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없이 사용되는 우리말 중에 “상황”을 빼놓을 수 없다. 상황은 “일이 되어가는 형편이나 모양”을 의미하는 말이다. 개인적 대화에서는 별로 많이 쓰이지 않으면서도 유독 뉴스와 스포츠를 포함한 보도 프로그램에서는 지나치도록 많이 사용되며 그만큼 오남용 사례도 많다(목회서신60회 참조). 다음의 사례를 보자 :
교통사고 현장에 나간 부하 경찰에게 서장이 전화를 걸어 처리과정을 묻는다 :
“이 경장, 상황이 어떤가?” 상관의 물음에 대한 이경장의 가능한 대답 두 가지를 제시해 보았다 :
(1) “네, 서장님, 가해 차량과 피해 차량을 갓길로 옮긴 상황이고, 양방향 소통이 원활하게 된 상황입니다. … 피해 차량 동승자는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2) “네, 서장님, 방금 가해 차량과 피해 차량을 갓길로 옮겨서 양방향 차량 소통이 원활하게 됐습니다. 두 운전자와 피해 차량 동승자는 지금 응급처치를 받고 있습니다.”
대답 (1)은 말끝마다 “상황”을 붙여서 말을 얼마나 품위 없게 만드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대답 (2)는 상황을 묻는 질문에 “상황”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조리있게 설명한다. 대답 (2)가 바른 표현이다.
잘못 사용된 사례 몇 가지를 제시한다 :
“또 다시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는 상황입니다.”(06.9.16 뉴스 KBS)
“여기서 더 이상 실점은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앞선 타석에서 안타를 쳐서 4:3을 만들었던 상황입니다.”(2008.4.11. MBC스포츠)
“신치용 감독 이번 세트보다 다음 세트를 기대하는 상황입니다.”
주자가 있는 상황, 없는 상황, 안타를 친 상황, 위기 상황을 넘긴 상황 등 오남용이 지나치다.
바른 말은, “상황”을 빼고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
또 다시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 더 이상의 실점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앞 타석에서는 안타를 쳐서 4:3을 만들었습니다.
신치용 감독 … 다음 세트에 대비하는 것 같습니다.
“상황”은 앞뒤에 시제를 언급하지 않으면 현재를 의미하는 말인데, 우려되는 일, 지나간 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까지 상황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상황 없이 상황을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