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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음악으로 풀어보는 성경이야기(283)

살인자의 편지



고린도후서3: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하는 말씀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 하나님으로 믿는 기독교인들을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곳은 안디옥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추천서나 증명서가 없어도, 이름표를 달고 다니지 않아도 선한 행실을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쟁이임을 알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러한 표현은 언행일치, 심행일치하는 참다운 기독교인들이 되어야만이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거룩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불륜과 간통을 숨기기 위해서 밧세바의 남편이자 충신인 우리아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위계에 의한 살인 및 살인교사의 방법으로 우리아를 죽이기 위해 음흉한 편지를 장군 요압에게 보냈다.


살인편지의 노래는 사무엘하 11:15에 기록되어 있다.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우리아는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편지를 본인 들고 가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충신을 죽이는 왕, 그것도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왕이, 고린도후서 버전으로 표현한다면 여호와의 편지가 되어야 할 그가 마귀짓을 하고 말았다.


전복한 여객선에서 탈출한 선장 및 직원들은 수백 명의 승객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상당한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적극적인 구조는 물론 간접적인 구조의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부상당한 동료까지 버렸다. 보통 상식으로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었기에 보험금을 의식한 행동이나, 구조회사 선정을 의식한 행동이었다라는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시작에 불과했다. 선박불법개조와 불법운영을 지시한 이 회사의 소유주는 백주 대낮에 도망다니고 있고, 추종자들은 그의 도피를 적극적으로 도움으로써 실정법에 도전하고 있다. 아무런 죄책감이나 책임의식도 없다.


더욱 불쾌한 것은 도무지 죄책감이나 책임의식이 없는 이러한 자들이 기독교인을 사칭하며 자신들의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서 구원을 도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영화 밀양에 등장하는 납치살인범이 자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으니 피해자에게는 더 이상 용서를 빌 필요가 없다고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그의 논리는 과연 옳은 것인가? 그는 자신의 주장대로 구원받은 자인가?


거듭남의 깨달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회개 없이도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나? 구원받았다고 하는 깨달음이 자기확신에 불과할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믿음의 진위를 판정하는 최종판단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니신가?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듯이 짐짓 고의적으로 반복하여 범하는 세속적인 죄가 자라나서 원죄의 속죄마저 취소할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고의적으로 죄를 상습적으로 범하는 자의 믿음은 처음부터 진정한 믿음이 아니었을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야고보서의 지적대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회개도 없이 자범죄를 상습, 고의적으로 범하는 자들은 원죄의 문제부터 해결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울왕과 다윗왕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들 중의 하나가 회개이다.


사울왕은 기름부음을 받은 후 범한 죄에 대해 제대로 회개한 적이 없다. 회개를 가장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러나 다윗왕은 자신의 죄가 지적당할 때 진심으로 회개했다. 비록 간통과 살인교사를 통한 살인죄를 범하는 등 극악한 죄를 범했지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정직한 회개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


다윗의 회개는 하나님도 인정하신 회개였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믿음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고, 회개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회개가 진짜 회개이다. 아예 회개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집단은 그리스도의 편지를 가장한 살인자의 편지에 불과하다.


노주하 목사

대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