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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목회의 원리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정해진 윈리를 따라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그냥 사는 것 같아도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까지 정해진 원리를 따라 삽니다. 교통법규 원리를 벗어나면 문제가 생기고, 사업도 삶의 행동 원리를 벗어나면 어려움을 당할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에게도 영적 행동 원리가 잇습니다.

영적 원리를 바로 깨닫고 영적 원리를 따라 살 때, 시간마다 사건마다 그 원리를 따라 한걸음씩 주의 인도를 받을 때, 우리도 가나안을 정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3:5). 하늘의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땅의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아무리 큰 역사가 일어나는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지체를 죽이지 못하고 생각이 다른 곳으로 방황하고 있다면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먼저 지체를 죽이고 내 생각, 감정, 의지, 지성 모두를 하나님께 맡겨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사건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눈과 우리의 눈이 마주쳐야(eye contact)합니다. 성경은 명백한 행동 원리들을 제시합니다. 때로 우리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당황하게 됩니다. ‘이일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우리를 향한 영적 행동원리(spiritual active principles)들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7:17).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찾기를 원하며 간구하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십니다.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들을 던져야 합니다.

 

첫째,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가져오는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면 나의 힘 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사욕인가 야심인가 환상인가 이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사욕을 위하여 정욕을 위하여 잘못 구함이라 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것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우리가 왜 자녀들을 고생가운데 키웁니까? 육신의 부모도 자녀를 바라보기만 해도 예쁜 것처럼, 하나님도 믿음이 자녀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대견스럽고 기뻐하십니다. 특별히 환난과 고난 가운데 순종하고 나아가는 부족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뜻이 내 가정과 내 교회 속에 어떻게 나타나는 지, 하나님이 내속에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하고 믿음으로 달려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십니다. 스스로의 깊은 문제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되시면 지금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것이 유익한가?

그것이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있어서 유익한가? 아니면 그것을 시작했을 때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있어서 나에게 해가 되는가? 그것이 나에게 영적으로 도움을 주는가? 아니면 그것이 나에게 영적으로 손해를 주는가? 영적 도움을 준다면 잠시 잠깐 어렵더라도 끝까지 끌고 나가야 합니다.

성경은 육적인 것을 선택하고 갈망하는 에서와, 영적인 것을 갈망하여 나중에는 기적의 주인공, 믿음의 아버지가 되는 야곱이 등장합니다. 이 원리를 깨닫고 이것이 영적 유익이 된다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전진해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어 형통케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그것이 나의 삶을 유익하게 하는가? 그것이 나의 신앙을 유익하게 하는가? 그것이 나의 하나님을 유익하게 하는가? 그것이 나의 신앙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가? 지금 결단하고 시작하시기 바랍니다.(Do it Now!)

 

셋째, 그것이 덕을 세우는가?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이 있다 할지라도, 믿음 속에서 기사와 이적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덕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이 덕을 세우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믿음 위에 덕을 갖춘 사람이 모이면 자신을 세우고, 남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세상을 세우고, 역사를 세울 줄 믿습니다.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후10:8).

 

넷째, 그것이 하나님의 특성을 가졌는가?

나의 행동과 목표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만약에 의도된 행동이 세상적인 특성을 가진 것이면 그것은 분명히 자기 것이 따라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특징이 나의 것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지혜가 왔다면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것들이 항상 천박한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합리적인 신앙에 걸려 믿음이 자라지 못합니다. 어느 한 행동이 옳다고 그것만 가지고 합리화하지 말고 끝까지 옳은가 추적해야 합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내가 사람의 판단을 무서워하랴, 하나님의 판단을 무서워하랴’, 이것이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행동원리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믿음 지켜 나가다보면 늘 같은 의견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의견 충돌이 믿음 안에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적의 역사를 이루려면, 하나님 앞에 잡혀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행동 원리를 따라하고 있는 그 사람은 입에서 남을 비판하는 그 말이 없어지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행동은 하나님께만 잡혀있고 이렇게 밖에는 살 줄 모릅니다.’ 바로 이런 행동 속에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틴 루터가 마지막 종교 재판 때 모세가 아무 변명을 하지 안했듯이, 예수님이 아무 해명도 하지 안했듯이, 나도 아무 해명과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이 알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로 임했습니다.

 

다섯째, “피차 물고 먹으면 다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도움은 주지 못하더라도 걸림돌은 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행동이 믿음 연약한 어떤 형제에게 영향을 끼쳐도 안 됩니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는 그 모든 것이 다 죄입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 모두가 죄입니다. 내게 성령의 감동이 왔을 때 주어라 하면 그 시간에 믿음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의무 이상의 삶과 적극적인 윤리관을 가지고 의무 이상으로 따르고 섬겨 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붙드는 사람은 의무 이상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자를 들어 쓰시지 않고 은혜의 사람들을 들어 쓰십니다. 의무 이상을 감당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주여! 오늘도 영적으로 사역하게 하옵소서!


고흥식 목사 / 영통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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