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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利己心)


이기심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마음이다. 이 시대는 이기심, 자기중심주의로 살아간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을 위한 삶에 열중하며 남의 불행 따위는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옆집에서 노인이 죽은 지 수십 일이 지나도 알 수가 없다. 가까운 이웃이 큰 불행을 안고 있어도 지금 자신의 팔뚝이 모기에 물려 쓰리고 아픈 것에 더 분개하고 속상해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으며, 삶의 질도 선진국 문턱에 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사람이 상대적 빈곤 의식에 빠져 자신이 남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행을 타파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애착은 점점 더해지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오래 전에 어떤 탈옥수가 이렇게 외쳤다. 유전무죄, 무전 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된다는 사회를 꼬집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이러한 구호는 가정과 교회, 학교에서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사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이기심 때문이다.


한 예로 도로변을 보자. 서울의 거리는 거의 주차장과 같다. 조그만 사고라도 나면 그 주변을 물론 상당한 거리까지 그 여파가 몰려온다. 그런데 좁은 차선에서도 다른 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짐을 내리기 위해서 한 차선에 차를 주차하고 짐을 내리는 하는 경우도 있다.


그로 말미암아 그 뒤에 있는 차들은 갑자기 좁아든 틈새로 들어가려고 보이지 않는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주 작은 미안함도 찾을 수 가 없다. 그것뿐인가? 귀한 세금으로 거둬 들인 돈을 자기 돈처럼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청문회를 보자. 그들의 놀라운 행적(?)들을 낱낱이 볼 수 있다.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 그런 머리가 있으니 장관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그들의 죄를 고발하는 국회위원들은 어떠한가?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교회를 보자.


사회가 이 모양이니 교회는 분명히 다르겠지? . 다른 교회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수천억을 들여 교회를 건축 하는 교회, 헌금이 넘쳐서 비자금으로 수백억 원을 감추인 교회, 성도들의 정성 어린 헌금을 마음대로 횡령하는 목사, 기독교를 대표하는 기관에서는 대표자리에 연연해 갈등을 유발하고, 또 지방회에서는 위원장 자리에 욕심을 가지고 현() 위원장을 탈퇴하게 만드는 지방회도 있다.


그의 겉모습은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그 내면(內面)은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본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겸손하고 낮은 자리에 앉으라는 말씀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는 군복을 입은 사람을 군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병원에서 흰 가운을 입고 진찰을 하는 사람을 의사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가? 예수님은 요13:34-35절에서 서로 사랑하라하시면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셨다. 서로 사랑할 때 제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유언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미자립교회와 지금도 교회 월세를 내지 못해 눈물로 부르짖는 형제교회를 한 번쯤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는 교회 공동체를 허물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자기 의견이 반영되어야 교회가 평안(?)하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 아니라 중직자들의 마음을 잘 살펴야 평안이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지금 우리 가까운 곳에서 아주 자주 일어나고 있다.


우리들은 이미 유럽교회와 북미교회들의 현실을 보았다. 술집으로, 유흥장으로 이단들의 모임 장소로 바뀌는 많은 교회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제라도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중심주의를 버리고 선한 길을 가야하지 않겠는가?


아프리카를 가면 우분트라는 교훈이 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 중이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 아이들을 모아 놓고 게임 하나를 제안했다. 딸기가 가득한 바구니를 멀찌감치 놓고 이렇게 제안을 했다. 누구든지 먼저 바구니에 도착하는 아이에게 모든 딸기를 주겠다는 제안이다. 사실 딸기는 아프리카에서 아주 구하기 어려운 과일이다.


학자는 아이들이 경쟁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본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손을 잡은 채,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모두 동시에 바구니에 다다랐고 함께 둘러앉아 즐겁게 딸기를 나누어 먹었다. 학자가 궁금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누구든 일등 하는 아이에게 모두 주기로 했는데 왜 손을 잡고 같이 달렸지?”라고 묻자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UBUNTU(우분트)”라고 외쳤다. 그리고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가 있는거죠?” 우분트는 우리가 여기에 함께 있다라는 뜻이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넉넉히 가지지 못한 그들이 우리보다 못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그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이 현대사회를 무한경쟁의 사회라고 할지라도 우리만큼은 형제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먼저 이기심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기심을 간직한 채 오랫동안 행복할 수는 없다.


물론 처음 얼마간은 어느 정도 잘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그렇다면 이렇게 피하기 힘든 이기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 답은 하나이다. 이러한 능력의 비밀은 죽음에 있다. 평생 바깥출입을 금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봉쇄수녀원이다.


이곳에 들어온 수녀는 종신 서원식을 치룬다. 그리고 그들은 제일 먼저 뒤뜰로 나가 구덩이를 판다. 그리고 덮지 않는다. ? 그들이 누울 때까지 말이다. 주님과 함께 죽을 때 이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가 죽는 것은 모두가 아는 바 일 것이다.


이규호 목사 

처음사랑교회

행복가정치유상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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