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주까지 가서 장례식에 참여하고 돌아온 아내가 피곤할 법도 한데 의외로 표정이 밝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두 가지 얘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머플러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얘기다. 천안아산역에서 KTX기차를 타기 위해 오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아산역으로 이동하는데, 도착할 때가 되어 급히 내리려다가 무릎을 덮고 있던 머플러를 그냥 놓고 내린 것. 그러고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KTX로 갈아타고 대전도 훨씬 지나서야 그 생각이 났단다. 그래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전철과 코레일의 분실물센터를 거쳐, 1호선 전철의 종착지 신창역에 전화를 걸었단다. 그랬더니 “그런 건 못 찾는다. 손님이 주의를 했었어야 한다”며 핀잔만 들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람을 보내 찾아보고, 찾으면 전화를 드리겠다”며 아내를 안심시키더니 너무나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안내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내는 그 답변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으리라. 물건 찾는 건 둘째 치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창역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단다. “찾았다”고, “그런데 이걸 어떻게 전해드리면 되느냐“고. 그래서 아내는 자신의 동선을 일러주었단다.
“제가 지금 경주로 가는데 오늘 저녁에 다시 천안아산역으로 올라와 아산역에서 전철로 오산역까지 갈 예정입니다.” 그랬더니 “그럼 신창역까지 오실 필요 없이 오산역에다 갖다 맡겨둘 테니 찾아가시라”는 답까지 주더라는 것이다.
세상에나 얼마나 놀라운 친절인지, 얼마나 고마운 배려인지. 그래서 오산역에 도착한 아내. 창구에 물었더니 “알고 있다”며 친절하게 사무실로 안내하더니 캐비넷에 고이 포장까지 되어 보관된 그 물건을 건네주더라는 것이다.
얘길 듣고 보니 전해 듣는 나까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시 찾은 물건보다 이 사회의 보물 같은 이들을 다시 찾은 것 같아 더 기쁘다.
그런데 아내가 그런 기쁜 얼굴로 돌아온 데는 이유가 또 있었다. 바로 그날 경주 장례식장에서 본 장면 때문. 전에 우리 교회 부목으로 있던 목사님의 이모님이 돌아가신 장례식이었는데, 오래 전 우리 교회를 방문하셨을 때 아내가 용돈을 손에 쥐어드리며 “예수 믿으시라”고 전도한 분이시다
아내 입장에서야 오신 손님이니 그저 작은 친절을 베푼 것뿐인데, 그것이 그분에겐 그렇게 오래토록 남으셨단다. “나에게 용돈까지 주시며 예수 믿으라는 분은 처음이었다”며 그 뒤로 아내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더라는 것. 그래서 마침내 예수님도 믿게 되셨다고.
그 후 얼마나 신실하게 신앙생활도 잘 하셨던지, 그 뒤로 암이 발병하여 암환자가 됐을 때에도 전혀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기쁨으로 신앙을 이어가셨단다. 나 또한 그분을 한번 뵌 적이 있는데, 병색은 완연했지만 정말 표정은 너무 밝았음을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아내가 지켜본 그 이모님의 입관예배는 눈물바다였단다. 가족과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님조차 눈물을 감추지 못하셨단다. 그렇게 신실하게 주님과 교회를 섬기다 돌아가셨다는 얘기다.
두 얘기를 듣고 보니 아내의 기분이 그날 업(UP)되어있던 이유를 알겠다. 한마디 작은 친절과 소자에게 베푼 작은 섬김이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바꾸기도 하고, 피곤한 사회를 이렇게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오늘이라도 소자(小者)에게 이 작은 친절과 근사한 섬김을 실천해보자. 그리스도가 내게 베푸신 그 풍성한 사랑을 담아. 참 목회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김종훈 목사
오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