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앞두고 가지고 있던 승용차를 한 직원에게 넘겨주고 새 차를 샀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승용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주말과 야간에 가까운 곳에 출입할 때 일일이 기사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새 차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토요일 오후에, 옛집에 다녀오면서 어떤 육교를 올라가는데 뒤쪽에서 『쾅』 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차가 몹시 흔들렸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등절 했는데 마침 1차선을 가던 대형 트럭이 육교 위에 멈춰 서 있다가 내가 가까이 가니 한 백여 미터 쯤 앞 갓길에 정차하고 있는 하얀 승용차를 가리켰다. 그제야 나는 상황판단이 되었다. 그 차가 차선을 바꾸면서 내 차의 바퀴 부근을 친 것이었다.
나는 다행히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 내가 가해 승용차 뒤에 차를 세우자 한 4, 50십 세 쯤 되 보이는 여성 운전자가 내게로 오더니, “다치지는 않으셨는지요? 제 잘못이예요. 제가 변상 하겠습니다”하고 말했다.
나는 그 때까지, 잘 잘못 간에 접촉사고가 났을 때 먼저 사과하는 운전자를 나는 본 일이 없었다. 내 승용차는 뒷문에 흠이 좀 생기기는 했지만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조심 하셔야지요. 난 괜찮으니 어서 가세요” 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 여성이 머뭇머뭇 하더니,
“저 혹시, 침신대 …극동방송에서….” 하고 조심스레 말하는 것이었다. 그 여성은 내 신분을 알고 있었다. 조심스레 살아야 할 세상이다.
일전에는 아내를 태우고 병원에 가는 중에 차선을 변경해서 육교를 오르려고 방향지시등을 켜도 오른편 차선의 택시가 비켜주지 않는다. 내가 속도를 늦추면 그도 속도를 늦추었다. 100여 미터를 그렇게 가다가 하는 수 없이 내가 속력을 내어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차선을 바꾸었다. 택시는 한 참 뒤에서 항의성 전조등을 깜박이더니 사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내가 육교를 내려가서 편도 이차선 도로를 한 참 가고 있는데 그 택시가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 내 차를 앞질러 도로를 가로막고 서는 것이었다. 택시 기사가 내 차 앞으로 다가오더니 무조건 폭언을 퍼붓고, “이걸 그냥, 확”하면서 내 코를 스칠 듯 팔꿈치를 휘두르고 돌아갔다.
그는 운전도 함부로, 말도 함부로, 성질도 함부로, 주먹도 함부로 휘둘러댔다. 그는 다른 차들은 다 길에 놀러 나왔고 자기만 먹고 살려고(생계를 위해) 차를 운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모든 길을 자기의 전용 도로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막 출발을 하려는데 아내가 택시 뒷 범퍼 쪽을 가리키며, “저기 번호판 옆을 좀 보세요” 하는 것이었다. 뒤 번호판 옆에는 십자가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아니, 저 친구 십자가 까지 함부로 그려 붙이다니!”나는 생각했다. 그가 차주가 아니라, 차주인 장로의 차를 교대 운전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