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대학에서 학생지도를 맡고 있던 1980년대 초반의 군사정권 시절에 문교부(교육부) 교육정책실로부터 즉시 학칙을 개정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는 화급한 공문이 내려왔다. 주요 학칙 개정 내용은 학사경고를 세 번 받은 학생은 [즉시] 퇴학 처분 할 것과 학생의 정치 참여 금지 항목을 신설 하라는 것 등이었다.
학생의 정치 참여 금지는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3회 학사경고 자 퇴학처분은 큰 문제였다. 우리 대학에도 스무 명 정도의 학생이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교무위원회는 장시간 논의 끝에 학칙은 지시대로 개정하되 시행 일시에, “이 규정은 [1983년] 신입생부터 적용 한다”는 경과조치를 첨부해서 우편으로 보고했다.
학칙을 접수한 교육정책실에서는, 지방대학이 국가 시책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경과조치를 첨부했다고 질책하면서 학생처장을 찾았다. 감독기관에서 불호령이 떨어지니 직원이 수업 중인 나를 불러내어 교육정책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게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후에 교육부 차관과 대학 총장을 역임하기도 한 당시의 장모 교육정책실장에게, 신입생을 받을 때 대학이 교부한 학칙은 학생들과의 약속인데 대학이 그것을 일방적으로 깨뜨리고 학생을 퇴학시킬 수 없으며, 아울러 우리 대학은 학생들이 언제 길거리로 뛰쳐나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 가운데서도 [그 해까지] 시위 한 번 없이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학칙을 고쳐서 스무 명이나 되는 학생을 제적시키면 학생들이 그것을 수용할 리가 없고 캠퍼스는 곧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아무도 감당할 사람이 없다, 경과조치에 대한 책임은 대학이 지고 학생을 지도할 터이니 개정 학칙을 접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뜻밖의 응답이 왔다. 장 실장은, 지금(그 때)까지 그렇게 말하는 대학이 하나도 없어서 미쳐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학칙을 승인할 터이니 학생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했다. 그는 사려 깊고 용기 있는 이였다. 공무원 신분을 가지고 그런 경과조치를 승인했다가 무소불위의 군사 정권으로부터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를 때였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도, 규정 개정(改正), 예배 개폐(開閉), 집회 시간 변경 등을 결정할 때는 경과조치 기간을 설정하고 충분히 알려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제직 선출 자격이 바뀌고, 주일 아침 교회에 가니 그간 잘 봉사하던 부사역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토요일 오후에 교회에 가니 중등부는 주일 오후에 고등부와 함께 예배드린다고 하는 등의 긴급조치가 반복되다보면 신자들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시행하기 위해 기존 계획을 변경[하기도] 하는 것이 목회의 일부이며 교회(목회자)의 권리인 만큼, 적용 시기를 조정하고 충분히 알리는 것 또한 교회의 의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