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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와 피해자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아내는 추위를 잘 타고 나는 더위를 잘 탄다. 어느 여름날 밤이었다. 창문에 붙여 놓은 침대에서 창가가 내 자리인데 그 이유는 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타고 솔솔 들어오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무의식중에 다리를 창문틀에 얹고 자고 있었나 보다.


갑자기 어깨에 불이 났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때렸던 것이다. 비몽사몽간에 무슨 일이야?’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씩씩대며 사람이 몰인정하게 등을 지고 자?’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내 다시 누워 잠을 잘 잔다. 아내가 남편 다리를 창문에 빼앗겨 질투한 것인지 아니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전 날에 아내를 서운하게 한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한 가지 내가 인식하는 것은 아내는 가해자고 나는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설령 내가 아내에게 잘못한 일이 있다 해도 잠자는 도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십분 양보해도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화가 나서 소리를 내거나 싸우게 되면 잠자는 어린 아이들까지 힘들어 질 수 있기에 참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아마도 한동안 감정을 참고 있다가 잠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몇 칠 뒤 아내에게 조용히 따졌다. 그때 나는 당황했고 화도 났었노라고 그러나 돌아오는 아내의 대답은 사람이 쫀쫀하게 지난일 가지고 그래? 나는 다 잊었어’. 시쳇말로 헐. 주객이 전도됐다는 말은 딱 이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인 아내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를 들을 때 내가 용서한다는 의미로 해야 될 말을 아내가 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 하다고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아내에게 잘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내가 나와 스스로 타협을 했다.


신기한 것은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 이유에 대하여 아내에게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묻는다고 아내가 대답할 일도 아니고 십중팔구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야 어떻든 20년을 내 곁을 지켜준 고마운 동지요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만 요즈음 몇 칠 짜증을 부리는 아내가 미웠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왜 그럴까? 문득 요즘 아내가 내게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몇 칠 간 입안이 헐어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힘들어아 기억이 난다. 난 관심도 없이 내 할 일에 여념이 없었다. 기껏 해 준 말이 아내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입안이 헐 때 바르는 약을 바르라고 했었다. 아하 그랬구나. 분명 나는 잠자다가도 한 대 맞을 짓을 했구나. 20년 만에 그 이유를 알았다. 참 미안했다.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20년 전 분명 내가 아내에게 잘못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내 어린 시절 가족체계를 보면 절대 권력을 가지셨던 아버지에 의해 아버지만이 중요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내가 살려는 무의식적인 생존전략은 사람과의 갈등에 있어서 다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상처 입은 내면아이가 여러 가지 인생패턴 중에 나보다도 상대방이 중요하다는 회유형으로 자리를 잡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내 내면의 상처가 많이 치유된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동일한데 그 의미는 현저히 다르다. 현재는 주위의 힘 있는 대상에 의해 무의식적인 생존전략에 의해서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부분의 의미는 무엇일까? 좀 더 자세히 내 마음 안을 들여다본다. 그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와 닿는다. 그리고 아내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 내가 나에 대한 안타까움이 전해져 온다. 사람이나 성격이나 일에 대한 잘잘못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아내가 힘들어 하거나 아파 할 때 함께 공감하고 나누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 미안함을 표현하는 의미가 담긴 잘못에 대한 인정이다.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로서 상대방을 향한 사랑의 소통가운데 부족한 나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이것은 결코 상대방은 물론 나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더 좋은 사랑의 관계로의 소통을 위한 현재 자신의 부족을 인지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부족한 사람이다. 피곤하고 힘든 몸으로 아내는 내게 저녁을 차려 주었고 난 맛있게 먹기만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아내는 얼마나 내가 얄미웠을까 또한 아내의 입안이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내 눈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씽크대에 널부러진 그릇들이 보였다.


잠자는 아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새벽에 고무장갑을 꼈다. 조심스레 물을 틀고 접시를 닦는다. 적어도 오늘은 잠자다 아내에게 맞을 일은 없을 것 같다.


20년 전처럼.


박종화 목사 / 빛과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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