직도 이렇게 많은 것을. 그러니 ‘설마 괜찮겠지’ 하면서 그 소중한 생명들을 무작정 태워 보내기만 한 ‘세월’은 절대로 ‘약’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위협하는 ‘독’이었던 것이다.
“‘세월’ 앞에선 누구도 장사 없다”는 말 역시 그렇다. 미리미리 점검하지 못한 나태함과 ‘세월’을 책임진 이들의 무책임함이 침몰한 ‘세월’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더 힘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 절대 그 ‘세월’의 흐름에만 운명을 맡길 일이 아니었다. 그 ‘세월’은 그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지 못했다. 막연한 안심과 근거 없는 준비가 우리 모두를 치명적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그 ‘세월’이 그냥 가지 못하도록 붙잡았어야 했다. 묶어뒀어야만 했다. 점검하고 또 점검했어야만 했다. 아니라면 그 모두를 그 ‘세월’로부터 다 내리게 했어야만 했다.
그러니 절대로 “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가 있나요?”라며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만 있을 건 아니다. 뱉어버린 말, 엎질러진 물, 쏜 화살, 잃어버린 ‘세월’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말로 그냥 넘어갈 때가 아니다. 말을 뱉기 전에, 화살을 쏘기 전에, 물을 엎기 전에, ‘세월’을 잃기 전에 막을 수 있으면 막도록 해야 함이 옳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은 절대로 좋은 처방이 아니다.
일찍이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은 말했다.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칠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세월’에 대한 보복”이라고. 어쩜 그렇게 오늘 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정확히 예견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모두 예외 없이 올라타 어디론가 향해 가려는 이 ‘세월’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일단 ‘세월’의 무게부터 줄이자. 될 수 있으면 가볍게 하자. 과적은 배도 인생도 무조건 금물이다. 인생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위험해지는 것임을 이번에도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그러니 짐이 돈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아예 버리자. 언젠가는 날 넘어뜨리고 말 짐들이다. 그러니 내려놓을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내려놓자.
그리고 점검하자. 점검하고 또 점검하자. 내 삶의 치부가 드러나더라도 말씀 앞에서 날마다 자신을 비추어보고 자신의 죄의 무게를 달아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리고 채우자. ‘평형수’를 채우자. 그 어떤 파도와 흔들림에도 날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말씀의 평형수’를 채우자. 그것만이 이 흔들리는 세상에서 날 지켜주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그 무엇보다 제대로 된 선장에게 당신의 ‘세월’을 맡기자. 주님만이 당신 인생에 믿을만한 선장이시다. 그분만이 특등 항해사이며, 특등 기관장이시며, 특등 조타장이시다. 당신의 ‘세월’이 침몰치 않으려면 반드시 당신의 항해를 주님께 맡겨야 한다.
5월은 가정의 달, 우리 아이들과 우리 가정을 그런 ‘무능한 세월’에 맡기지 말고 ‘전능한 주님’께 맡기자.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